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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비행기로 40분, 평양 원정출산의 진실은…

비행기로 40분, 평양 원정출산의 진실은…
[인터뷰] 황선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당국 허가 밟은 ‘평양 관광’, 진통 와서 제왕절개”

[미디어오늘] 류정민·박새미 기자 | 입력 : 2012-05-17 16:35:09 | 노출 : 2012.05.17 16:44:49


“(언론도 팩트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안 다뤘던 언론이라면 또 말을 안 하겠는데 전부 다뤘었다. 제가 스크랩해놓은 것도 아직 있다.…기자들이 당시 샅샅이 질문도 다 하셨고. ‘아이의 국적이 어떻게 되냐’ 이런 것부터 해서 ‘일부러 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런 질문에 다 얘기 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5번인 황선(38·사진) 후보는 두 아이의 엄마다. 2005년 10월에 낳은 둘째 아이 출산 문제가 최근 언론에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제는 보수층 정서를 자극하는 ‘색깔론’ 보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선 후보가 둘째 아이를 낳은 곳은 북한 평양이다.

깜짝 놀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평양 원정 기획출산 얘기까지 거론하는 일부 언론은 정말로 황선 후보가 평양에서 출산하게 된 ‘팩트’에 대해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통합진보당의 위기 국면을 활용해 안보 상업주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황선 후보의 사연은 이미 2005년 10월에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연이다. 보수언론을 포함해 다수 언론이 당시 황선 후보가 평양에서 아이를 낳게 된 배경에 대해 기사로 내보냈다. 기자회견도 있었고 궁금증에 대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자료는 언론이 갖고 있다. 관련 보도도 여전히 남아 있다.

평양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리 준비된, 심지어 날짜까지 정해둔 계획된 출산이 아니었다는 게 황선 후보의 설명이다. 황선 후보는 무슨 거창한 ‘방북’ 사연으로 평양을 방문한 게 아니라 평양 관광 상품에 참여한 것이었다. 물론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밟은 것이었으며, 2005년 당시만 해도 일반인도 돈만 내고 당국의 관련 절차만 밟는다면 인천공항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평양 관광 상품을 이용할 수 있었다.

황선 후보가 어떻게 평양에서 아이를 낳게 됐는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심경은 또 어떠한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미디어오늘은 17일 오전 국회 후생관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황선. 이치열 기자

다음은 황선 후보와의 일문일답.

- 최근 언론에 평양에서의 아이 출산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2005년 10월에 둘째 아이를 평양에서 출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가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2005년 당시만 해도 평양에서 1박 2일 동안 ‘아리랑 공연’ 등을 보고 올 수 있는 관광 상품이 있었다. 당시 인천 공항에서 평양으로 직항이 개설돼 있었고 평양 관광 상품은 성황리에 판매됐다. 비용은 1인당 100만 원 정도였는데 당시에 2000명 정도가 다녀온 걸로 안다. 2005년만 해도 남북의 교류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8월에는 북측에서 남측으로 내려와서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경기도 하고, 경희대에서 남북청년학생이 만나고 그랬던 때다.”

- 갈 때는 정부 당국의 허가 절차를 밟고 간 것인가?

“남쪽의 ‘겨레 하나’(어린이 빵공장 등의 사업을 담당했던 단체)라는 남북 교류협력 단체가 주체가 돼서, 관광 신청한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모아서 통일부에 통보하고 초청장 등의 절차를 밟아서 진행됐다. 그때 통일운동가 부모님들을 특별히 반값으로 할인해주는 효도관광 상품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10월 6~7일 시부모님을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최 측의 행정 실무 착오로 북에서 초청장이 안 나와서 시부모님께서 인천까지 갔다가 돌아오셨다. ‘겨레 하나’측에서는 본인들의 행정착오로 너무 미안한 상황이 되자 죄송하다면서 ‘10월 10일 가는 비행기에 마침 자리가 났는데 그때 부모님 보내드리면 어떻겠냐. 죄송하니 가족 중 무료로 한 자리를 더 만들겠다’고 연락해왔다. 저는 사실 그 전까지는 만삭이라서 갈 생각을 못 했는데 그런 제안이 와서 산부인과 담당 의사와의 통화에서 ‘저 여행 좀 다녀 와도 되겠냐. 평양 관광을 갈 예정’이라고 물으니 의사가 ‘그 정도 거리라면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이런 것도 지금 이명박 정권 되면서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지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 평양까지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얼마였나?

“비행기로 30~40분 정도였다. 출산한 날이 하필 또 10월 10일(북한 노동당 창당일)이었다. 지금 보수언론 등에서는 ‘왜 하필 10월 10일 애를 낳았느냐’며 원정출산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때 비행기 표가 나왔던 것뿐이다.”

- 원래 출산 예정일은 언제였나?

“원래 예정은 10월 17일이었다.”

- 아이를 출산한 평양 산원은 어떤 곳인가?

“평양 산원이라는 게 79년도 준공된 여성전문병원이다. 평양시의 모든 산모는 그곳에서 초산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각 도시마다 산원이 다 있다. 북에서는 비행기에 탑승해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전부 안다. 그 명단을 보고 북측에서 황선이 탑승객으로 있고 임신상태라는 걸 비행기에서 내릴 때 다 알았을 거다. 제가 임신부니까 평양 산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미리 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때 제가 둘째가 딸이라는 것도 알았다. 검진 후 의사가 ‘아기가 너무 내려와 있고 1년 전에 이미 첫 아이를 제왕절개해서 낳은 자리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둘째 아이가 생긴 것이니, 관광을 다니지 말고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저는 아리랑 공연도 있고 (어렵게 도착했는데) 포기하기 아쉽기도 해서 그냥 돌아다닌 것이다. 검진한 그날 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던 중 진통이 왔다.”

