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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물고 물리는 ‘진흙탕 집안 싸움’

물고 물리는 ‘진흙탕 집안 싸움’
박근령-박지만 남매간 법정 소송만 수십 건…
근령씨 남편 신동욱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1142호] 2011년 09월 07일 (수) | 조해수 기자


▲ 지난 8월 15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오른쪽)와 박지만 EG 회장(가운데)이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7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근령씨 (왼쪽)는 2008년 이후로 이들과 함께 하는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8월 24일 고(故) 박정희의 차녀인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 전격 구속되었다. 신씨는 처남인 박지만 EG 회장을 무고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신씨는 같은 혐의로 처형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피소된 상태이다. 박근혜·박지만 대 박근령·신동욱 간의 집안 다툼이 법정 공방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는 남매간의 다툼은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009년 5월 박근혜 전 대표의 미니홈피에는 박 전 대표와 남동생 박지만 회장을 비방하는 글 40여 건이 올라왔다. 그 글의 내용은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박회장이 박 전 대표의 묵인하에 작은누나 박근령씨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씨를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측은 2009년 5월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결과 밝혀진 진범은 놀랍게도 2008년 박근령씨와 혼인한 신씨였다.

신씨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글을 올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용은 허위가 아닌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특히 박회장이 자신의 매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주장은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신씨 “박지만이 나를 죽이려 한 증거물 있다”

신씨의 주장은 이렇다. 2007년 박회장의 비서실장 정 아무개씨가 자신에게 “박 전 대표 경선 캠프의 요청이 있다”라면서 중국 칭다오에 다녀올 것을 제안했다. 신씨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박회장의 5촌 조카인 박 아무개씨, 박씨의 친구인 김 아무개씨와 함께 2007년 7월 1일 칭다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때 정씨가 박씨에게 자신을 죽일 것을 지시했고, 그 배후에는 박근령씨와의 결혼을 못마땅해하던 박근혜-지만 남매가 있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신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당시의 여러 수상쩍은 정황들을 제시했다. 당시 박씨는 숙소인 칭다오 자정향 모텔에 도착하자 숙박비 50% 할인을 이유로 신씨의 여권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나 박씨는 그날 밤 모텔에 투숙하지도 않았으며 다음 날 홀연히 사라졌다. 박씨는 7월 2일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신씨는 이에 대해 “납치·살해하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나를 중국에 내버려둔 채 한국으로 도망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홀로 머무르던 신씨는 7월 3일 오전 2시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속옷만 입은 채 창문을 통해 숙소를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때 전치 12주의 골절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후 거리를 배회하던 신씨는 중국 공안에 인계되었고, 칭다오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지난해 1월 공개한 외교부 문서에는 신씨의 주장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에는 당시 신씨가 환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중국에서 신씨와 함께 마약을 했다”라고 경찰에 자수한 바 있다.

상황이 오히려 신씨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자, 신씨는 이 또한 박회장측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비서실장 정씨와 박회장의 5촌 조카 박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9월 경찰에 고소했다. 신씨는 “경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후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소변 검사를 받았지만,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납치·살해에 실패하자 정씨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박씨에게 추가 지시를 내린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신씨의 납치·살해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지지부진하던 재판은 박씨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28일 돌연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으로 있던 이 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씨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씨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즉각 박씨를 증인석에 세웠다. 박씨는 법정에서도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씨가 나에게 신동욱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정씨는 이것이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같은 박씨의 증언도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박씨가 법정에서 “박지만이 직접 (살인을)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런데도 신씨측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라고 강요했다”라고, 오히려 신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통장 자료에도 역시 정씨가 박씨에게 2천만원의 돈을 송금한 내역만 나와 있을 뿐, 이 돈을 박지만 회장이 직접 주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신씨는 박씨의 증언을 근거로 지난해 9월 박회장을 살인 교사 혐의로, 정씨와 박씨를 살인 교사 공범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신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박회장은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 3월 무혐의 처분되었고, 신씨에게 돌아온 것은 또 한 번의 피소였다. 이번에는 정씨와 박씨가 무혐의 판결 후 즉각 신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검찰은 신씨를 구속했다. 도주 및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신씨측은 검찰의 구속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신씨측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무고 및 명예훼손 재판도 불구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만약 도주나 증거를 인멸할 생각이었다면 (그때) 벌써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신씨의 구속에 정치적 맥락이 숨어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육영재단 둘러싼 경영권 다툼에서 갈등 시작

