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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정·관·재계 ‘거미줄’ 같은 박근혜 친인척 혼맥 대해부

정·관·재계 ‘거미줄’ 같은 박근혜 친인척 혼맥 대해부
[대해부 ①] 박근혜와 문재인의 결정적 차이는 ‘혼맥’…박정희 18년 통치의 수혜자들
[미디어오늘]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 입력 : 2012-12-03 16:10:50 | 노출 : 2012.12.06 08:53:14


대통령 선거가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근혜와 문재인. 두 유력 후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물어본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돌아온다. 각각 대통령의 딸과 비서실장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 모든 것이 차이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두 후보의 지금까지 삶과 배경은 다른 정도가 아니라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적확할 것이다.

그 차이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사람 즉 인적 네트워크다. 세 가지 대표적 인연 중 지연과 학연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비교우위랄까 차이점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결정적인 차이가 혈연 즉 혼맥이다. 혼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6․25때 북한에서 거제도로 피난 온 실향민에게서 태어난 문재인은 박근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혼맥은 단순히 박근혜와 문재인 두 유력 대통령 후보의 차이점만을 설명하는 열쇠는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체 인구의 1%도 채 되지 않는 가벌(家閥)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데 피할 수 없는 3가지 세속적 욕망이나 가치, 즉 돈(금력), 권력, 명예 모두를 사실상 독점하거나 그 분배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의 당락과 관계없이 혼맥은 기로에 선 한국 사회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해도 그는 혼맥으로 얽히고 설킨 지배세력과 힘든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경제민주화 방침을 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가 속해 있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지배세력의 혼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친인척, 그리고 혼맥으로 얽히고 설킨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의 주변 인사들에 관한 기사를 몇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 ※. 그림을 누르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 18년 통치의 수혜자 가족들.

박근혜 후보는 미혼이다. 그러나 그의 혼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물론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의도한 결과는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죽을 때까지 나라를 다스린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박근혜에게 물려준 숙명과 같은, 그 어떤 물질적 재산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산이다.

우선 박근혜의 직계 가족부터 보자. 아버지 박정희는 공식적으로 결혼을 두 번 했다.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 때 남로당 핵심 간부로 체포돼 군법회의에 회부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만주군 선배들인 백선엽<동생 백인엽과 이름을 각각 한자씩 딴 ‘선인학원(현 인천대학)’ 설립>, 정일권(육군참모총장), 이용문 장군(이번에 대선 후보 사퇴하고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전 대전고검장 이건개의 부친) 등의 도움으로 감형받으며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바 있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육본 정보국에 근무할 때, 이화여대 출신과 동거한 적이 있다. 박정희는 이미 본부인 김호남과 결혼한 상태였다.


박근혜 형부 한병기 가족,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로 막대한 돈 벌어

첫번째 부인 김호남(1920~1990)과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 박재옥(1938년생)의 남편이 한병기(1931년생) 전 캐나다 대사다. 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지내고 유엔대사 등을 역임하고 1998년에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 위원까지 지낸 바 있다. 박근혜 후보의 이복언니의 남편이다.

한병기와 그의 가족이 소유경영하고 있는 (주)설악관광은 설악산 권금성 산장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운영하며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현재 한병기의 차남 한대현(1963년생)이 설악관광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근혜에게는 5촌조카인 셈이다.


한병기 사위 박영우 가족회사 대유신소재
스마트저축은행 인수하려다 탄로나 무산

한병기-박재옥 부부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사위인 박영우(1955년생)씨가 부인 한유진(1961년생)과 함께 (주)대유신소재와 계열사의 (최)대주주로서 부실저축은행인 스마트저축은행을 인수하려다 민주당 송호창 의원(현 무소속)의 문제제기와 한겨레신문 보도(2012년 7월 26일자 5면, 2012년 7월 30일자 6면 기사 참조)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대유신소재가 스마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할 당시 정부와 금융당국자들은 ‘미래권력’이라 불리던 박근혜 후보와 친인척이란 사실 등을 고려한 듯, 갖가지 특혜를 주려했다는 것이 한겨레신문 보도의 요지였다. 한병기의 장남 한태준(1959년생, 연세대 졸,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은 경제기획원 연구원을 지내다 지금은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있다.


