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인권위 ‘하명사찰’ 128건 밝혀내... 검찰 수사 뒤집고 “민정 개입”

인권위 ‘하명사찰’ 128건 밝혀내, 검찰 수사 뒤집고 “민정 개입”
민정수석실, 국정원 자료 받아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넘겨줘
임기 보름남긴 대통령에
“사찰 근절” 뒷북 권고 논란도

[한겨레] 엄지원 최유빈 기자 | 등록 : 2013.02.07 22:20 | 수정 : 2013.02.08 09:21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비선 라인’뿐만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불법사찰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이 사건을 재수사한 검찰이 ‘민정수석실의 개입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인권위는 7일 직권조사 결과 발표에서 민간인 사찰이 어느 기관의 지시나 주문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를 어느 기관에 보고했는지 ‘통계 자료’를 만들어 공개했다. 자료를 보면, 민간인 사찰의 주무를 맡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조사한 불법사찰 사건은 모두 429건으로 이 가운데 다른 기관의 ‘하명’을 받은 것이 128건, 자체 판단에 의해 조사에 착수한 것이 232건, 국가정보원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것이 20건 등이다(표 참조).

이 가운데 민정수석실의 ‘하명’을 받은 사건만 10건이었다. 민정수석실의 하명 사건 가운데는 민간인 및 민간단체에 대한 것이 2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것이 1건 포함돼 있다. 지원관실의 업무 대상이 아닌데도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을 종용한 셈이다.

민정수석실은 직접 ‘하명’한 사건이 아니어도 그 결과를 보고받았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민정수석실에만 사찰 결과를 보고한 경우가 9건, 이 전 비서관 및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경우가 74건,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 및 민정수석실 모두에 보고한 경우가 22건 등이었다. 불법사찰 429건 가운데 105건을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셈이다.

지원관실이 국정원 자료를 바탕으로 불법사찰에 나선 경우가 20건에 이른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인권위는 “민정수석실이 국정원으로부터 국내 정치인과 민간인에 대한 내사 결과를 보고받아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넘겨 처리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대선 여론조작 의혹에 더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결과와 다른 결론을 내린 데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검찰은 (민정수석실의 개입 등이) 기소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인권위는 기소 권한은 없고 조사만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기소 사유에 구애받지 않고) 그 부분을 언급하는 데 부담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주요 관련자들이 이미 재판에 회부됐으므로 검찰에 수사의뢰는 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권고만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불법사찰의 구체 사례에 대해선 다음주 중에 인권위 전원위원회를 거쳐 확정될 ‘결정문’을 통해 밝힐 방침이다.

민정수석실·국정원 등의 불법사찰 개입을 새로 밝혀냈음에도 인권위가 ‘뒷북 권고’를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새사회연대는 성명을 내어 “임기 보름 정도를 남긴 대통령에 대한 권고는 강제력·실효성이 없다. 전형적인 눈치보기식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010년 7월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가 이 사건에 대한 진정을 내자, 인권위는 6개월여 시간을 끌다 “수사중인 사건은 각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한 바 있다. 지난해 4월에야 다시 직권조사를 결정했지만, 대통령 임기 막바지에야 그 결과를 발표한 셈이 됐다.


출처 : 인권위 ‘하명사찰’ 128건 밝혀내, 검찰 수사 뒤집고 “민정 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