▲ 박근령씨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
ⓒ시사저널 이종현
현재 상황 역시 신씨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하지만 신씨측은 “비장의 카드를 숨겨두고 있다”라고 자신한다. 박씨가 말한 녹취록이 바로 그것이다. 신씨측은 “현재 녹취록을 보유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녹취록을 전부 공개해 국민들 앞에서 정당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자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사건은 신동욱씨와 박지만 회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박근혜-근령 자매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갈등의 씨앗이 된 것은 바로 육영재단이다. 육영재단은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 복지 사업을 위해 1969년 설립한 복지 재단이다. 현재 육영재단의 자산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영재단을 가장 먼저 경영한 이는 맏이인 박근혜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는 1982년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1990년에 쫓겨나듯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령씨가 당시 육영재단의 고문이었던 최태민 목사의 방만 경영을 문제 삼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박 전 대표 역시 떠안게 된 것이다. 이사장 자리는 당연히 박근령씨에게 넘어갔다. 이때부터 자매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앙금이 생겼다.

그러나 박근령씨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육영재단을 관리·감독하던 서울 성동교육청은 2001년 육영재단 내부 인사들의 비리를 적발해 2004년 박근령 이사장에 대한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 와중에서 육영재단은 박지만 회장에게 넘겨졌다. 현재 육영재단 임시이사회는 정상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새 이사장에 박회장이 취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하지만 박근령씨는 여전히 육영재단으로의 복귀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금까지 박근령-지만 남매간에는 육영재단을 둘러싼 각종 고소와 소송이 줄을 이었다. 임시이사 등기 금지 가처분 신청, 위헌 제청은 물론 폭행, 감금, 무단 침입 등 종류도 다양한 소송이 남매 사이에 허물지 못할 벽을 쌓고 있다. 지난 8월15일 국립현충원에서는 고 육영수 여사 37주기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장녀인 박근혜 전 대표, 장남 박지만 회장을 비롯한 2천여 명의 추도객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박근령-신동욱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 남매간의 법정 공방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고 있다. 마지막 남은 관건은 과연 신씨측이 주장하는 대로 “박지만 회장이 신씨를 중국에서 살해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한 정씨의 말이 담긴 녹취록을 정말 갖고 있는지 여부이다. 만약 정씨가 박씨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박지만 회장이나 정씨 둘 중의 한 명은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그러나 과연 신씨측이 녹취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도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만약 가지고 있었다면 지난해 9월 박회장을 고소했을 당시 검찰에 이를 결정적인 증거물로 제출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지금 신씨 자신이 구속된 마당에도 아직까지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점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법정에서 “정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휴대전화를 캐나다 밴쿠버에 보관해두었다”라고 밝히고 있어 녹취록의 실체를 더욱 의심케 만들고 있다.



신동욱씨 변호인단 둘러싼 ‘왕년의 박근혜 저격수’ 개입 논란

▲ 조성래 전 의원
박지만 EG 회장에 대한 무고 혐의로 지난 8월 24일 전격 구속된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의 변호인단으로는 법무법인 동래가 선임되었다. 법무법인 동래는 부산에 있다. 반면 신씨의 사건 공판은 서울에서 진행된다. 당연히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씨는 왜 서울에 있는 숱한 로펌을 마다하고 굳이 부산에 위치한 동래를 선택한 것일까? 신씨는 “지인의 소개로 동래를 선임한 것일 뿐이다”라고 밝혔지만, 그렇게만 받아들이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동래의 대표변호사는 조성래 전 의원이다. 조 전 의원은 17대 때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열린우리당은 지금 민주당의 전신이다. 조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조사단은 박정희 정권이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를 설립했다고 주장하며,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으로 있던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유력 대권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정수장학회였다면, 현재는 박근령-신동욱 부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운신 폭이 더욱 좁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골치 아픈 가족 간의 법정 다툼에 한때 ‘박근혜 저격수’로 이름을 떨친 조 전 의원이 다시 한번 개입한 것을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야권이 대선을 1년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벌써부터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웬만한 의혹은 이미 지난 2007년 대선 때 거의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대선 공방에서 박 전 대표에게 흠집을 입힐 만한 소재로 박지만-신동욱 소송 사건만큼 파괴력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조 전 의원은 “정치적 목적은 전혀 없다. 변호사로서 공정 사회 건설을 위해 사건을 맡았다”라고 답했다.

한나라당측은 애써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측 변호사인 김재원 전 한나라당 의원은 “내가 박지만 회장 사건까지 맡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쪽에 조성래 전 의원이 변호인단으로 참여한지도 몰랐다. 신동욱씨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 쪽에서는 전혀 켕길 것이 없다. 신씨의 허언에 속아 박 전 대표의 약점을 찾아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헛수고에 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