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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의문사 주변인들 ‘박근혜 변해야 과거사 용서’

의문사 주변인들 ‘박근혜 변해야 과거사 용서’
박근혜가 대통령되어 아버지 보고 배운 정치 다시 할까 걱정하기도
[경향신문] 백철 기자 | 입력 : 2012-09-28 15:35:36 | 수정 : 2012-09-29 15:40:13


두 개의 판결이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9월 10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냐”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만 ‘두 개의 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는 군사독재정권 기간에 있었던 수많은 의문사 사건에 대해 새로운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법영 사건, YH노조 김경숙 사건이다.

정법영씨는 유신정권 반대에 앞장섰던 정진동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목사(2007년 사망)의 큰아들로, 1978년 7월 8일 갑작스런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당시 이 사건은 단순자살로 처리됐지만, 30여년이 지난 뒤 의문사위는 정씨의 사망에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의문사위는 경찰이 정 목사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씨에게 접근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정씨가 사망 직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이끌려 술에 취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의문사위 조사과정에서 정 목사와 부친의 유신 반대운동을 돕던 정씨가 상시적으로 공권력의 감시를 받아온 사실도 드러났다. 의문사위는 정법영씨 사망의 이면에는 정 목사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 경찰들의 끈질긴 접근이 있었다며 국가가 정씨의 사망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새로운 결론을 내렸다.

▲ 9월 12일 인혁당재건위 사건 유족들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 후보를 규탄하는 내용의 행진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정법영씨 사건 1년 후인 1979년 8월 1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신민당사에서 또 한 번의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다. YH무역 노조원인 김경숙씨가 신민당사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YH노조가 YH무역 사측의 ‘먹튀’ 행각을 고발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한 지 2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가 사망하던 날 새벽 2시, 경찰은 점거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 신민당사에 진입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사망과 진압작전은 무관하며, 김씨는 진압 직전 스스로 동맥을 끊고 투신자살했다고 밝혔다. 29년이 지난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김씨가 경찰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가 추락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진압작전 이후에야 김씨의 사망을 알았다는 당시 진압경찰의 증언도 있었다.

정법영씨의 모친 조정숙씨(77)는 큰아들과 함께 살던 충북 청주시 집에 아직 살고 있다. 조씨는 기자에게 “형사들이 자기집 드나들 듯 우리 집을 드나들며 감시를 했다”면서 거실과 부엌 사이의 좁은 공간을 가리켰다. 조씨는 “당시 정 목사를 감시하려는 형사들이 아예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지어 먹으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TV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오랜만에 접하며 큰아들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조씨는 박정희 시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내 나이대 사람들(70대 중반)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을 보면 뭐라 할 순 없지만 참 답답해요. (박정희 시대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일에 대해 딸이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죠.”

조씨의 차남이자 정법영씨의 동생인 정신영씨(50)는 1978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는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박정희 정권의 ‘공’만큼 ‘과’에 대해서도 명확히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제를 좋게 만들었다든가 이런 면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이면에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에게 돈 좀 준다, 보상 좀 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속에 남은 것을 지울 수도 없죠.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정치가 다시 나올까 걱정이 됩니다.”


정법영, 김경숙 사건도 새 결론 나와

정진동 목사의 가족들은 유신시절 공권력의 일상적 감시를 받았다. 조씨는 “어느날 밤에는 창밖에 갑자기 형사 얼굴이 쑥 보이더라. 그래서 들고 있던 사과를 집어던지려고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신영씨는 “우리도 모르게 경찰이 아버지를 갑자기 잡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4시간 경찰에서 아버지를 신문하다가 풀어주는 일이 반복됐다”며 “학교에 다녀와보니 느닷없이 형사들이 가택수사를 하고 있던 것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정법영씨가 의문사할 당시 정진동 목사는 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외치며 청주지역 재야인사들과 함께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신영씨는 정 목사의 단식이 길어지자 청주를 중심으로 유신체제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박정희 정권이 이런 분위기를 잠재우는 과정에서 정법영씨가 의문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관련 인물들의 ‘양심선언’을 촉구했다.

▲ 박정희 정권 시절 의문사한 정법영씨 유가족인 조정숙씨, 정신영씨는 여전히 33년 전 살던 집에서 살고 있다. 백철 기자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술에 취한 형님을 집 앞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아버님도 단식을 풀고 상황이 종료됐습니다. 당시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양심선언이 아니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1978년 당시 정법영씨와 호형호제하던 김창규 목사(58)는 정씨를 ‘의로운 청년’으로 기억했다. 김 목사는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법영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며 “부활절 때 같이 유신체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유인물도 뿌렸고, 노동자·빈민 인권운동을 하던 정 목사의 행동을 같이 돕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움직임을 “쇼맨십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성서에 보면 ‘의는 의로, 악은 악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과거를 반성한다고 하지만 회개 없는 반성은 아무것도 아니며, 변화된 사람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후보를 그만둘 정도로 변화해야만 과거사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김 목사는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역시 현재의 과거사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간 친일 반민족 행위자, 독재 부역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의 경우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했다. 그동안 너무 안일했다”고 말했다.

의문사 당사자인 정법영씨의 동생 신영씨는 “과거사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1970~80년대 경찰 등에서 만든 문건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배짱있게 모두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YH노조 김경숙씨의 동료였던 권순갑 동방기획 대표(57)는 최근 인혁당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33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인혁당 사건하고 우리 경숙이 사건이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정부에서 경숙이가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했는데 30여년이 지나서야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점이 판명났지요. 인혁당도 처음엔 간첩으로 몰렸다가 30년 만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죠.”

▲ 1979년 의문사한 YH노조 김경숙씨의 동료였던 권순갑 대표, 최순영 위원장은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반성’에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역시 김씨의 동료였던 최순영 부천친환경무상급식센터 운영위원장(60·17대 민주노동당 의원)은 경찰의 진압이 있었을 때 임신한 상태였다. 최 위원장은 김씨의 사망 이후 YH노조원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YH 노동자들은 다른 직장에 취직도 할 수 없었고, 취직이 안 되니까 농성 이후에 결혼한 사람이 많았죠. 몇몇 동료들은 결혼할 때 YH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숨기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는 쇼맨십”

최 위원장은 최근 박정희 유신체제를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한 번 태어난 생명을 가지고 연습할 순 없다. 생명이란 것이 이렇게 소중한데 하루 아침에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고, 역사의 죄도 이런 죄가 없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과 권 대표는 한 목소리로 ‘역사의 죄’에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절대 그렇게 안 하겠지만 박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국민들에게 죽을 죄를 졌다고 사죄하면 용서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진실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제 와서 장준하 선생, 인혁당 유가족들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역사를 제대로 평가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박 후보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다 보면 자기 아버지가 어떤 정치를 해왔는지 알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문사 유족들은 그동안 박근혜 후보는 물론 박정희 시절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사과의 말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사과를 하러 온 적은 없었다. 의문사 피해자 정법영씨의 동료였던 김창규 목사는 “박정희 시대의 대형사건들만 조명될 뿐 다른 사건들은 조명되지 않는다”며 “의문사 사건이 아니더라도 긴급조치로 옥고를 치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


출처  [특집| 박근혜 바로보기] 의문사 주변인들 ‘박후보 변해야 과거사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