박근혜 남동생 박지만
코스닥기업 (주)이지(EG) 실질 소유, 매출액 1천억 원 육박

▲ 박지만 (주)EG 회장.
박근혜의 유일한 남동생 박지만(1958년생)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중앙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37기)를 졸업한 박지만은 몇차례 마약복용으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1927~2011, 포스코 회장,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 역임)의 도움으로 포스코에 산화철과 고철 등을 가공하여 납품하는 (주)이지(EG Corporation)를 인수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주)이지의 2011년 매출액은 846억 원이었고, 박지만은 2012년 8월 9일 현재 이 회사의 주식 28.87%를 가진 최대주주다.


박지만 부인 서향희 변호사, 한 때 LH공사 법률고문 지내

▲ 서향희 전 법무법인 새빛 대표변호사.
박지만의 부인이자 박근혜 후보의 올케인 서향희(1974년생, 고려대 법학과 졸, 사법시험 41회) 변호사도 잘 알려져 있다. 서 변호사는 2002년 사법연수원(제31기)을 수료한 후 바로 변호사로 개업, 2009년부터 법무법인 주원 공동대표변호사로 일하다, 지난 9월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법률고문을 맡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항간에는 한때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상득 국회의원(이명박의 둘째형)의 ‘만사형(兄)통’에 빗대어, “만사가 올케로 통한다”는 ‘만사올통’이라 부르기도 했다.


박근혜 여동생 박근영, 첫결혼 실패하고 재혼 후 순탄지 않은 삶

박근혜 후보의 가족 중 그를 가장 아프게 하고 있는 사람이 여동생 박근영(1954년생)이 아닐까 싶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근영씨는 1982년 방위산업체인 (주)풍산 회장인 류찬우씨의 장남 류청씨(1950년생, 전 풍산 부사장, 개인사업)와 결혼했으나 얼마 살지 못하고 이혼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원래 이름 근영(槿暎)에서 서영(書永)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근영(槿令)으로 바꾼 것이 상징하듯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박근영씨의 굴곡진 삶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사무실과 부지가 있는 육영재단 경영권을 둘러싼 언니 박근혜 후보와 남동생 박지만과의 갈등으로도 끝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에는 보다 ‘심각한 상황’까지 발생하는 바람에 이제 박근영씨와 언니인 박근혜 후보와 남동생 박지만과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형국이다. 2008년 재혼한 박근영씨의 남편 신동욱씨(1967년생)는 처형인 박근혜 후보를 무고한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다.

이제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형제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의 조부 박성빈(1871~1938)은 부인 백남의씨(1872~1949) 사이에 5남2녀를 두었는데 5남이자 막내가 박정희이다.


22살 많은 박정희 맏형 박동희옹 평생 농사
아들 박재홍은 동양철관 경영

▲ 박재홍 전 국회의원.
박정희 맏형 박동희옹은 1895년생으로 박정희와 무려 22살 차이다. 박동희 옹은 막내동생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고향에서 평생 농사만 짓다가 1972년 작고했다. 동생이 대통령이 된 뒤 정부 관계자가 박 옹이 사는 시골마을에 전기를 가설해 주겠다고 하자, 다른 지역 전기 가설 여부를 물어 본 뒤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 아직 많이 있다고 하자 대통령 형이 사는 마을에 전기를 먼저 가설할 수 없다고 거절한 얘기로 유명하다.

박동희옹은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는데, 외아들 박재홍(1941년생, 고려대/대구상고 졸)은 포항제철에 납품하는 동양철관을 소유경영하다 11대부터 14대까지 국회의원(민정당, 현 새누리당)을 지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 문제로 요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정희 둘째형 박무희 손자들, 4촌끼리 살해 후 자살?

만약 대통령의 자격 중 중국 고전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구절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박근혜 후보는 여동생 박근영과의 좀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관계에 이어, 4촌 사이인 5촌조카들 사이의 죽임과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목사 아닌 목사’ 최태민(1912-1994, 전 대한구국선교단 총재)과의 관계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일부 언론과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최근호(272호)에서 2011년 9월 6일 박정희의 둘째형 박무희씨(1898~1960)의 차남인 박재호씨(1931년생, 전 동양육운 회장)의 차남 박용수씨(1960~2011)가 4촌동생인 박용철씨(1961-2011)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과 관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체부검 감정서 등을 근거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피살된 것으로 경찰이 발표한 박용철은 박무희의 장남 박재석(1922년생)의 4남2녀중 4남이다. 박재석씨는 민족중흥동지회 이사장과 국제전기산업협회장을 지낸 바 있다.


