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몰려 만신창이 삶…“보증금 200만 원이 내 장례비”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②고통
시민군 기동타격대 출신 나일성씨의 40년
타격대 선발 하루 만에 계엄군에 끌려가
단순가담인데 ‘김대중 내란음모 동조자’로
당시 모진 폭행 당해 오른쪽 무릎 망가져
뼈마디 쑤시는 고통에다 환청까지 시달려
매일 수면유도제 10알이상 먹어야 잠들어
[한겨레] 김용희 기자 | 등록 : 2020-05-12 05:00 | 수정 : 2020-05-12 08:01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나일성(59)씨는 최근 우리나라 해방전후사를 공부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원으로 활동한 그는 젊은 시절 ‘빨갱이’로 몰려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하고 막노동 등을 전전했다. 지금은 구타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않아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해 13평(43㎡) 남짓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5·18 직후 할아버지가 ‘빨갱이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하시더군요.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몰라 죽기 전에 공부해보려 합니다.”
1980년 5·18 당시 나씨는 시민군 기동타격대로 선발돼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 후문을 지키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기동타격대는 계엄군의 진압계획 소식을 들은 항쟁지도부가 5월 26일 오전 결성한 결사항전 조직으로, 주로 순찰과 치안을 담당했다. 나씨는 ‘단순 가담자’였지만 최종적으로 ‘김대중 내란음모 동조자’가 돼 있었다.
조사 때마다 구타를 당해 오른쪽 무릎이 망가졌다. 1980년 6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해 10월 26일 1심에서 장기 7년, 단기 5년 형을 선고받은 나씨는 나흘 만에 석방됐다. 이듬해인 1981년 3월 3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사면복권 통지서가 날아왔다. 자기들 마음대로 잡아다가 구속하고 구타하고 재판을 하더니 갑자기 사면이라니, 적개심과 허탈감에 살고 싶다는 의욕이 사라졌다. 가족들 몰래 수면제 50여 알을 삼켰지만 죽지 않고 사흘 만에 깨어났다. 밤이면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귀에서는 환청이 들려 정신까지 피폐해졌다. 고통을 잊으려 술에 빠져 살면서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도 찾아왔다. 그러던 중 1984년 5·18묘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과 결혼해 딸 둘을 얻었지만 가정은 4년 만에 깨졌다. 가족은 뒷전인 채 5·18 명예회복과 민주화운동에만 뛰어다녔던 탓이었다.
1990년 5·18 피해자 보상 때 장애 12등급을 받아 4,000여 만원을 받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택시 운전과 건설현장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십여년 전부터는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모든 일을 그만두고 혼자 지내는 날이 많다. 한달 소득은 기초생활수급비 52만 원과 광주시에서 지원하는 5·18 민주유공자 생활지원금 10만 원이 전부다. 밥 대신 술로 끼니를 때우며 가끔씩 옛 동료를 만나는 게 소일거리다.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시며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불면증은 여전해 매일 밤 수면유도제를 10알 이상을 먹어야 잠들 수 있다. 나씨는 “수중에 20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장례비다.
“집 보증금이 딱 200만 원입니다. 남에게 빚만 안 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나 때문에 고통을 겪었을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2000년 변주나 전북대 간호학과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가 공동으로 펴낸 <치유되지 않은 5월>을 보면, 나씨와 같은 5·18 연행·구금자 5,500여 명은 장기간 통증에 시달리며 진통제, 알코올 등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김명희 경상대 교수가 5·18 39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에서는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6명(추정)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빨갱이 몰려 만신창이 삶…“보증금 200만원이 내 장례비”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②고통
시민군 기동타격대 출신 나일성씨의 40년
타격대 선발 하루 만에 계엄군에 끌려가
단순가담인데 ‘김대중 내란음모 동조자’로
당시 모진 폭행 당해 오른쪽 무릎 망가져
뼈마디 쑤시는 고통에다 환청까지 시달려
매일 수면유도제 10알이상 먹어야 잠들어
[한겨레] 김용희 기자 | 등록 : 2020-05-12 05:00 | 수정 : 2020-05-12 08:01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구타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시민군 기동타격대 출신 나일성씨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들어가고 있다. 김용희 기자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나일성(59)씨는 최근 우리나라 해방전후사를 공부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원으로 활동한 그는 젊은 시절 ‘빨갱이’로 몰려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하고 막노동 등을 전전했다. 지금은 구타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않아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해 13평(43㎡) 남짓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5·18 직후 할아버지가 ‘빨갱이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하시더군요.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몰라 죽기 전에 공부해보려 합니다.”
1980년 5·18 당시 나씨는 시민군 기동타격대로 선발돼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 후문을 지키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기동타격대는 계엄군의 진압계획 소식을 들은 항쟁지도부가 5월 26일 오전 결성한 결사항전 조직으로, 주로 순찰과 치안을 담당했다. 나씨는 ‘단순 가담자’였지만 최종적으로 ‘김대중 내란음모 동조자’가 돼 있었다.
▲ 2008년 4월 5·18기동타격대동지회 단합회에서 나일성(오른쪽)씨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5·18기동타격대동지회 제공
조사 때마다 구타를 당해 오른쪽 무릎이 망가졌다. 1980년 6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해 10월 26일 1심에서 장기 7년, 단기 5년 형을 선고받은 나씨는 나흘 만에 석방됐다. 이듬해인 1981년 3월 3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사면복권 통지서가 날아왔다. 자기들 마음대로 잡아다가 구속하고 구타하고 재판을 하더니 갑자기 사면이라니, 적개심과 허탈감에 살고 싶다는 의욕이 사라졌다. 가족들 몰래 수면제 50여 알을 삼켰지만 죽지 않고 사흘 만에 깨어났다. 밤이면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귀에서는 환청이 들려 정신까지 피폐해졌다. 고통을 잊으려 술에 빠져 살면서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도 찾아왔다. 그러던 중 1984년 5·18묘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과 결혼해 딸 둘을 얻었지만 가정은 4년 만에 깨졌다. 가족은 뒷전인 채 5·18 명예회복과 민주화운동에만 뛰어다녔던 탓이었다.
▲ 김준태 시인이 5·18시민군 기동타격대 출신 나일성씨에게 써준 헌시. 나씨는 이 시를 자신의 묘비에 새길 예정이다. 김용희 기자
1990년 5·18 피해자 보상 때 장애 12등급을 받아 4,000여 만원을 받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택시 운전과 건설현장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십여년 전부터는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모든 일을 그만두고 혼자 지내는 날이 많다. 한달 소득은 기초생활수급비 52만 원과 광주시에서 지원하는 5·18 민주유공자 생활지원금 10만 원이 전부다. 밥 대신 술로 끼니를 때우며 가끔씩 옛 동료를 만나는 게 소일거리다.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시며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불면증은 여전해 매일 밤 수면유도제를 10알 이상을 먹어야 잠들 수 있다. 나씨는 “수중에 20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장례비다.
“집 보증금이 딱 200만 원입니다. 남에게 빚만 안 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나 때문에 고통을 겪었을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2000년 변주나 전북대 간호학과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가 공동으로 펴낸 <치유되지 않은 5월>을 보면, 나씨와 같은 5·18 연행·구금자 5,500여 명은 장기간 통증에 시달리며 진통제, 알코올 등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김명희 경상대 교수가 5·18 39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에서는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6명(추정)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빨갱이 몰려 만신창이 삶…“보증금 200만원이 내 장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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