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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최저선’ 오명 얻은 삼성…대전환 없인 미래없다

‘글로벌 최저선’ 오명 얻은 삼성…대전환 없인 미래없다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⑤ 에필로그
하반기 유럽연합 의장국 맡는 핀란드
최근 ‘인권실천 점검의무’법 추진발표
2년전 입법 끝낸 프랑스 이어 두번째
국제노총 “기업 감시 더욱 강화될 것”
‘중세의 노동조건’ 딱지 못 떼는 삼성
노동존중 대전환 없으면 지속 불가능

[한겨레] 최성진 기자 | 등록 : 2019-07-01 15:03 | 수정 : 2019-07-0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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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인권경영에 관한 국제적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지속가능한 글로벌 공급망’ 선언을 채택한 데 이어, 프랑스와 핀란드 등 유럽을 중심으로 기업의 포괄적 노동인권 준수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지는 초국적 기업의 노동착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취지다. 삼성의 글로벌 경영이 지속 가능하려면 기업의 인권경영 및 노동권 강화에 주목하는 국제적 흐름에 발 맞춰 조직 전반의 인식과 체계를 수술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인권 기준이 달라진다

지난 6월 초 핀란드 정부는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Human Rights Due Diligence, HRDD)’ 법제화를 공식 발표했다. 유럽의 기업인권리소스센터 누리집(business-humanrights.org)을 보면, 핀란드는 관련 법안 도입을 위해 곧 이해당사자 의견수렴을 시작할 예정이다. 핀란드 정부는 인권실천 점검의무의 법제화를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핀란드는 이달부터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고 있다.

인권실천 점검의무란 노동법 체계가 느슨하고 인건비가 싼 저개발국가를 옮겨 다니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는 초국적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2011년 유엔(UN)이 처음 마련한 개념이다. 당시 유엔은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제정하며 삼성전자처럼 세계 곳곳에서 부품을 조달해 제품을 생산한 뒤, 이를 다시 각 나라로 수출하는 초국적 기업에 한 차원 높은 인권경영의 책무를 요구했다. 이 원칙은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에서 벌어지는 인권 및 노동권 침해 여부를 파악하고 이를 예방해야 하는 포괄적 의무가 각 기업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이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 이행 책임을 못 박자, 유럽의 여러 나라가 이를 국내법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먼저 프랑스가 2017년 초 관련 법을 제정해 노동자 규모 5천명이 넘는 대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규정했다. 이 법안에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노동자 수 5천명 이상 대기업은 예외 없이 인권실천 점검의무 이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은 프랑스 본사는 물론 전 세계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인권 및 환경 침해 여부에 대해 보고하고 그 대응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핀란드 정부가 여론 수렴을 거쳐 해당 법안을 제정하면, 핀란드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법제화한 나라가 된다.

<프랑스의 인권경영 제도화> 보고서를 쓴 곽은비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인권실천 점검의무 법제화는 인권경영이 ‘준법경영’의 영역으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뜻한다”며 “앞으로는 저개발국가에서 이뤄지는 초국적 기업의 인권침해 문제가 해당 기업의 평판, 소비자 및 투자자의 신뢰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삼성 등 국내에 본사를 둔 초국적 기업도 이런 움직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곽 변호사 설명이다.


G20 정상도 ‘노동인권’ 선언

2017년 8월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지속가능한 글로벌 공급망’ 선언을 채택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당시 20개국 정상은 독일 함부르크에 모여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공급망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는 유엔의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과 국제노동기구(ILO)의 ‘다국적 기업의 사회정책에 관한 삼자선언’ 등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틀에 따라 노동과 사회, 환경 기준 및 인권의 이행을 장려하기로 한다”고 약속했다. 또한 “우리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등 (인권경영에 관한) 적절한 정책적 틀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강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20개국 정상이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인권 및 노동권 침해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해법을 내놓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015년 마련된 영국의 ‘현대판 노예노동방지법(Modern Slavery Act)’도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법안으로 평가된다. 영국에 진출한 기업은 인신매매나 아동노동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내용이다. 삼성전자 영국 법인도 2017년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네덜란드 의회도 지난 5월 아동노동 등에 관한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기업의 의무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월 독일 언론은 연방경제협력개발부(BMZ)가 마련한 인권실천 점검의무 법안 초안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세의 노동조건’이라는 비판

국제 사회가 초국적 기업을 상대로 과거와 달리 높은 수준의 인권경영을 요구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아시아 각 나라에서 보여준 경영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한겨레>의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연속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 국내외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미 적잖은 국제적 논란을 빚어 왔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73개 나라에 217개 사업조직(2017년 말 기준)을 두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중남미 등에 자리 잡은 39개 생산법인도 여기에 속한다.

