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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 김씨 “종북 혐의자 추적 업무만” 결국 ‘거짓진술’

[단독] 국정원 김씨 “종북 혐의자 추적 업무만” 결국 ‘거짓진술’
‘오늘의 유머’ 누리집 게시글 분석해보니
11개 아이디 바꿔가며, 야당 대선후보·국회의원 비판
제주해군기지 옹호글 등 올려
모든 글 평일 업무시간에 작성, 개인차원 활동으로 보기 어려워
조직적 여론조작 여부 밝혀야

[한겨레] 정환봉 기자 | 등록 : 2013.01.31 07:07 | 수정 : 2013.01.31 08:45


▲ 18대 대선 당시 불거진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29·오른쪽)가 25일 오후 3차 소환 조사를 마친 뒤 변호인과 함께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여)씨는 지난 25일 경찰에 출석해 “내 업무는 ‘오늘의 유머’(누리집)에 있는 종북 글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 결과, 김씨는 지난해 8월28일부터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12월11일까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정부·여당에 유리한 글을 작성하고, 같은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글에 찬성·반대 표시를 해왔다. ‘종북 글 추적’과는 거리가 먼 활동이다.

김씨가 11개 아이디로 작성한 글의 내용을 보면, 야당 대선 후보 및 국회의원을 비판한 글 10건, 4대강 공사·제주해군기지 등 사회 쟁점에 대해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는 글 25건 등 91건의 게시글 대부분이 정치·사회·남북·경제 분야를 다뤘다.

그럼에도 경찰과 국정원은 이를 축소·부인해왔다. 김씨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3일 이광석 서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게시글과 댓글을 쓰긴 썼다”면서도 “대선이나 정치, 시사와 관련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국정원 대변인은 지난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씨의) 글이 발견됐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김씨가 다른 사람의 게시글에 찬반 표시를 한 게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도 국정원이 ‘김씨가 작성한 글’의 존재를 애써 부인한 것은 그만큼 적극적으로 대선 여론 조작에 개입했다는 핵심 정황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제 문제는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이런 활동을 지시했는지 여부다. <한겨레> 취재 결과, 김씨가 개인적 차원에서 한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 여럿 드러났다.

우선, 김씨가 경찰 소환 조사에서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한 11개 아이디의 ‘게시글 작성 및 찬반 표시 시간대’를 분석했더니, 모두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20분 사이의 ‘업무 시간’에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토·일요일 또는 국경일에 작성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김씨가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 가입한 직후인 지난해 9월 둘째 주를 보면, 화요일인 4일부터 금요일인 7일까지 6개의 글을 작성한 뒤 주말엔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김씨의 글이 다시 이 누리집에 등장한 것은 다음주 월요일인 9월10일이다. 대선이 임박한 12월 둘째 주에도 월요일인 3일부터 금요일까지 총 17개의 글을 작성했다. 이후 주말을 쉰 김씨는 다음주 월요일인 10일과 이번 사건이 불거진 11일에 5개의 글을 더 썼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한 찬반 표시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김씨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찬성, 4대강 사업 옹호, 북한 비판 등 몇몇 특정 주제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린 것도 확인됐다. 지난해 12월4일 대선후보 토론에 나온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남쪽 정부’ 발언을 비난하는 글을 다음날인 5일부터 7일까지 3차례나 아이디를 바꿔가며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91건의 게시글과 244회의 찬반 표시 모두 평일 업무 시간에 작성됐다는 점 △글 작성 및 찬반 표시 때마다 11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했다는 점 △첨예한 몇몇 정치·사회 쟁점에 대해 비슷한 취지의 글을 지속·반복적으로 올렸다는 점 등은 순전히 개인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단히 의도적으로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활동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김씨를 강제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경찰대에서 사임한 표창원 전 교수는 “국정원 직원이 종북 글 추적 업무를 했다면 당연히 아이피(IP) 추적이 가능한 첨단 장비가 있는 국정원 사무실에서 일해야 옳다. 김씨가 보안이 취약한 개인 오피스텔에서 일했다는 것은 추적 활동이 아닌 다른 활동을 벌이면서 이를 외부에 감추려 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작성한 주요 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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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동이 과연 김씨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는지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김씨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 요원이다. 국정원은 심리전단의 주요 업무와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쪽은 심리전단의 규모가 70명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정부·여당을 옹호·지지하고 야당을 비방하는 글을 일상적으로 올리는 업무를 심리전단이 조직적으로 펼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결국 경찰 수사만으로는 김씨의 구체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물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김씨가 국정원 업무 차원에서 이런 활동을 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므로, 우선 국회 정보위를 소집해 그 실체부터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출처 : [단독] 국정원 김씨 “종북 혐의자 추적 업무만” 결국 ‘거짓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