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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언론과 종편

수신료 올리기 전에 ‘수신제가’부터 하시라

수신료 올리기 전에 ‘수신제가’부터 하시라
KBS 이사회가 텔레비전 수신료를 월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의결했다.
컴퓨터·스마트폰 등에도 수신료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공영방송 KBS는 자기 소임을 다하고 있는 걸까.

[시사인 328호] 변진경 기자 | 승인 2014.01.01 18:18:00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12월10일 KBS 이사회는 텔레비전 수신료를 현재의 월 2500원에서 월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의결했다.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정관 개정 등을 전제하지 않은 수신료 인상을 반대해오던 야당 추천 이사 4명이 보이콧한 자리에서 여당 추천 이사 7명만이 내린 결정이었다. 이 인상안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내년 2월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만약 인상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가구당 텔레비전 수신료로 내야 할 돈이 한 달에 4000원, 1년이면 4만8000원이다. 지금보다 1만8000원이 늘어난다. KBS 모든 프로그램 말미에 붙는 자막 문구,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합니다”를 시청자가 한번 면밀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이를 돕기 위해, KBS와 수신료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수신료에 관한 진실’을 탐구해봤다.

▲ 길환영 KBS 사장(가운데)이 12월11일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신료, 33년간 동결해왔다?

KBS가 수신료 ‘현실화’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가장 자주 내세우는 근거이다. 1981년 4월 컬러 텔레비전 수신료가 대당 2500원으로 책정된 이래 한 번도 인상한 적이 없어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현재 수신료가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KBS는 또 영국·독일·프랑스 같은 나라는 수시로 수신료를 올려 국민이 우리나라보다 6~10배 이상 많은 돈을 공영방송을 위해 부담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수신료는 1962년 최고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국영텔레비전방송사업운영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해 책정된 월 시청료(1989년 수신료로 이름을 바꿨다) 100원에서 출발했다. 이후 시청료는 해마다 월 50~100원씩 올라갔다. 매년 연말 KBS가 인상안을 내고 문공부 등 정부 관계 부처가 승인을 해주면 끝이었다. 가장 큰 폭으로 올랐을 때가 종전 월 800원에서 월 2500원으로 오른 1981년 4월이다.

이후 수신료가 동결돼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KBS의 수신료 총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1994년 KBS가 수신료 징수 업무를 한국전력에 위탁하면서다. 그때부터 텔레비전을 보유한 전국의 모든 가구는 매달 전기요금을 낼 때 텔레비전 수신료도 자동으로 같이 내고 있다. 당시 통합징수 결정은, 군사독재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KBS에 대한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으로 53% (1988년에는 36%를 찍기도 했다)까지 떨어진 수신료 징수율을 단박에 98%까지 올릴 수 있는 KBS의 묘안이었다. 덕분에 이듬해 KBS의 수신료 수입은 월평균 89억원씩 늘었다.

KBS는 수신료 말고도 큰 재원이 하나 있다. 바로 광고 수입이다.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동양방송과 동아방송 등을 흡수한 KBS는 1981년 수신료 대폭 인상과 더불어 상업광고 방송도 선물받았다. 지난해 기준 KBS의 광고 수입은 전체(1조5680억원)의 40%(6236억원)를 차지한다. 수신료 수입 비중인 37%(5851억원)를 능가한다. KBS가 수신료 금액 비교 대상으로 삼는 영국 BBC, 일본 NHK, 독일 ARD 등은 광고 수입이 전혀 없거나 5% 미만인 곳들이다. KBS 길환영 사장은 12월11일 기자회견에서 월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할 경우 광고 비중을 지금의 40%에서 22%까지 줄이고 어린이·지역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를 폐지하거나 축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언제쯤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KBS는 1986년 시청료 거부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개선책을 발표하며 KBS1 채널의 광고 방송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KBS1 채널의 광고 폐지는 8년 뒤인 1994년에서야 이뤄졌다.


PC·스마트폰에도 수신료를 부과한다?

KBS가 방통위에 제출한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조정안’에 포함돼 있다고 알려져 크게 논란이 된 내용이다. 방송법상 수신료의 부과 대상을 종전의 ‘TV 수상기’에서 ‘TV 수신기기’로 개정해 TV 수신카드가 포함된 컴퓨터·노트북·태블릿PC·스마트폰 등에도 수신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KBS는 12월18일 기자회견을 열어 “기술 발달에 따른 TV 시청 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해달라고 제안했을 뿐 이번 수신료 인상안과는 별개의 내용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야당 추천으로 방통위에 들어간 김충식·양문석 위원은 “KBS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반박 성명을 냈다. KBS가 해당 내용과 관련해 구체적인 법률 개정안까지 적시하는 등 이번 수신료 인상안의 주요 사항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KBS는 3년마다 물가와 연동해 수신료를 자동 인상하자는 제안도 이번 조정안에 함께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 12월16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KBS 본사에서 수신료 인상에 항의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시사IN 이명익

수신료 부과 대상 기기가 확대되면 KBS는 수신료 인상에 버금가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2010년 기준 방송수신료를 납부하는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2000만 가구 가운데 80%인 1600만 가구다. KBS 처지에서는 난시청 지역이거나, 텔레비전을 없앴거나, 전기 사용량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이제껏 수신료를 면제받은 400만 가구 가운데 상당수를 새로운 ‘징수 대상자’로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거꾸로 국민 처지에서는 집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영상통신 기기를 단 하나도 소유하지 않아야 수신료 납부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신료 납부는 국민의 의무이다?

12월18일 수신료 인상에 관한 논란을 해명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KBS 전홍구 부사장은 여러 차례 수신료의 ‘준조세적 성격’을 강조했다. 수신료는 “공영방송 역할 수행을 위해 그것의 직간접 수혜 대상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특별부담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설명은 1999년 수신료 부과에 관한 위헌소원 사건 판결문(98헌바70)에서 헌법재판소가 밝힌 “수신료는 공영방송 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 조달에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는 정의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전 부사장과 헌법재판소 판결문이 밝혔듯, 이 특별부담금의 성립 조건에는 분명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공영방송 사업 수행’이라는 KBS의 역할이다. 헌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밝힌 공영방송의 목적은 민주적 여론 형성, 생활정보의 제공, 국민문화의 향상 등이다. 또한 판결문은 “방송 프로그램에 관한 자유를 누리고 국가나 정치적 영향력, 특정 사회세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 적정한 재정적 토대, 즉 수신료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때문에 공영방송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국민들은 수신료 거부운동이라는 항의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1986년 ‘땡전(두환) 뉴스’로 상징되는 KBS의 왜곡·편파 방송과 지나친 상업광고 방송에 참다못한 국민들이 대문에 “KBS TV를 보지 않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수신료 납부를 거부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7년에는 보수 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국방송 KBS 수신료 절대 안 내도 되는 길라잡이’ 매뉴얼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이런 수신료 거부운동이 종종 일어난다. 영국에서는 ‘수신료 철폐 본부(Abolish The TV License Fee)’라는 단체가 공영방송 BBC의 일률적인 수신료 징수를 비판하는 운동을 벌이며, 하원에서 ‘텔레비전 수신료 폐지법안’이 제출된 적도 있다. 일본에서도 2004년 공영방송 NHK의 내부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거세게 일어 지난해부터 수신료가 10%가량씩 인하되기도 했다. 수신료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공영방송을 수호할 의무’이지 공영방송을 표방한 거대 기관에 돈을 대줄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 수신료 올리기 전에 ‘수신제가’부터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