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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장준하 선생, 출혈 없어…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

“장준하 선생, 출혈 없어…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
유골 정밀감식 결과 발표
이정빈 교수 “추락사 아니다”
“두개골 함몰, 돌·아령 등 가격 의해
엉덩이뼈 골절은 추락으로 발생”

[한겨레] 박경만 기자 | 등록 : 2013.03.26 18:52 | 수정 : 2013.03.26 22:36


▲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장 선생이 머리를 물체로 가격당해 숨이 멎은 뒤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는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정부 발표대로 추락사였다면…
① 14.7m서 추락…출혈 있었을 것
② 머리·엉덩이처럼 어깨도 골절
③ 왼쪽 전두골 반드시 손상


유신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가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준하 선생은 ‘머리를 돌 같은 물체로 얻어맞아 숨이 끊어진 뒤 추락했다’는 법의학자의 유골 정밀감식 결과가 나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단순 추락사했다고 발표했으나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난해 유해 이장 때 두개골에 지름 6~7㎝의 원형 함몰 골절이 처음 드러나면서 진상규명 요구가 커져왔다.

정밀감식을 이끈 이정빈(67)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법의학)는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의 함몰은 물체의 가격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머리를 먼저 가격당해 숨이 끊어진 뒤 추락해 오른쪽 엉덩이뼈에 골절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머리를 가격한 물체는 두피 손상 부분이 좁은 점을 고려하면 망치보다는 큰 돌이나 아령과 같은 동그란 표면을 가진 물체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장 선생이 숨진 38년 전엔 부검을 하지 않고 의사가 눈으로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데 그쳤으나, 이번에는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 전문가들이 △두개골 절개 △컴퓨터단층(CT) 촬영 △유전자 검사 등으로 유골을 정밀분석했다. 당시 정부는 목격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단순 실족 추락사로 서둘러 결론내렸으나, 머리 말고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던 점, 등산 장비도 없이 절벽으로 하산한 점 등 때문에 정치적 타살 의혹이 제기돼왔다.

장 선생의 유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정밀감식팀은 장남 장호권(64)씨와 친자감정을 위한 15가지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부자관계일 확률이 99.99%로 나왔다”고 밝혔다.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추락사로 볼 수 없는 주요 근거 이 교수는 당시 정부 발표대로 장 선생이 발을 헛디뎌 14.7m 절벽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볼 수 없는 주요 근거로 장 선생의 주검에 출혈이 없었던 점을 들었다. 또 두개골과 엉덩이뼈가 추락 때문에 동시에 골절됐다면 어깨뼈도 손상됐어야 하는데, 어깨 부위는 손상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두개골 함몰 골절이 추락으로 생겼다면, 함몰 부위 반대편인 왼쪽 이마 부위의 전두골 안와(눈지붕)가 반드시 손상돼야 하는데도 멀쩡한 점도 꼽았다.

이 교수는 주검에 출혈이 없고 주검이 깨끗했던 것은 ‘머리 가격으로 숨이 끊어져 이미 혈액순환이 멎은 상태였기 때문에 추락한 뒤에도 출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단단해서 여간해선 부러지기 힘든 오른쪽 엉덩이뼈가 여섯 조각으로 골절되고 머리가 깨질 정도로 추락했다면 어깨 부위가 멀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긁힌 상처가 없고 어깨뼈가 정상인 것으로 미뤄 장 선생이 약사봉 계곡 지면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장 선생의 주검을 살펴본 조철구 박사의 검안 기록에서 머리 부위에 원형의 함몰 골절(지름 2㎝)과 유골의 두개골 골절(지름 6~7㎝)의 크기가 다른 이유를 두고는, “작은 구멍이 뚫린 타격지점 주변이 짓이겨져 두피가 덮인 상태에서는 손으로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추정했다.


■ 유골 정밀감식 왜 나섰나? 1975년 8월 숨진 장 선생의 주검이 37년 만인 지난해 8월1일 무덤 이장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권력기관에 의해 타살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유족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행정안전부는 ‘조사 권한이 없어 진상규명이 어렵다’는 결론을 통보했다. 이에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민주통합당 등은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2월5일 선생의 무덤을 두번째로 개묘해 이 교수팀에 유골 정밀감식을 맡겼다. 이 교수는 대한법의학회 회장을 지낸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다. 공동위원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한법의학회 등에 정밀감식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장 선생 의문사를 두 차례 조사했지만, 국정원, 기무사 등이 협조하지 않은데다 당시 유족들도 유골 감식에 난색을 보여 ‘진상규명 불능’이란 결론을 냈다.

유족 장호권씨는 “돌아가신 지 38년 만에 과학적 감식 결과 살인임이 명백하게 입증됐다. 이제 실체적 진실 규명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유골을 통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검증됐다고 본다. 이젠 정부가 특별조사기구를 꾸려 정보기관이 감춘 자료 공개와 관련자 진술 등 전면 재조사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출처 : “장준하 선생, 출혈 없어…머리 맞아 숨진 뒤 추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