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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 운동은 한일 협상의 강력한 무기

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 운동은 한일 협상의 강력한 무기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9-07-14 11:35:09 | 수정 : 2019-07-15 13:11:59


반일(反日) 정서가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의 판매량이 10~20%나 감소했다.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정서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런데 황교안 토착왜구당 대표는 이런 정서가 매우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의병을 일으키자는 식의 감정적 주장을 내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과연 이 시점에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에 시비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치인으로서, 제1야당 대표로서 할 수도 있는 발언이라고 치자. 문제는 이 발언이 “국민들의 반일 정서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데 있다.

과연 그런가? 정치심리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인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교수는 국제 협상의 틀을 창안한 학자로 꼽힌다. 그는 양면게임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투 레벨 게임이론(Two-level game theory)의 창시자다. 그리고 그는 이 이론을 통해 국내의 반대가 거세질수록 국제협상에서 정부의 협상력은 강해진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발목 잡히기 전략의 효율성

퍼트넘 교수에 따르면 국제 협상은 단지 협상 당사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국의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매우 친해서, 덜컥 협상을 타결했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국내 반대파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국회 비준이 필수적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퍼트넘 교수의 이론이 ‘투 레벨 게임이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국 정부는 서로의 이해를 놓고 협상을 해야 한다. 이게 첫 번째 레벨(Level 1)의 게임이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는 협상 결과를 놓고 다시 국내 반대파를 설득해야 한다. 이게 두 번째 레벨(Level 2)의 게임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매우 친일(親日)적 성향이 강해서 일본 정부와 뚝딱뚝딱 엉터리 협상을 해 왔다고 가정하자. “과거는 청산됐고, 우리는 앞으로 일본이 무슨 일을 해도 협조할 것이다”라는 식의 협상 말이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주최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이게 협상으로서 가치를 지닐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따위 협상이 국회 비준을 통과할 리도 없고, 설혹 통과한다 해도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그 정부는 거의 식물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국제 협상은 레벨 1과 레벨 2를 모두 만족해야 하는 어려운 게임이 된다.

이때 퍼트넘 교수가 제시하는 특이한 전략이 발목 잡히기(hand-tying) 전략이다. 국내 반대파에게 일부러 발목을 잡혀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협상단은 상대국 대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정부가 제안한 바를 받아들이고 싶지만, 국내 반대가 너무 심해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당신들이 물러서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실제 국내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면 상대국도 협상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반대파의 목소리는 자국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힘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퍼트넘 교수는 ‘정치쟁점화 전략’이라는 것도 제시한다. 양국이 비밀 협상을 벌이는데 타결점을 좀처럼 찾지 못한다. 이때 비밀 협상 내용을 일부러 국내 반대파에게 흘려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다시 상대국과의 협상에 나선다. “우리는 협상하고 싶지만, 국내 반대가 너무 심해서…”라며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실로 아둔했던 이명박의 소고기 협상

이 관점에서 볼 때 역대급 아둔한 협상을 펼친 이가 이명박이다. 2008년 4월 이명박과 부시 대통령 부부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이때 미국 측에서 “이명박 내외분이 고기를 좋아하시면 저녁 메뉴로 소고기 스테이크는 어떠냐. 30개월 미만 소고기로 준비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는 한미 양국에서 소고기 수입 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일 때였다. 협상의 최대 쟁점은 생후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 여부였다.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광우병 발병 위험이 크게 높다는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대통령에게 소고기를 저녁 메뉴로 제안하며 협상의 실타래를 풀려고 했다. 다만 그들도 염치는 있었는지 차마 “30개월 이상 소고기를 먹자”고 말은 못하고, 30개월 미만 소고기를 준비하겠다고 제안했다.

외교를 잘 모르면 그냥 음식이라도 주는 대로 잘 받아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러지 말고 32개월 된 소고기, 그것도 몬태나 산으로 먹자”고 역제안을 했다. 몬태나는 당시 소고기 시장 개방 압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곳이다. 그러니까 협상을 앞두고 우리 대통령이 “미국 형님께서 왜 우리 비위를 왜 맞추십니까. 우리가 형님 비위 맞춰드리겠습니다”라며 아양을 떤 셈이다.

이명박이 친미(親美) 성향이 있건 말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30개월 이상 소고기의 광우병 발병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도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적어도 한 나라를 대표해 협상 테이블에 오르려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버티는 게 상식이다.

설혹 그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32개월 산, 몬태나 소고기를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해도 대통령이라면 “국내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라고 버텨야 했다. 그래야 이후 진행된 스크린쿼터 등 다른 분야 협상에서 최대한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다.


야당이 정말로 국익을 위한다면

지금 당장 일본과 협상을 해야 하는 한국 정부가 “반일 감정으로 무장하자”고 선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르다. 거세지는 국민들의 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 운동은 ‘발목 잡히기 이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배가시킨다. 그 여론을 등에 업고 협상에 임해야 한국 정부는 단 1미터라도 협상 결과를 우리 쪽에 유리하게 당겨올 수 있다.

▲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철수 기자

황교안 대표는 알아야 한다. 그가 정말로 국익을 위한다면 지금 야당이 내야 하는 목소리는 “현 정부가 협상을 똑바로 안 해오면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야당과 보수언론은 “일본을 자극하지 말자”며 먼저 꼬리를 내린다. 그 따위 목소리가 확산될수록 일본은 협상 테이블에서 더 기고만장해지고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진다.

토착왜구당의 친일 성향이 짙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익이 오가는 협상 때만이라도 야당은 자기들의 본색을 좀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모양이다. 야당이 그토록 일본을 걱정하고 있으니, 그 일을 국민이 대신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들불처럼 번지는 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 운동은 매우 훌륭하다. 한국 정부는 이 뜨거운 목소리를 등에 업고 더 당당하게 협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반일 정서와 일제 불매 운동은 한일 협상의 강력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