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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死大江

'평화의 댐'보다 더 나쁜 '4대강 사업' 부역자들

'평화의 댐'보다 더 나쁜 '4대강 사업' 부역자들
[주장] 전문가를 참칭한 부역자들,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오마이뉴스] 이희동 | 13.01.27 20:51 | 최종 업데이트 13.01.27 20:51


'평화의 댐', 그 모멸의 역사

1986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2학년으로서 아버지는 늘 9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동생과 나를 TV가 있던 안방에서 내쫓곤 하셨는데, 그날만은 유독 우리가 그냥 뉴스를 보게 놔두셨다. 아니, 무슨 큰 일이 생겼는지 동생과 내가 아직 안방에서 TV를 같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듯 보였다.

이윽고 시작된 9시 뉴스. 비록 어린 나이라 '땡전뉴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화면은 9살짜리 꼬마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느 군인 아저씨가 서울시 모형 앞에서 누군가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물을 붓더니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건물의 반이 잠긴 63빌딩과 지붕만이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국회의사당의 모습.

그렇다. 그것은 그 유명한 '평화의 댐'의 서곡이었다. 북한이 그들의 '금강산 댐'을 무너뜨려 서울을 수몰시키려 하니 우리는 '평화의 댐'을 만들어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던 바로 그 사건.

아직까지도 뇌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뉴스를 보시고 난 뒤 어머니는 걱정이 늘어지셨다. 당시 화곡동의 우리 집은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하수구의 역류 때문에 침수되곤 했는데, 여의도가 저 정도라면 우리도 100%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쁜 공산당 놈들 같으니라고.

▲ '평화의 댐' 사기 사건 ⓒ 환경운동연합

그 뒤로 사회는 난리법석이었다. 연일 신문에는 소위 전문가들이 나와 평화의 댐 건설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으며, 방송들은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송국 밖에까지 줄을 서서 국민성금 내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당시 국민성금을 낸다는 것은 '빨갱이'가 싫다는 하나의 몸짓이었으며, 나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절대절명의 징표였다. 그 맥락으로 나는 당연히 학교 알림장에 '국민성금 내기'를 적어왔고 어머니께 돈을 받아 으쓱이면서 200원을 국민성금으로 헌납했다. 나의 코 묻은 돈이 안보 수호에 도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몇 년 뒤, 이 자랑스러운 기억은 내게 모멸감으로 다가왔다. 93년 '평화의 댐'에 관한 감사원의 발표를 보며 내가 왜 저 터무니 없는 논리에 속았었는지 허탈했으며, 그들이 우리를 그만큼 만만하게 보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떻게 그 허술한 거짓말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속을 수 있었는지.

특히 나의 분노는 그 중 소위 전문가 집단에 집중되었는데, 정치인들이야 원래 거짓말과 선동이 그들의 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문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과학과 이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혹여 군사정부의 협박이 있었다면 최소한 침묵을 지켰어야 했으며, 그것도 여의치 않아 부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후 양심선언이라도 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전문가는 없었다. 그들은 침묵했고, 그렇게 세월을 견뎌내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살고 있을까? 여전히 전문가를 참칭하여 호가호위 하면서 새치 같은 혀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이런 기회주의자들에 게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4대강 사업', 계속되는 전문가들의 부역

완벽하게 청산하지 못한 소위 전문가들의 부역의 역사. 결국 이는 27년 후 우리 사회에 따로 또 같은 비극을 몰고 왔는데, MB의 '4대강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4대강 사업'은 MB정부의 패악질 중 가장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후대에 평가될 것이다. 그것은 현 세대만이 아니라 자자손손 이 한반도에서 태어나는 생명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4대강 사업'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할만큼 애초부터 너무 비상식적이었다. 어찌 물을 가두는데 수질이 더 깨끗해질 수 있으며,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물줄기를 바꿔버리는데 어찌 생태계가 견뎌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MB는 끝끝내 위 사업을 강행했고, 많은 전문가들이 전위에서 정부의 주장을 옹호했다. 무식한 민초의 눈에도 말이 안 되는 사업을 온갖 기만적인 논리로 치장함으로써 정부의 사업 강행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댐을 보라 부르고, 로봇 물고기를 마치 만능열쇠인냥 취급하고, 악취나는 4대강의 수질이 깨끗하다며 곡학아세 하던 그들.

따라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이번 환경연합에서 발표한 '4대강 산업 찬동인사 조사 보고서' 중 관련 전문가의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의 경우에는 이후 선거나 청문회 등을 통해 자신이 했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책임질 가능성이 있지만, 전문가의 경우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진 채 기득권을 그대로 누릴 가능성이 높고 이는 후대에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이명박 A, 유인촌 A... 4대강 찬동 인명사전)

27년 전 '평화의 댐'에 부역했던 전문가들이 이후 사회적 심판을 받았다면 아무리 MB의 의지가 강했다 한들 '4대강 사업'이 쉽게 진행되었겠는가. 최소한 과학을 운운하지는 못했을 거 아닌가.

▲ 4대강 사업 찬동인사 12인. 사진 윗줄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유영숙 환경부 장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 장관, 심재철 새누리당 국회의원 순. ⓒ 오마이뉴스

게다가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5공 '평화의 댐'과 비교해 볼 때 '4대강 사업'에 부역한 전문가들의 죄질이 더 나쁘다는 사실이다. 27년 전이야 군사정부 하에서 공안정국을 만들려던 군부의 협박에 못이겨 양심을 져버렸다고 그럴듯한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MB 때는 거의 100% 일신의 영달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상식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는 과학의 영역마저도 비틀었던 사람들.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현재 그들이 부당하게 누리고 있는 사회적 자산을 빼앗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는 이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의 배신으로 점철되어 왔다. 결정적인 시국에 그들은 항상 시대정신을 배신함으로써 역사를 되돌렸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배를 불려왔다. 남들보다 더 배운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 사는 세상을 보며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모난 삶을 살면 안 된다고 말했고, 중간만 하면 된다고 했으며, 원래 세상은 다 그런거라고 패배주의를 가르쳐왔다.

이제 그런 비극의 고리를 끊을 때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많이 배웠고, 정보는 더 빨리 퍼지며, 소위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는 매우 얇아졌다. 우리 모두는 황우석 사태 때 줄기세포의 전문가였으며, 촛불시위 때는 광우병 전문가였으며, 김연아 경기 때는 피겨스케이팅 전문가였지 않았던가.

부역자들의 이후를 꼭 지켜보자.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소하지만 끈질긴 기억이다.


출처 : '평화의 댐'보다 더 나쁜 '4대강 사업' 부역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