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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부활은 유신 부활 막으라는 불호령"

"장준하 선생 부활은 유신 부활 막으라는 불호령"
[현장] 장준하공원 제막식·37주기 추도식.... 타살 의혹 관련 발언 쏟아져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민수 | 12.08.17 17:33 l 최종 업데이트 12.08.17 17:33


고 장준하 선생 흉상 제막식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부인 김희숙씨와 백기완 선생이 고 장준하 선생 흉상앞에 서 있다. ⓒ 권우성

이장하면서 37년 만에 백골의 아버님을 만나뵙게 됐습니다. 머리에 참혹한 상흔을 보면서 그동안 참았던 한과 분노가 뼛속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곧 삭였습니다. '내가 37년 만에 너희 앞에 나타난 것은 아직도 못다한 과제가 있으니 그것을 해결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17일 열린 장 선생 37주기 추도식에서 "올해는 과거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느냐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역사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친일 독재의 잔당들이 이 나라를 농락하려고 꿈틀댄다"며 "장 선생이 꿈꾸었던 민주주의가 안착되고 통일의 빛을 볼 수 있는 나라를 위해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고 말했다.

▲ 고 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씨와 장남 장호권씨가 흉상 제막식을 위해 걸어나오고 있다. ⓒ 권우성

장준하 선생(1918~75)은 일제에 맞선 독립투사이자 박정희 정권에 맞선 반독재 민주투사였다. 그가 37년 전 경기도 포천 약사봉 산행 도중 숨진 채 발견된 뒤, '정치적 타살'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1일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가 묘 이장 과정에서 유골을 검시하면서 두개골에 지름 6~7㎝ 구멍을 확인해 타살 의혹이 증폭됐다.


'타살 의혹' 재점화된 가운데 장준하 공원에서 처음 열린 추도식

추도식은 이날 처음 문을 연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장준하공원'에서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공원 윗쪽 양지 바른 곳에는 지난 1일 광탄면 신산리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서 옮겨진 선생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묘의 봉분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돌베개를 베는 마음으로 살아온' 선생의 정신을 받들어 돌베개 모양의 바위가 덮혀 있다.

▲ 청년학생들이 고 장준하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 권우성

추도식에서는 최근 다시 불거진 타살 의혹과 관련해 발언이 이어졌다. 장 선생의 추락지점과 관련해 장호권씨는 "떨어진 장소는 전문 산악인도 가기 어려운 곳으로 장 선생이 죽임을 당한 장소가 아니다"며 "하지만 이에 대해 유신 시대라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 개골이 안으로 함몰돼 있는데, 장 선생이 타살됐다면 공사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망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추모사에서 "후배들이 선생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에 현재까지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타살의 흔적이 공개된 만큼 당 차원에서 진상을 밝혀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고 강조했다.

유광언 기념사업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유신에 의해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신 지 37년 만에 유신의 망령이 부활해 민주주의 근본을 흔들려 한다"며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유신잔당이 자신만의 전리품인양 호도한다"고 말했다.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를 향한 발언이다. 이어 유 회장은 "장 선생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유신독재의 부활을 막지 못하게 맞서 싸우라고 불호령을 내리려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장남 장호권씨 "박근혜, 타살 의혹에 대해 자신의 의견 내놓아야"

▲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날 제막식 후 장호권씨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정치를 하지 않고 박정희 잔당들과 어울려 정치를 한다면 타살 의혹에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며 "박 후보는 진상 규명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박 후보를 겨냥했다.

'타살 의혹이 규명될 때 박근혜 후보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장씨는 "타살이라고 확정이 되더라도 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이번 일로 박정희라는 허상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바른 길로 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가 행사 시작을 기다리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 권우성

장준하 선생의 미망인 김희숙(87) 여사도 5년 전 박 후보가 찾아와서 사과한 일에 대해 묻자 "그 때 (박 후보가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해) '역사가 다 말해줄 것'이라며 사과를 했는데, 이제까지 (이와 관련해)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서운해 했다.

한편 추도식에는 정운찬 전 총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추도식에는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와 한승헌 전 감사원 원장, 이부영 장준하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정동영·문성근·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추미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이인재 파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 정운찬 전 총리,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장 선생 흉상 부조의 제막식도 같이 열렸다. 평평한 면에 입체 형태로 새겨진 부조는 장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기록한 석조조형물 '추모의 벽'에 50cm X 70cm 크기로 설치됐다. 추도식은 장준하 선생 묘지를 향해 헌화와 분향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장준하공원은 지난해 파주 탄현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서 열린 선생의 36주기 추모행사에 이인재 파주시장이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폭우로 장 선생의 묘지가 훼손돼 유족들이 이장지를 찾던 중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이 공원조성사업을 제안하면서 탄현면 통일동산 아래에 공원을 들어오게 됐다. 장 선생의 유골에 대한 검사도 이번 이장과정에서 이뤄졌다.

▲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출처 : "장준하 선생 부활은 유신 부활 막으라는 불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