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는 왜 ‘초이노믹스’에 열광하나?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하라 - (上)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시간 2014-09-08 11:09:23 | 최종수정 2014-09-08 11:09:23
“전화 끊읍시다. 지금 당장 한국 주식을 사야겠어요.”
세계적인 투자 회사 로저스홀딩스의 수장이며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만들어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린 전설적 헤지 펀드 투자자 짐 로저스. 그가 7월 한 보수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화를 다급히 끊으며 남긴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로저스는 올해 초 ‘통일 대박’ 논쟁이 있었을 때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통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말해 잔뜩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전화 받을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투자 의지를 불태웠다던 로저스가 실제 한국에 투자를 시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래 헤지 펀드의 수장들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속된 말로 ‘간을 본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많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투자 여부가 아니다. 전화 인터뷰를 성사한 보수 언론이야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는 그의 발언에 도취돼 신나게 이를 보도한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발언이 한국 경제의 길조가 아니라 재앙의 전조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로저스 발언의 진의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하나는 헤지 펀드가 어떤 성격을 갖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저스가 열광한 ‘초이노믹스’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헤지 펀드(hedge fund)의 원 뜻은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는 펀드’다.
원래 헤지 펀드는 금융시장의 등락과 상관 없이 일정한 수익을 목표로 하는 펀드의 통칭이었다. 주가야 원래 오르내리는 법이지만 고액 자산가들은 이런 위험을 싫어한다. 그래서 돈을 맡기는 부자들은 많이 벌지 않아도 좋으니 은행 금리보다는 높게, 그리고 최대한 안전하게 돈을 굴려줄 곳을 찾는다. 바로 이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이들이 헤지 펀드다. 그래서 헤지 펀드는 투자된 돈의 안전한 관리에 목숨을 건다. 하락장에서도 이들은 반드시 목표한 수익을 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헤지 펀드가 초단기성 자금인 핫머니가 되어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종횡무진 휘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는 안정적 수익이라는 목표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할 이유가 없다. 일반 주식형 펀드만 해도 가입자들의 이해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증시가 하락세로 접어들어 손실이 나도 대부분 투자자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헤지 펀드의 고객들은 다르다. 하락장이건 상승장이건 횡보장이건, 세계 경제가 활황이건 불황이건, 이들은 오로지 안정적 수익을 원한다. 헤지 펀드는 이를 위해 각 나라 금융시장의 모든 제도를 활용해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1997년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출발점은 태국 바트화의 폭락이었는데, 이 폭락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헤지 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였다.
로저스가 한국에 살가운 애정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초이노믹스’에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펼치고 있는 그 경제 정책 말이다. 초이노믹스의 핵심은 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즉 회사가 쌓아놓은 유보금을 배당이건 임금이건 어떤 방식으로라도 시중에 풀도록 해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길 지나가던 중소기업 사장님 아무나 붙잡고 “사내 유보금을 풀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한번 물어보라. 괜히 시비 건다고 한 대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쌓아둔 돈이 있어야 풀 것 아닌가?
이제 왜 로저스가 초이노믹스에 열광하는지 분명해졌다. 초이노믹스는 단기적, 안정적 투자수익률을 지향하는 헤지 펀드에 실로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이 재벌 대기업 주식을 보유하면 고배당이 보장된다. 고배당은 다시 주가 상승을 이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이런 시스템에 든든한 뒷배가 돼준다. 주가 상승의 공은 초이노믹스가 가져갈 것이다. 로저스가 전화 통화하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며 한국 투자를 고려할 충분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초이노믹스는 그래서 실패가 자명하다. 그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았다. 모름지기 ‘~노믹스’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면 최소한의 체면은 있어야 한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라고 경제팀을 꾸렸는데, 초이노믹스는 국민이 아니라 헤지 펀드의 수장에게서 칭찬을 듣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자유주의의 허언에 속고 살았다. 그 말이 혹시라도 옳은 듯 해서 신자유주의가 가자는 길로 열심히 따라와봤더니 재벌 일가의 창고만 채워졌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낙수효과라고 했던가? 재벌에 열심히 퍼주면 그들이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려 여기저기 받아먹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이 복잡한 절차의 목적이 무엇인가? 국민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떨어질지 안 떨어질지 모르는 빵 부스러기를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다. 빵을 국민에게 쥐어주면 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아니라, 자본이 아니라, 국민의 소득이 늘어야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단단한 전제여야 한다.
출처 : 헤지 펀드는 왜 ‘초이노믹스’에 열광하나?
한국, 투기자본의 현금자동인출기인가?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하라 - (하)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시간 2014-09-09 11:31:00 | 최종수정 2014-09-09 12:33:45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80년대까지 한국은 놀랍게도 철저한 계획 경제 국가였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정부가 대충 경제성장률을 정하고 이를 하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부는 대놓고 시장 곳곳을 통제했다. 자본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무부 공무원들은 주요 투자신탁회사 펀드매니저들에게 “이번 주는 화학주를 집중 매도하고, 건설주를 집중 매수해 건설업종 주가를 끌어 올려라”고 주문했다.
요즘은 금융통화위원회라는 것이 열려 금리를 결정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구 자체가 없었다. 명목상 기준금리를 정하는 기관은 한국은행이었지만, 실제 한국은행이 이런 기능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곳은 당연히 재무부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게는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다. 아마도 한국은행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별명이 아닐까 싶다.
