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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통합진보당 탄압

돌연 ‘북한식 사회주의’로 변한 ‘진보적 민주주의’

돌연 ‘북한식 사회주의’로 변한 ‘진보적 민주주의’
[기획-진보당 해산심판 핵심쟁점 분석 ②]
[민중의소리] 최지현 기자 | 발행시간 2014-05-07 08:16:31 | 최종수정 2014-05-07 08:16:31


▲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심판 2차 변론기일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소심판장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통합진보당의 강령에서 핵심적인 부분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정부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체는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과 비유하기도 한다.

진보당은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정당의 강령을 두고 정부가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진보당은 당의 공식적인 의결 절차를 거쳐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강령을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식 사회주의나 북한의 지령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진보당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진보당은 강령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지향을 담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의 핵심 노선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없기 때문에 간단명료한 해석이 쉽지 않다. 진보당은 변론준비서면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종래 진보세력들이 한국사회 자유민주주의의 대안 이념으로 제시한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유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이라고 소개했다.

진보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부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증거로 제출한 박경순의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민주주의 이념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한다면 기존 민주주의 이념과 무엇이 다른가? 자유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민주주의 이념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이다. (…)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자주, 민중주체, 민생평등, 평화와 통일, 생태와 성 평등의 가치를 중심적 가치로 내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다.”

이와 관련해 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새로운 주장이나 논리 체계로, 간단명료하게 정의 내린 것이 아니라 종전에 진보세력들에서 논의돼 오던 주장들, 즉 민족자주, 민중주체, 평화와 통일 등을 나열”했다며 “결국 진보적 민주주의는 ‘특정 이념을 수용한 완성된 개념’이 아니라 ‘아직 형성 중에 있는 민주주의의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정부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

하지만 정부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해방 직후부터 논의되던 단계론적 혁명론에 따라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과도기적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정부는 이런 의미가 강령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당 간부의 발언이나 당의 공식자료 등을 통해 위헌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정부 측 참고인으로 변론기일에 나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퍼즐 이론’을 들며 “진보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려면 숨겨진 목적까지 확인하고 목적과 활동을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한 가지만 보고 위헌이라고 볼 수 없지만,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퍼즐조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는 또한 진보당의 전신 중 하나인 민주노동당이 2011년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 계승’이라는 강령을 ‘진보적 민주주의’로 개정한 것을 두고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계적 혁명이론에 따라 현실에 맞춘 변혁론으로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지령에 의해 도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사회 및 국가상을 제시한 것이지 단계적 혁명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라며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일 뿐, 북한식 사회주의를 장기적 목적으로 하고 현 단계에서의 단기적 목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진보당은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당의 의견수렴과 공식 의결 절차를 거친 것으로,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한다.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인 2009년 정책당대회를 통해 구성된 강령개정위원회는 7차례에 걸쳐 전체회의를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 내용이 담긴 강령개정 초안을 마련했고, 이후 중앙위원회와 16개 시도당별로 전국적인 순회토론을 거쳐 2011년 정책당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개정된 바 있다.

이처럼 강령을 개정한 배경에 대해 진보당은 “종전 강령에 민주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와 국가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상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당이 지향하는 사회상과 국가상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만약 정부의 주장과 같이 민주노동당이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려고 했다면, 구태여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삭제할 필요가 없지 않았겠냐”고 반문한다.

이와 관련해 진보당은 2011년 당시 정책당대회에서 한 강령개정위원이 현장에서 기존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이란 강령을 ‘사회주의 이상’으로 수정해 존치시키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됐던 점을 근거로 든다. 정부의 주장대로 진보당이 사회주의를 궁극적으로 추구할 목적이 있었더라면, 당시 정책당대회에서 이러한 수정안이 부결될 리 없지 않았겠냐는 주장이다.


김일성도 진보적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위헌이라는 정부 측 주장의 핵심 근거에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내용도 자리잡고 있다. 김 주석이 주장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지령을 통해 진보당의 강령에 도입됐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김 주석이 1945년 10월 3일 평양로농정치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 민주주의 길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주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 줄 수 있으며 나라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보장하여 줄 수 있습니다”라고 밝힌 이후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건국이념이 됐다고 주장한다.

정부는“북한 백과전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주, 연대연합, 평등, 부강한 국가 건설, 혁명, 평화임을 알 수 있다”며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현 상황을 외세에 의한 지배종속관계, 봉건잔재로 인한 피지배관계로 파악하고, 자주·평등의 원리를 사회 전반에 구현하여 피지배계급인 인민대중(민중)에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똑같은 권리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진보당이 2007년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김일성이 주장해온 것으로 북한의 지령에 적시된 인물이 정책위의장으로 선임된 후 전격적으로 민주노동당에 도입되고 진보당에도 계승됐다”며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중주권주의 및 사회주의를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자 북한이 내세운 용어이고,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과 진보당 측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당은 이같은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북한의 지령을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가 도입됐다는 건 순전히 억측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 10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과 관련한 북한의 지령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수사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스스로도 북한 지령에 의한 도입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진보당은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 내용 중 자주, 평등, 반전평화, 민주적 변혁, 연대연합, 부강 통일국가 건설 등은 김일성만이 주장한 고유한 내용이 아니고,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특정이념을 추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조봉암의 진보당은 1951년 창당 당시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했고, 4·19 혁명 직후 진보적 민주주의를 노선으로 내건 진보정당들이 다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1988년 창당한 민중당은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했고, 같은 해 평민당에 입당한 재야인사 출신 국회의원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평화민주연구회도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을 정치적인 요구로 내걸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에도 “진보적 민주주의라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내용이 담겼다.

진보당은 “민주적 사회주의와 민중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해방공간에서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이 자신들이 수립할 국가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기획-진보당 해산심판 핵심쟁점 분석②] 돌연 ‘북한식 사회주의’로 변한 ‘진보적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