- 출산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땠나.

“아리랑 공연장 옆에 앰뷸런스를 대놓고 의사들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제가 걸음이 느려지고 배 잡고 이러니 아주머니들이 알아보고 진통 오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오면 저는 ‘막달인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리랑 공연 보는 중 진통이 15분 간격으로 줄어들더라. 아, 이거 더 못 보겠구나 이런 판단이 들었는데, 의사들도 옆에 있다가 내가 시계를 자주 보니 눈치 채고 저를 데리고 나갔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황선. 이치열 기자

- 산원 가서 몇 시간 만에 낳은 건가?

“제왕절개를 했는데 그걸 또 (일부 언론에서) 일부러 갈라서 낳은 것 아니냐고 시비를 걸더라. 제가 그 전해에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제왕절개를 했었다. (아이 낳은지) 3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는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다. 2005년 당시 34살이었다. 제왕절개 상황이 되게 위태로웠다. 첫 아이 출산 후 바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10분만 늦었으면(병원에 늦게 도착했으면) 자궁내막이 터져서 내출혈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집도한 부원장님이 10분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말씀을 하셨다.”

- 바로 퇴원을 하진 못했을 텐데 얼마나 입원해 있었나.

“2주 동안 몸조리를 한 거죠. 시부모님들은 먼저 남측으로 가시고 저 혼자 병원에 있었다. 당시 평양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서 계속 찾아오고 그랬다.”

- 남측으로 언제 복귀를 한 건가?

“14일 있다가 육로를 통해서 판문점을 지나왔다. 그때 군사분계선에 적십자 측이랑 의사, 간호사분들 다 나오셨더라.”

- 당시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을 것 같은데 당시 분위기가 어땠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던 때인 것 같다. 판문점을 나와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때 지금 문제 삼고 있는 보수언론들도 다 와서 궁금한 것을 다 물어봤었다. 그때 사회적 분위기가, 이게 사실 얼마나 긴장된 일이었겠나. 참 경사스러운 일이긴 한데 ‘지금 보수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왜곡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들을 많이 했다. 북쪽에서도 ‘통일운동가 황선이 아니라 평범한 아줌마 황선이었으면 상황이 덜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이라는 걸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고, 남과 북이 환영하는 분위기가 됐다. 당시 한국의 통일부나 이런 데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며칠 추이를 보면서 여론이 ‘통일둥이’라면서 환영과 축하의 분위기가 되자, 당시 정동영 장관이 꽃바구니를 보내셨더라.”

- 최근 보수언론이 평양에서 출산한 인물이 통합진보당 15번 비례대표를 받았다면서 '종북논란'의 소재로 활용하는 상황인데 마음고생이 있었을 것 같다.

“이미 7년 전의 일이고 우리 아이는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 당시에 너무 축복받은 속에서 아이 이름도 ‘겨레’라고 지었는데 지금에 와서 이것을 죄악시하고 이러니까 시대의 짐을 아이한테 지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그 의도가 불쾌하다. 당시 안 다뤘던 언론이라면 또 말을 안 하겠는데 전부 다뤘었다. 제가 스크랩해놓은 것도 아직 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신문마다 오려 놓으셨다. 기자들이 당시 샅샅이 질문도 다 하셨고. ‘아이의 국적이 어떻게 되냐’ 이런 것부터 해서 ‘일부러 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런 질문에 다 얘기 했었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황선. 이치열 기자

- 말이 나온 김에 국적 문제는 어떻게 되나?

“남북이 다 혈통을 우선시하는 나라다. ‘속인주의’라고 해서 부모 혈통을 따라간다. 미국 같은 경우는 다민족 국가라서 원정 출산의 개념이 성립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태어난 곳이 평양이 될 수는 있어도 국적이 북한이 되는 게 아니다. 당시 보수언론과 인터뷰에서도 ‘빨리 통일이 돼서 우리 아이 국적이 그냥 코리아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하고 그랬었다.”

- 언론 보도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일단은 새삼스럽게 7년 전의 일을 갖고 언급하는 것,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일부러 기획 출산을 하러 간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그런 발상 자체가 미국 원정 출산이나 이런 것들에서 온 것인 것 같은데, 실제 상상력은 경험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이 사회의 처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그럴 정도의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왜 하필 10월 10일 갔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날을 맞춰서 간 것도 아니고 제가 전후사정을 밝힌 글도 있다. 2000~2007년까지 남북관계에서는 저뿐 아니라 누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보면 그때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기분이겠지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 일부 언론에서 색깔론을 자극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통합진보당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다.

“통합진보당이 통합한지 오래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라든지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극단적 상황으로 나타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당원으로서 국민들에게 민망하고 죄송하다. 하지만 이러한 진통이 색깔론, 매카시즘으로 비화된다거나 이참에 빨갱이 몰이를 통해 소위 말해 친북이라는 딱지를 씌우고, 그 딱지를 씌운 사람들을 한번 다 척결해보자는 식으로 되면 이 자체가 결국은 진보 전체에 대한 후퇴와 흔들기로 갈 수밖에 없다. (사실과 다른 얘기를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라는 것을 언론, 소위 말하는 진보언론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비행기로 40분, 평양 원정출산의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