가수 은지원의 할머니가 박정희의 큰누나

박근혜 후보에게는 고모가 둘이다.

큰고모이자 박정희의 큰누나인 박귀희씨(1901~1974)는 가수 은지원의 조부 은용표씨(1888년생)와 결혼, 1녀3남을 두었으나 장남(은희은)과 차남(은희준)은 6․25때 전사하고 셋째아들인 은희만씨(1926년생)가 부인 김연순씨(1937년생) 사이에 3남3녀를 두었고, 이 가운데 막내가 3남 은지원(1978년생)이다. 은지원의 부친 은희만씨는 박정희 생존시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바 있고, 은퇴 이후에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사파리클럽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은지원은 아버지 은희만씨가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뒤에도 한참 동안 박정희와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우연히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한 사진에 아버지와 박정희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 아버지로부터 사실관계를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셋째형 박상희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인

▲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씨(1906~1946)는 사회주의자이자 항일운동가였다. 동아일보 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했던 셋째형 박상희로 인해 박정희는 자신의 일생에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남로당 핵심 간부로 여순반란 사건 때 체포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셋째형의 친한 친구인 ‘거물간첩’ 황태성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5․16 쿠데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사상적 의심을 받기도 했다.

박정희가 1961년 쿠데타에 성공하자, 박정희와 황태성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당시 무역성 부상(차관)까지 지낸 바 있는 황태성을 비밀회담을 위한 ‘특사’로 파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사상에 관한 의심을 받던 박정희는 당시 반도호텔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러 온 황태성을 간첩으로 규정,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희씨는 조귀분(1909년생)씨와 사이에 5녀1남을 두었고, 그 가운데 맏이이자 장녀인 박영옥씨(1929년생)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냉혹한 권력의 화신’ 박정희와 ‘영원한 2인자’ 김종필씨의 최고권력을 둘러싼 롤러코스터와 같은 복종과 갈등 관계 속에서도 두 사람이 파국을 맞지 않은 것은 셋째형의 피붙이인 조카딸 박영옥씨에 대한 박정희의 연민이나 배려 덕분 때문이었을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김종필 동서 김희용은 벽산그룹 창업주 김인득의 차남

▲ 김인득 전 벽산그룹 명예회장.
김종필씨의 막내동서가 김희용(1942년생) 동양물산기업 회장이다. 그는 벽산그룹 창업주 김인득씨(1915~1997)의 차남으로 그의 부인이 박상희의 5녀 박설자씨(1945년생)다. 1970년대 박정희이 주도한 새마을운동 때 지붕개량 사업으로 초가집을 슬레이트와 함석(양철) 지붕으로 바꿀 당시 슬레이트를 독점 공급함으로써 급속하게 기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0~40년 지난 지금 대표적 발암물질의 하나인 석면(asbestos)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슬레이트는 처리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난제 중의 하나이다. 이제 그 책임과 비용은 누구의 몫인가?

박상희의 외아들인 박준홍씨(1947년생)는 대통령인 작은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31세에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내기도 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소속으로 경북 구미갑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민족통일촉진회의 총재다.

▲ 지난 1972년 10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예행행사에서 연출된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 카드섹션. ©연합뉴스


박근혜 후보의 외가쪽 인척 상당수, 정수장학회 등 관리 맡기도

박근혜 후보의 외가쪽 인척들이 박정희가 18년 통치하는 동안, 아니 최근까지 누린 영향력과 지위는 친가쪽 못지않다. 어떤 의미에선 훨씬 무서운 혼맥이자 네트워크로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바라며 19일을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충청북도에서 최고갑부로 꼽혔던 박근혜 외조부 육종관씨(1894~1965)는 본부인 이경령 여사(1896~1976) 사이에 1남3녀를 두었는데 세 딸 중 차녀가 육영수 여사(1925~1974)다. 육종관의 맏이이자 장녀인 육인순씨(1914~1972)는 만주국 사무관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홍순일씨(1910~1950)와 결혼했다. 육종관의 장남이자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육인수씨(1919~2001)는 매제인 박정희 후광으로 5선 국회의원(6~10대)과 국회 문화공보위원장을 지내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육영수 여사의 여동생 육예수씨(1929년생)의 남편 조태호씨(1923~1988)는 대통령을 동서로 둔 덕으로 서울MBC와 부산MBC 이사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일보 회장 등을 거쳐, 1965년부터 1971년까지는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내다, 1980년부터 1988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박근혜 이종사촌과 형부 가족들, 대한민국 혼맥 축소판

