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가난 때문에 선생님이 되신 분이 계십니다.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육사를 지원했다가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교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다는 또 다른 대학. 군대도 면제고 졸업하면 곧바로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이것저것 잴 것이 없었습니다.
김주영 선생님은 그렇게 선생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올해로 26년차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2005년의 일을 가장 잊지 못합니다.
경북 상주 변두리에 전교생 50명이 넘지 못해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가산점도 없는, 선생님들에게는 기피대상의 초등학교였습니다.
그러나 깊은 뜻을 갖고 있는 선생님 몇이 애써 그 학교로 전근 신청을 하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가는 공동 인격체입니다.”
선생님은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며 그것을 위해 교사들이 합의하고 실천해야 한다고요.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은 주입식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의사소통이며 체험의 연장입니다.
상주남부 초등학교는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밀물처럼 학원으로 빠져나가는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웃음과 놀이로 운동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칩니다.
분교도, 대안 학교도 아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것을 즐거워하고 행복해 합니다.
이곳에서 경쟁은 극소화된 상태로 퇴화되어 있습니다.
학교는 선생님들의 바람처럼 작지만 행복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멀리 시내에서까지 학생들이 전학을 왔고 전교생이 100명을 넘어서 이제 신입생을 선별해서
받아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과장이나 포장된 상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오는 것을 그토록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아이는 그럽니다. ‘선생님, 저는요. 하루에도 세 번 네 번 장래 희망이 바뀌어요’
저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말합니다.
‘야, 그거 신나겠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라’ 제가 어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직업들이 널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분의 미소에는 아이들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선생님과 동시에 동반자를 인식합니다.
“사회에서 약속한 최소한의 규범만 지킨다면 나머지는 아이들이 꿈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아이들의 다양한 행동과 표현 방법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합니다.”
상주남부 초등학교가 몇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주영 선생님도 열 분만 더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이들의 꿈은 더 밝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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