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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별도 콜도 뜨지 않는 밤, 불은 라면 삼키는 대리운전기사

별도 콜도 뜨지 않는 밤, 불은 라면 삼키는 대리운전기사
[2020 노동자의 밥상] ⑬ 대리운전기사의 ‘김밥천국’
0.001초…‘앵두’들의 손가락 전쟁터
‘딩동’ 적막한 새벽 깨우는 알림음
중개 플랫폼 우후죽순 생겨나며
비용 반토막에도 ‘5G급’ 콜 경쟁
라면에 김밥 ‘후루룩’…한밤의 ‘천국’
몸만큼이나 방전된 전동휠 끌고
24시간 분식집서 7시간 만의 첫 끼

[한겨레] 용인/글 배지현 기자, 사진 김명진 기자 | 등록 : 2020-02-19 05:00 | 수정 : 2020-02-19 07:23


▲ 대리운전기사 김병운씨가 지난 4일 새벽 2시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의 한 24시간 분식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1시. 아파트 단지 구석에 그림자 하나가 갈 곳 모른 채 섰다. 고층 아파트의 등도 대개 꺼진 시각, 시야에 들어오는 건 사내의 손에 들린 두 대의 휴대전화 화면 불빛뿐이었다. 영하 7도의 삭풍 속에서 콧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20분째 김병운(가명·56)의 눈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다.

“딩동!” 가끔 울리는 알림음이 그의 휴대전화를 깨웠다. ‘콜’이 뜨는 소리다. 재빨리 위치를 확인해보지만 대개 ‘똥콜’이다. 단가도 싸고 뛰어봐야 남는 게 없는 오지행이다. “언제 좋은 콜이 들어올지 모르거든. 개구리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콜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4일 새벽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김병운이 여전히 화면에 눈을 둔 채 중얼거렸다. 불빛 속 지도에는 ‘앵두’처럼 붉은 점으로 표시된 숱한 ‘김병운들’이 명멸했다. 와본 적 없는 거리에서, 만난 적 없는 이의 부름을 기다리는 대리기사의 겨울 새벽은 영원처럼 길기만 하다.

▲ 대리운전기사 김병운씨가 대리운전할 차량을 잡기 위해 앱을 들여다보고 있다. 빨간 점들은 김씨 주변의 대리운전기사들이다.


하루 평균 5~6개 콜…“경쟁 숨 막혀”

나이 쉰이 다 돼서 하던 사업이 망한 뒤, 당장 맨몸으로 김병운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리기사뿐이었다. “지나는 과정으로 짧게 하자”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많이 뛰어야 한 달 200만 원 버는 일이고 보니, 종잣돈을 모아 작은 가게라도 열자 싶었다. 그 생각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대리기사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대리운전 비용이 하향 평준화한 탓이다. ‘거품이 빠졌다’라면 거품이 빠진 것이지만, 대리기사의 노동에 사회가 쳐주는 값이 반 토막 난 것이 사실이다. 플랫폼 업체가 낀 뒤 대부분의 콜은 최소한의 품삯으로 계산된다. ‘똥콜’이니 ‘꿀콜’이니 하던 것도 옛말이 됐다. “0.001초라도 먼저 터치하는 사람에게 콜이 가거든요. 갔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고 비용은 얼마나 되나 계산하고 있으면 콜이 사라져요. 주위에 보면 경쟁자들이 빨간 점으로 깔려 있는데, 보고 있으면 숨 막혀요.”

그래서 김병운은 ‘자동 콜배정’을 해주는 플랫폼 업체를 이용한다. 피크 시간인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업체가 자동으로 가까운 곳의 콜을 배정해준다. 일정 시간 동안 강제로 콜이 정해지고 시급으로 돈을 받는다는 게 단점이지만, 숨 막히는 경쟁을 잠시는 피할 수 있다. 플랫폼 업체가 사실상 김병운을 ‘고용’한 셈이다. 이 서비스에 가입해 김병운은 하루 5~6차례 콜을 뛴다.

새벽 1시는 김병운이 가입한 대리기사 앱의 ‘자동 콜배정’이 끝나는 시간이다. 그러면 김병운은 다시 다른 대리기사들처럼 ‘손가락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대리기사 앱에는 손님 위치, 운전 거리, 예상 요금 등이 뜬다. 손님이 많은 강남이 도착지이거나 비싼 요금인 귀한 콜은 업계 표현으로 ‘그림자만 보이고’ 사라진다. ​돈이 되는 콜을 먼저 잡으려는 ‘앵두’들의 전쟁은 0.1초에 승부가 갈린다. “4G(4세대 이동통신)와 5G(5세대)가 함께 있으면 5G는 콜을 받아도 4G는 못 받는다”고 말할 정도다. 4G를 사용하는 기사는 5G 이용자가 잡고 난 뒤 남은 ‘바닥콜’과 똥콜을 주워간다. 대리기사에게도 ‘장비 투자’가 경쟁의 기본이 된 것이다.

