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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의혹' 보도 위해 학생정보까지 공개한 <조선>

'채동욱 의혹' 보도 위해 학생정보까지 공개한 <조선>
전문가들 "본인 동의없는 개인정보 노출은 문제"... 대서특필 보도 방식도 선정적
[오마이뉴스] 이주영 | 13.09.09 20:06 | 최종 업데이트 13.09.09 20:46


▲ 9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 <조선일보> PDF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연이어 제기한 <조선일보> 보도를 두고 학계·법조계·언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9일 해당 신문이 학교 관계자의 말을 빌려 "채 총장 혼외 아들의 학교 기록에 아버지가 '채동욱'이라고 돼있다"고 보도한 데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본인 또는 보호자 동의 없이 학생 정보가 노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채 총장의 직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생활 의혹을 사실 확인 없이 증언만으로 대서특필한 것 역시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공직자의 사생활은 검증 대상이지만, 의혹 제기 수준의 내용을 주요하게 배치하는 보도 방식은 지나치다는 것.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채 총장의 '사생활' 의혹 기사를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내걸었다. 이 신문은 주변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채 총장이 10여년간 한 여성과 혼외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서 아들을 얻은 사실을 숨겨왔다"고 보도했다.


'혼외아들' 지목학생 정보 유출? "그대로 받아쓰는 행태에 실망"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이 신문은 9일자 사회면에 <"채 총장 혼외아들 학교 기록에 '아버지 채동욱'">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채 총장이 혼외 관계로 얻은 아들 A(11)군이 올해 7월 말까지 다닌 서울 시내 사립 초등학교의 기록에는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런 사실은 학교의 여러 관계자가 본지에 증언하면서 밝혀졌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학교 관계자의 말이라며 "아이 전학(미국 유학)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성하고 이름을 (기록에서 옮겨) 쓰다 보니 검찰총장과 (성과 이름이) 같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도 "아이가 (유학) 갈 무렵에야 (아버지가 누군지) 알았지만 워낙 예민한 문제여서…"라고 증언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를 두고 법률 전문가들은 "학교가 법적 근거 없이 아동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데 이어, 언론이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초중등교육법 제30조는 "학교장이 학생생활기록 등의 정보를 본인·보호자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의견도 있었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변호사는 자신의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무엇보다 미성년자인 아이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게 문제다, 어떻게 11살 아이가 학교에 낸 개인 서류의 내용을 보도할까, 집 사진까지 냈으니 친구들은 다 알아볼 텐데…"라며 "기사에 등장하는 '학교 관계자'가 학생의 개인 신상 기록을 거리낌 없이 발설하는 것도 경악스럽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쓰는 '정론지' <조선일보>의 행태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공직자 혼외자 보도한 <조선일보>, 4년 전엔 "하수구 저널리즘" 비판

▲ 2009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 칼럼. ⓒ <조선일보> PDF

법원의 친자 확인 같은 구체적 증거가 없는 의혹을 1면·사회면 머리기사로 내건 것을 두고도 선정적인 보도 방식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직자의 사생활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도할 수 있다, 보도하는 행위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며 "다만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의혹 수준의 내용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망신주기'식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공직자가 혼외 자식을 부당한 방식으로 취업시키는 등 위법·편법 행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보도의 톤을 일단 낮출 필요가 있다"면서 "하지만 <조선일보>는 증언들을 엮어 '채 총장이 아들을 숨겼다'고 크게 보도했다, 의도적 망신주기라고 의심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관련 보도를 두고 "한 공직자를 궁지로 몰아놓겠다는 목표를 위해 '팩트(사실) 기반'과 '공정성·객관성 유지'라는 보도기준을 무시하고 쓴 기사"라고 힐난했다. 동시에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 방식이 소설가 이외수씨 혼외 아들 논란 보도 때와 닮았다고 봤다. 이 신문은 이외수씨가 혼외아들에게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았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가 왜곡보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사무처장은 "공격적인 보도로 여론재판을 이끌어내서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시간이 흘러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이미 의혹에 휩싸인 인물은 사회에서 계속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한 공직자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법원을 통해 친자 확인을 할 때까지는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선일보>의 채 총장 보도를 두고 논란이 커지면서 해당 신문이 4년 전 "공직자의 혼외자 보도는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한 칼럼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 신문은 2009년 11월 19일자에 실린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 장관의 혼외자 문제 보도를 비판했다. 이 칼럼을 쓴 기자는 1994년 11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혼외 딸 논란을 예로 들며 "당시 일부 프랑스 언론은 현직 대통령의 숨겨진 자식을 보도하는 것을 두고 '하수구 저널리즘'이라 쏘아붙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도 공직자의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은 그런 사생활의 문제가 장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칠 '공적 이슈'냐 하는 점이다, 공직자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채동욱 의혹' 보도 위해 학생정보까지 공개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