박근혜 후보의 큰이모인 육인순-홍순일 부부는 3남5녀를 뒀다. 장남인 홍세표씨(1935년생)는 춘천고와 고려대를 나온 뒤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줄곧 금융인의 길을 걸어오다 한미은행과 외환은행장을 역임했다. 이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하며, 중앙일보에 객원기자로 일하기도 하는 등 글쓰는 일에도 부지런하다. 그의 부인 김영자씨(1937년생)와 장녀인 홍소일씨(1963년생)는 고려대학에서 민속학과 정치학박사 학위 논문이 각각 통과된 뒤, 같은 날 학위를 수여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순일-육인순 맏사위 장덕진 고시3과 합격
박정희 밑에서 농수산부장관

▲ 장덕진 전 농림부장관.
홍순일-육인순의 맏사위 장덕진씨(1934년생)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이른바 고시3과에 모두 합격해, 1977년 43세 때 박정희가 농수산부장관에 임명했다. 대륙연구소를 설립해 중국 진출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 장원준(1967년생)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현재 산업부 차장으로 있다. 장원준 기자의 부인은 SBS 보도본부 한수진 차장이다.


박근혜 사촌형부 한승수씨, 국무총리 거쳐 김앤장 고문 복귀

▲ 한승수 전 국무총리
홍순일-육인순 부부의 둘째사위 한승수 전 국무총리만큼 정부 안팎의 다양하고 화려한 요직을 거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가 거쳐간 요직 중 대강만 꼽아보자.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 국회의원(13, 15~16대), UN총회 의장, 외교통상부장관, 상공부장관, 주미 대사,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등. 대통령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부와 국회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맡았거나 맡고 있는 직책 중 눈에 띄는 것이 법률사무소 김앤장 고문직이다. 그는 2004년 5월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있다가 2008년 2월 이명박(당선자)이 국무총리에 내정하자 그만뒀다가, 2009년 9월 국무총리직에 물러난 다음 달에 바로 김앤장 고문으로 복귀했다.

그는 현재 제일은행(현 스탠다트차타드은행)의 모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 사외이사와 맨스필드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그의 부인 홍소자씨(1939년생)는 보스톤대 교육학박사 출신으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한승수-홍소자 사위 김세연 새누리당 국회의원, 비상대책위원으로 활약

▲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한승수-홍소자 부부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사위가 바로 김세연(1972년생)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구성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도 활약한 김세연 의원은 부산 최대의 토착기업의 하나인 동일고무벨트의 최대주주로,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정몽준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부친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부총재를 지낸 바 있는 김진재(1943~2005) 전 국회의원(11,13~15대)이다. 김세연씨는 부친 작고 이후 동일고무벨트를 경영하다,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역구(부산 금정)에 공천신청을 했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19대에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한승수 국무총리 사돈은 경총 회장 지낸 이수영 OCI 회장

▲ 이수영 OCI 대표이사회장.
한승수-홍소자 부부의 장남 한상준씨(1972년생)는 2004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6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약칭 경총) 회장을 지낸 바 있는 이수영 OCI(동양제철화학에서 개명) 회장의 조카딸과 결혼해, 장인이 지배하는 회사인 유니드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2010년 2월 이수영 OCI 회장이 경총 회장직에서 물러 날 때까지 우리나라 기업측 3대 경제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대표 모두가 이명박과 한승수 국무총리 등을 비롯한 전현직 행정부 수뇌부와 재벌 회장 등과 혼맥으로 얽혀있어, 청와대 등에서 주요경제단체장과 간담회를 열면 ‘가족회의’ 혹은 ‘사돈회의’로 불리기도 했다.

이명박의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2007년 3월부터 작년 2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지냈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손경식 CJ그룹 회장(대외담당)은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1960년생) CJ그룹 회장의 외삼촌이다. 손경식 회장의 부친은 손영기(1904~1976) 전 경기도지사로 삼성화재 전신인 안국화재 회장을 지낸 바 있다. 손경식 회장의 장인은 국회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지낸 김봉환(1921년생) 변호사이고, 손 회장의 장녀 손희영씨(1972년생, 동덕여대 교수)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이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매형인 이동훈(1948년생) 전 제일화재 회장의 장남 이재환씨(1972년생)와 결혼했다.