▲국제노총(ITUC)이 2016년 10월에 발표한 <삼성:현대적 기술, 중세의 노동조건> 보고서.
세계 최대의 노조연합체인 국제노총은 2016년 5월 노조파괴와 저임금 노동, 높은 노동강도 등에 대해 초국적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의 탐욕을 멈춰라(End Corporate Greed)’ 캠페인을 시작했다.

첫번째 대상 기업이 삼성이었다. 국제노총은 그해 10월 <삼성:현대적 기술, 중세의 노동조건>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중국 공장의 장시간 노동, 인도네시아에서 불거진 노조파괴, 인도의 무분별한 견습공 활용 등에 관한 논란을 소개했다. 국제노총은 보고서에서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아시아 전체 전자산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총괄한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한테 공개서한을 보냈다. 샤란 사무총장은 서한에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노동안전 문제 등을 지적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및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노총은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의 인권 및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삼성 공장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비정부기구 소모는 2017년 12월 <브라질에 진출한 외국계 전자기업의 노동조건>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의 장시간 노동과 인권침해 논란을 주요하게 다뤘다. 유럽의 전자산업 감시 시민단체인 굿일렉트로닉스와 브라질의 노동단체 ‘리포터 브라질’이 보고서에 함께 참여했다. 소모는 2012년 12월 <플렉스 신드롬>이란 보고서를 내고 삼성전자 헝가리 야스페니사루 공장의 노동조건을 짚기도 했다.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지난 24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삼성처럼 전 세계적 공급망을 가진 거대 기업은 지금껏 각 나라의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겨왔다. 이는 이들 기업을 관리·감독해야 할 각 나라의 법 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아 빚어진 일인데,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나 중남미, 동유럽 일부 국가의 노동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노동법이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거나, 법체계는 갖추고 있지만 현장에 제대로 적용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초국적 기업에 낮은 인건비와 사용자 친화적인 현지 법체계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샤란 버로우 사무총장은 “삼성처럼 전 세계적 공급망을 가진 거대 기업도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노총 호스트 와그너 제공
예컨대 삼성전자는 2001년 중국 톈진에 휴대폰 공장을 새로 지었다. 중국 시장에 곧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장점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싼 인건비’가 더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연간 1억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춘 톈진공장은 201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전자의 최대 생산기지 구실을 했다.

톈진공장의 지위는 2012년 열악한 노동조건 논란에 이은 인건비 부담의 상승으로 빠르게 추락했다. 그해 9월 ‘중국노동감시’ 등 국제 시민단체는 톈진공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장시간 초과근로, 불법적 견습공 활용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삼성은 2013년 4월부터 근무체계를 주·야간 2조 맞교대에서 3조2교대제로 바꿔 노동시간을 줄였다. 한때 전체 생산인력의 6%에 이르던 견습공도 2013년부터 쓰지 않았다. 생산량과 관계없이 고용량이 늘었고, 인건비 부담은 더 커졌다. (한국노동연구원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와 동아시아의 일자리 변동’)

삼성전자가 베트남 박닌(2008년)에 이어 타이응우옌(2014)에 휴대폰 공장을 짓고 난 뒤, 톈진공장의 생산량은 더 크게 줄었다. 삼성은 결국 지난해 12월 톈진공장 철수를 발표했다. 베트남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중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 완공되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생산기지가 되는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공장의 경우도 베트남으로의 이동과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이동은 임금 수준 뿐 아니라 노동강도 및 시간,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 등 노동조건을 둘러싼 해당 국가의 전반적인 관리가 허술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자본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따라 “삼성이 가는 곳엔 글로벌 최저선이 만들어진다”는 비난이 따라 붙고 있다.

하지만 공장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초국적 자본에 대한 인권 및 노동권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현재의 추세로 미뤄 볼 때 삼성의 ‘글로벌 최저선 만들기’가 한계에 봉착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제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경영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인 위협 요소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 국제 노동인권 전문가 영입했지만…

삼성전자도 초국적 기업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권경영 요구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 3월 많은 국내 언론은 삼성이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국외 노동·인권 담당(부장급)을 신설하고 린다 크롬용 전 국제경영자단체(IOE) 총재를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수준에 맞춰 노동과 인권에 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삼성은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노동·인권 기준과 이행실태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삼성이 속한 ‘책임감 있는 기업연합(RBA·옛 전자산업시민연대)’의 행동 규범을 철저히 따른다는 점도 강조한다. 노동·인권 분야의 위험 사업장을 선정한 뒤 ‘삼성전자 전문가 진단’을 실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다만 글로벌 노동·인권 전문가로 꾸려지는 점검단을 삼성이 스스로 선발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실천 점검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적어도 유럽의 소비자들은 이제 삼성 제품이 노동권이 충분히 존중되는 공장에서 생산된 것인지, 생산과정에 노동착취가 있지는 않았는지를 따지게 될 것이다. 삼성의 지속가능성은 노동·인권 ‘전문가’ 영입이 아니라, 인권경영 실천 의지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글로벌 최저선’ 오명 얻은 삼성…대전환 없인 미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