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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아버지 이어 딸까지…대이은 인혁당 해코지”

“아버지 이어 딸까지…대이은 인혁당 해코지”
인혁당 유족들 “유신으로 돌아갈까 두렵다”
재심 무죄뒤 성묫길 가벼웠는데
박근혜 후보 발언 또 희생자 상처
“인혁당 가해·피해 모두 대 이어”

[한겨레] 칠곡/윤형중 허승 기자 | 등록 : 2012.09.16 20:19 | 수정 : 2012.09.17 10:07


▲ 추석을 앞둔 지난 14일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경북 칠곡군 지천면 현대공원을 찾아 고 하재완 선생의 묘 앞에서 절하고 있다. 칠곡/류우종 기자

합동 성묘 ‘굳은 얼굴’

지난 15일 낮 12시, 경북 칠곡군 지천면 현대공원 제2묘원 한 켠에 돗자리가 깔렸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 가운데 4명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나머지 4명은 각자 고향 땅에 묻혔으나, 유족들은 해마다 이 곳에 모여 합동 성묘를 드린다. “한날 한시에 가셨으니 성묘할 때도 함께 모신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4개 무덤의 한가운데 자리한 고 하재완씨의 묘 앞에 영정사진 8개를 나란히 놓았다. 술과 음식을 올리고 향도 살랐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성묘를 온 것은 5년 만이네요.” 무덤 앞에서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7)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유가족들의 고통은 2007년 1월 재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으로 갈음되는 듯했다. “평생 친정은 친정대로, 시집은 시집대로 (세상으로부터) 원망과 핍박을 받았어요. 그 세월이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죄 판결을 받고서 더 원하는 게 없어지더라고요.” 재심 판결 이후 지금까지 유족들이 모여 합동 성묘를 하는 추석 때마다 “오는 발걸음도 가볍고 유가족들도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인혁당 발언’은 온 가족이 고초를 겪었던 지난 30여년의 고통을 다시 할퀴었다. 이씨는 “요즘 유신으로 돌아갈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고 예전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우리 큰 아들은 아버지 일이 있고 나서 학교를 세 군데나 옮겼어요.” 하씨가 구속됐던 1974년, 큰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구속자들 관련 신문기사가 나붙었다. 조직도와 함께 관련자의 얼굴사진까지 박아넣은 기사였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을 시킨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아이들은 (큰 아들을) ‘빨갱이 아들’이라고 놀리고, 아들은 매일 친구들과 피터지게 싸우고….” 이씨는 아들을 데리고 8차례나 이사를 다녔다. 어딜 가도 경찰의 감시와 이웃의 손가락질이 따라다녔다.

이날 함께 성묘온 고 여정남씨의 동생 여규환(58)씨는 시국사건 때마다 고초를 겪었다. “대구 미문화원 방화사건(1983년) 때도 나를 잡아 가두더라고요. 무려 4일 동안 구금당해 조사 받았어요.” 여씨는 방화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우리가 죄인도 아닌데,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죠.”

현대공원 묘역에 놓인 비석 때문에 유가족들이 일제히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처음엔 비석에 ‘민사 여기 살아있다’고 적었어요. ‘민주인사’라고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그냥 ‘민사’라고….” 경찰은 그것조차 트집잡았다. 유가족들 모두 경찰에 불려가 밤샘조사를 받았다. 비석은 강제로 뽑혔다.

죽어서도 모욕당한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의 무덤 앞에는 그 뒤 20년 동안 비석조차 없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5년에야 시민단체들이 뜻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 “오늘 그 크나는 사랑의 빛과 의로움을 기리어 (…) 내일을 위한 다짐으로 삼으려 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픈 과거를 되살아나게 한 박근혜 후보는 지난 13일 “유가족들이 동의하면 찾아 뵙겠다”고 말했다. 성묘하러 모인 유가족들은 어림도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 송상진씨의 아들 송철완(52)씨는 “인혁당 사건의 가해와 피해 모두 대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이어 그 딸까지 인혁당 유가족들을 해코지한다고 비판했다. “사과가 아니고 위로라고 말장난을 하는데, 만약 입장을 바꾼다면 그런 말이 나오겠어요?


출처 : “아버지 이어 딸까지…대이은 인혁당 해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