육인순 셋째사위 유연상과 숙부가 영남대학 재단 이사와 이사장에

유연상씨(1933년생)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바로 아랫동서이자 박근혜의 큰이모 육인순씨의 셋째사위다. 그는 1980년부터 1986년까지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를 지냈고, 방위산업 장비를 수출입하는 브라이틴코리아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영남학원 이사를 재내는 동안, 그의 숙부인 유준씨(1916년생, 연세대 의과대학장, 경성의학전문학교 졸)는 영남대 재단 이사장을 거친 뒤 영남대 총장까지 지냈다.

유준씨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영남대학 재단(영남학원) 이사장으로 지내는 동안, 7명의 이사 중에는 박근혜 후보와 박 후보에게 현재 시가로 수십억원짜리 주택을 지어준 신기수(1937년생) 전 경남기업 회장, 그리고 박 후보의 여동생 박근영씨가 포함돼 있다.


국책사업 ‘용인민속촌’도 박근혜 이종사촌 형부 가족 품에

역사 드라마 촬영 등으로 유명한 용인의 한국민속촌은 1974년 개촌 당시 정부가 소요예산 14억1천여만 원의 절반에 가까운 6억8천만 원을 지원하여 국책사업으로 시작했다. 운영은 나머지 소요예산 7억3천여만 원을 투자한 민간 기업인 김정웅씨(당시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에 위탁하는 방식이었다가 석연찮은 과정을 통해 1976년 10월 운영권 등이 박근혜 후보의 이종사촌 형부인 정영삼씨(1936년생) 가족 소유 회사에 인수된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아랫동서인 정영삼씨 가족은 이를 발판으로 재산을 증식해 현재 소유하고 있는 7개 기업의 총자산은 4,529억 원(2011년말 기준)에 이르고, 이 회사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 총액만 2,93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 정기국회 때 박원석 의원(현 진보정의당 소속)이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영삼씨는 한국민속촌을 경영하는 조원관광진흥(주)의 회장이고, 장남인 정원석씨(1971년생)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 1977년 3월 청와대 뜰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박정희와 박근혜 대선 후보. ©연합뉴스


육인순-홍순일 막내사위는 윤석민 전 대한선주 회장

박근혜의 큰이모 육인순의 다섯째이자 막내사위는 윤석민(1938년생) 전 국회의원(한국국민당, 11대)이다. 윤씨는 1979년 12․12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부 주도로 국가정보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탄생한 세번째 큰 정당이라 해서 (집권세력의) ‘3중대(여당인 민정당은 1중대, 제1야당 민한당은 2중대)’로 불렸던 한국국민당의 부총재도 지냈다. 대한선주의 부실에 따른 통폐합 이후에 윤씨는 서주산업 회장을 지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 ©연합뉴스


박근혜 외사촌 국립대 교수는 대전지역 11개 친박단체협의회 회장에

박근혜의 외조부 육종관씨는 알려진 혼외부인(첩)만 다섯 명이다. 혼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만 최소 8명이다. 혼외부인 사이에 태어난 손자들 중에 충남대 교수로 있는 육 모씨는 자신의 고종사촌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난 10월 22일 대전 지역 친박 성향 단체들을 아우르는 친박연합체의 회장에 선출됐다.

10월 24일자 대전일보에 따르면, 이 친박연합회에는 박사모를 비롯해, 희망포럼, 대박산악회, 미래포럼, 포럼동서남북, BH 대청클럽, 청산회 등 친박 외곽조직 및 팬클럽 11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친인척들, 재벌, 족벌언론사주, 관료 등과 혼맥으로 얽히고 설켜

결론적으로 박근혜 후보와 그 친인척들은 박정희가 18년 독재를 통해 물려준 거대한 유산의 관리자 혹은 수혜자로서, 역시 박정희 장기독재와 특혜경제가 낳은, 전체 국민의 1%도 되지 않는 지배계층과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재벌 회사 광고 카피처럼 거대한 ‘또 하나의 가족’이다.


출처  정·관·재계 ‘거미줄’ 같은 박근혜 친인척 혼맥 대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