김병운도 더 빨리 콜을 잡으려고 터치펜을 마련하고, 미리 휴대전화를 재부팅 해 가동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화면을 끌어내리며 연방 콜을 업데이트해도 이날은 운이 다한 모양이었다. 외곽인 용인에서 서울로 가는 콜은 뜨지 않았다. 서로 다른 대리기사 앱 세 개를 동시에 돌려도 만만치 않자 ‘작전상 후퇴’를 결정했다. 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달리던 김병운은 자신처럼 방전된 전동휠을 끌고 근처 24시간 분식집을 찾았다.

▲ 대리운전기사 김병운씨가 지난 4일 새벽 2시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의 한 24시간 분식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몸과 전화를 함께 충전하는 김밥천국

24시간 분식집이나 편의점은 대리기사들의 베이스캠프다. 분식집에 들어서자마자 김병운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벽을 마주 보고 앉는 구석 자리에 그가 찾던 콘센트가 있었다. 이곳에서 대리기사들은 허기를 달래고, 언 몸을 녹이며, 방전되어가는 전자 기기들에 전력을 공급한다. 허리에 맨 검은 복대 가방에서 휴대전화 충전기와 전동휠 충전기를 꺼내든 김병운은 머쓱한 표정으로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며 콘센트에 충전기들을 꽂았다. 그러고 나서야 참치김밥과 라면을 주문했다.

새벽마다 김병운은 남의 눈치를 봐가며 충전할 곳을 찾는다.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딩동!” 콜을 알리는 소리가 크게 울리자 식당 주인 말곤 누가 없는데도 김병운은 움찔거리며 소리를 낮췄다. “실내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봐 작은 소리로 켜놔요. 돌아앉아서 먹고요.”

겨울바람에 잔뜩 튼 손과 전동휠을 타다 넘어져 깨진 휴대전화 액정화면이 그의 삶을 설명했다. 끼니를 앞에 두고도 김병운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라면이 국물 없이 퍽퍽해질 정도로 불어도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대리기사 앱만 들여다봤다.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콜이 떠버리면 바로 나가야 하니까 제대로 된 밥은 거의 못 먹어요.” 김병운이 먹던 밥을 그대로 둔 채 뛰어나가도 아깝지 않은 수준의 식당에만 가는 까닭이다. 야식 한 끼 식사 단가는 2,000~4,000원이다. 도착 지점이 도심이면 앉아서 쉴 만한 24시간 카페를 선호한다. 외곽 지역이면 편의점의 빵과 우유가 제일이다. 이날은 인근 편의점이 너무 좁아 충전도 휴식도 여의치 않아 분식집을 찾았다.

그러니 기약 없는 콜을 기다린 이 날의 야식비 6,500원은 김병운에겐 ‘기회비용’ 같은 것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도 앉아서 콜을 기다릴 수 있어서다.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쉽게 다시 거리로 나설 순 없었다. 평소 야식보다 “사치”스러운 금액인 만큼 ‘더 좋은 콜’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 작정은 분식집에 들어온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꺾였다. 일당을 생각하면 택시를 타고 상경할 순 없다. 대리기사 여럿이 택시비를 나누어 내며 오지에서 나오는 ‘택틀’(택시 셔틀)도 있지만, 이날은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김병운은 용인의 찜질방에서 첫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6년 전 대리기사 일을 시작한 뒤부터 익숙해진 일상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일도 있다. “제일 힘든 게 감정노동이에요. 술 취한 사람들 상대로 해야 하니까요.” 경험 많은 기사들은 콜을 받고 전화만 해봐도 “느낌이 오는” 상대가 있다고들 했다. 김병운은 6년을 일하고도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2~3달에 한 번은 ‘진상’을 만난다. “대꾸 안 하냐”, “무시하냐”, “남의 차라고 기름 막 쓰느냐”며 기어이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이다. 진상 고객이 아니라도,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천천히 오라”는 이는 없다. 거나하게 취한 이들은 대부분 “아저씨 어디냐”며 대리기사를 재촉한다. “두껍게 옷을 껴입고 만취한 도심에서 맨정신으로 열심히 걷는 이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대리기사일 것”이라고 김병운은 말했다.

▲ 대리운전기사 김병운씨가 지난 4일 새벽 3시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사우나를 찾아가고 있다.

▲ 대리운전기사 김병운씨가 지난 4일 새벽 전동휠을 타고 경기 용인시 거리를 헤매고 있다.

새벽 2시 40분, 이날 하루 83㎞를 달려 5만633원을 손에 쥔 김병운은 이내 콜 받기를 포기하고 분식집 주인이 소개해준 찜질방으로 향했다. “대리기사는 집에 못 가는 게 정상이에요. 오늘은 운이 좋은 편도 나쁜 편도 아니었어요.” 두꺼운 패딩 점퍼를 고쳐 입으며 그가 말했다. 앞선 김병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새벽 수도권 변두리에서도 맨정신으로 열심히 걷는 이는 대리기사 김병운뿐이었다.

“딩동!” 메마른 손에서 이따금 울리는 콜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김병운의 긴 하루도 어둠 속으로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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