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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조작과 탄압들

“오빤 간첩 아냐” 말했는데…

“검찰도 증거 은닉하고 여동생에 거짓진술 유도”
유우성씨 여동생이 진술 번복하자 “그러면 안된다” 막아
유씨 노트북서 무죄입증할 증거 사진 발견하고도 숨겨

[한겨레] 이경미 김원철 김선식 기자 | 등록 : 2014.03.12 19:48 | 수정 : 2014.03.13 10:36


▲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이 드러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주인공 유우성씨가 12일 낮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기자회견에 참가한 뒤 ‘증거조작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왼쪽) 자살을 기도했던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가 12일 밤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김성광 박종식 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중국 공문서 위조를 주도한 국가정보원 못지않게, 검찰도 허위 진술을 유도하거나 검찰에 불리한 증거는 감추는 등 수사·재판 내내 증거 조작·은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검찰은 국정원이 중국에서 비공식·비정상적으로 문서를 입수한 사실을 알면서도 합법적으로 얻은 것처럼 법원에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 “사실대로 얘기하라” 해놓고… 12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국정원 조사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말한 유우성(34)씨의 여동생 유가려(27)씨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에서 한 말이 허위진술이었다”고 말했지만 검사가 이를 무시하고 국정원의 조사 내용에 맞춰 진술을 유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유가려씨는 지난해 5월20일과 27일 유우성씨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해 증언했다. 유가려씨의 증언을 보면, 그해 3월 검찰 조사에서 이아무개 검사가 “국정원에 알리지 않을 테니 사실대로 얘기해보라”고 거듭 권하자, 유씨는 “국정원에서 이때까지 한 말은 다 허위진술이고 거짓이다”라고 털어놨다. 유씨는 국정원에서 ‘오빠가 밀입북했고, 오빠 부탁을 받고 자신이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 명단이 담긴 유에스비(USB)를 전달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를 전면 뒤집은 것이다.

유가려씨는 “진술을 번복하니 강아무개 수사관은 놀란 얼굴로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고, 이 검사 역시 당황한 얼굴로 내게 ‘그렇게 진술하면 안 된다. 그러면 도와주려 해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가려씨는 이른바 ‘국정원 큰삼촌’(수사관)과 입을 맞춘 대로 ‘오빠가 간첩’이라는 취지로 다시 진술을 바꿨다고 했다. 검사가 국정원 조사 내용대로 진술을 꿰맞추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감춰 검찰은 1심 재판 때 유우성씨한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고도 이를 숨겼다. 검찰은 유씨가 2012년 1월22~23일 중국에서 통화한 기록을 그해 12월 확보했다. 그런데도 이듬해 2월 유씨를 기소할 때 1월23일 입북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었다.

유씨가 그 기간 중국에서 찍은 사진도 노트북에 저장돼 있었다. 무죄 추정을 가능케 할 자료였다. 수사 초기 국정원은 유씨의 노트북을 압수해 하드디스크를 복사해 갔다. 유씨는 국정원 조사에서 “노트북에 그 기간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다. 그걸 보라”고 호소했지만 기소·재판 과정에서도 검찰은 이를 증거로 내지 않았다. 게다가 유씨가 뒤늦게 노트북을 확인했을 때 데이터가 모두 삭제돼 있었다. 유씨는 국정원이 자료를 지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유씨는 어렵게 노트북을 복구해 중국에서 찍은 사진 두세장을 살려내 1심 재판 막바지에 증거로 냈다.

검찰이 ‘유씨가 북한에서 찍은 것’이라며 재판부에 낸 사진도 위치정보가 중국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유씨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검찰은 재판이 끝날 무렵 북한에 갔다는 날짜를 고쳐 공소장을 변경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과 증거라 해도 반드시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검사의 의무인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2002년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속옷에서 피고인이 아닌 다른 유전자가 검출됐는데도 이 감정결과를 증거로 내지 않은 검사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고 국가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검사는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입수하고도 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아니하고 은폐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검사의 행위는 도저히 그의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 위법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여동생이 검사한테 내가 간첩이 아니라고 얘기했는데도 검사는 ‘그렇게 얘기하면 도움을 못 준다’고 다시 거짓 진술을 하게 만들고, 내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은 일부러 내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비정상적 문건입수 알고도 재판부에 “공식루트” 거짓말

■ 재판부에 거짓말도 유우성씨가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자, 검찰은 지난해 11월1일 항소심 재판부에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냈다. 이날 재판장이 “(출입경기록을) 공식적인 루트로 입수한 것이냐, 사적인 루트로 입수한 것이냐”고 묻자, 검사는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중국 길림성 공안청이 대검찰청의 형사사법공조 요청에 대해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전례가 없다’며 거부한 뒤였다.

검찰은 지난해 12월3일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도 “대검찰청이 중국 길림성 공안청에 출입경기록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뒤, (이 공문에 따라) 화룡시 공안국이 제공했다”고 밝혔다. 길림성 공안청이 사법공조를 거부했는데도, 마치 대검이 길림성 공안청에 보낸 공문에 따라 화룡시 공안국이 문서를 공식적으로 발급해준 것처럼 교묘하게 말을 꾸민 것이다. 국정원·검찰은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에야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해 11월6일 재판에서도 검사는 “외교채널을 통해 (화룡시 공안국이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게 맞다는 공문을 선양 총영사관을 통해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의 발급사실 확인서를 받은 날은 11월27일이었다.

■ ‘제 식구’ 손댈까 검찰의 증거 은닉 등 행위는 검찰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형사사법체계를 허물어 뜨리는 일이다. 또 국가보안법 12조(무고·날조)는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해 무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간첩죄로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하려고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하면 간첩죄와 같은 형량의 처벌을 받는다.

검사들의 증거 조작·은닉과 관련한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이 최종적으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검찰 수사는 중국 공문서 위조 경위를 밝히고, 여기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를 파악한 뒤 검사들이 얼마나 연루됐는지 규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제 식구 감싸기를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대명천지에 그게 되겠나.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위법한 사안이 드러나면 오히려 더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들의 연루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치명타가 될 수 있어 과연 검사들을 처벌하겠느냐고 의심하는 눈이 많다.


출처 : “검찰도 증거 은닉하고 여동생에 거짓진술 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