이에 필적할만한 수치스러운 별명이 하나 더 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일컫는 말인데, 그 별명은 ‘국제 금융자본의 ATM(현금자동인출기)’이라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국 자본에 돈을 구걸하며 규제란 규제를 모조리 풀었다. 그 결과가 바로 ‘한국의 국제 금융자본의 ATM화’였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한국은 최악의 환율 대란을 겪었다. 2008년 초 1050원에서 거래되던 달러 환율은 2009년 초 무려 1570원대로 치솟았다. 오죽했으면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중계 화면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미친 환율 좀 잡아주세요. 우리 아빠 허리 휘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장면이 잡혔을까?
환율 시장에서 ‘미국이 콜록’ 하면, ‘한국이 휘청’ 하는 이유는 바로 촘촘하게 엮인 투기자본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미국 금융시장에 불안한 요소가 발생하면,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한 외국 투기자본들은 빠른 속도로 돈을 인출한다. 실탄이 있어야 본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탄이 필요할 때 이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는 ATM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돈을 넣었다 뺐다 해도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이 콜록하면 그 덤터기를 한국 환율시장이 다 뒤집어쓴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는 국제 자본을 한국 경제를 구원할 구세주로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자본이 쉽게 움직일 길을 최대한 터 주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들은 이런 현상의 위험을 간파하고 조심스럽게 자본의 이동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단호하다. 최경환 부총리는 인사 청문회에서 “국제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토빈세(단기 외환 거래에 부과하는 것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가 주장한 세금)를 도입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조금 쉽게 생각해보자. 외국 자본이 한국에 진출하면 도대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나? 외국 자본의 한국 진출은 간단히 말하면 그냥 그들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기업의 주주가 한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바뀌면 고용이 늘어나나, 아니면 생산성이 높아지나?
금융자본은 근본적으로 산업자본과 다르다. 이들이 한국에서 노리는 것은 실질 투자의 활성화를 통한 고용 확대와 생산성 증대가 아니다. 치고 빠지면서 돈을 벌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외환은행에 투자해 4조 원이 넘는 돈을 뽑아간 론스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가끔 “외국 금융자본 중장기 투자자금은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투자 기간이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이 돈을 회수하는 기간이 늘어날 뿐이다.
자본시장이 개방되면 국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이 어불성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4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는 NAFTA(북미자유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해 자본의 이동에 대한 제한을 철폐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 자본이 들어오면 고용이 증가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 결과는? 미국 자본은 멕시코의 금융기관과 유통기업 대부분을 인수했다. 그런데 이들은 고용을 늘기는커녕 경영 효율화를 명목으로 대량의 정리 해고를 감행했다. NAFTA 이후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많이 늘어난 새로운 직종은 택시 운전기사였다. 이들 대부분은 NAFTA 실시 이전까지 버젓이 쇼핑센터와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산층들이었다.
외국 자본이 한국의 재벌을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재벌의 문제는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 재벌은 철저히 최대주주인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기업의 구조를 설정한다. 이 설정에 가장 열광할 이들이 바로 주요주주인 외국인들이다. 전편에서도 살펴봤듯이 ‘배당금을 늘려 자본 투자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라’는 ‘초이노믹스’에 가장 열광한 이들도 국제 투기자본들이었다.
거창하게 자립경제 같은 어려운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미국이 없는 경제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나?”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미국이 없는 경제’를 상상해 보기는 했느냐 말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는 사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이 기축통화의 위력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한 번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투기자본의 드나듦을 허용하는 한국의 금융체제로는 변화의 싹조차 틔울 수 없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 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내수의 기반인 국민들의 실질 소득이 늘어야 경제의 자립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과감히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할 과세 방침을 찾아야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렵다면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권 주요 국가와 경제 블록을 형성해 서구 경제권역에 맞서는 힘을 키우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이 블록 안에 북한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당연히 고려 대상이다. 뒤처진 북한 경제를 활성화해 남북의 경제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삼는 것이다. 동북아시아권의 군사적 긴장감을 크게 낮추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길이 멀다고 안 갈 수는 없다. 최소한 첫 발을 떼어 볼 용기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출처 : 한국, 투기자본의 현금자동인출기인가?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하라 - (上)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시간 2014-09-08 11:09:23 | 최종수정 2014-09-08 11:09:23
“전화 끊읍시다. 지금 당장 한국 주식을 사야겠어요.”
세계적인 투자 회사 로저스홀딩스의 수장이며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만들어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린 전설적 헤지 펀드 투자자 짐 로저스. 그가 7월 한 보수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화를 다급히 끊으며 남긴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로저스는 올해 초 ‘통일 대박’ 논쟁이 있었을 때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통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말해 잔뜩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전화 받을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투자 의지를 불태웠다던 로저스가 실제 한국에 투자를 시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래 헤지 펀드의 수장들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속된 말로 ‘간을 본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많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투자 여부가 아니다. 전화 인터뷰를 성사한 보수 언론이야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는 그의 발언에 도취돼 신나게 이를 보도한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발언이 한국 경제의 길조가 아니라 재앙의 전조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국제 금용시장의 공적, 헤지 펀드
로저스 발언의 진의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하나는 헤지 펀드가 어떤 성격을 갖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저스가 열광한 ‘초이노믹스’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헤지 펀드(hedge fund)의 원 뜻은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는 펀드’다.
원래 헤지 펀드는 금융시장의 등락과 상관 없이 일정한 수익을 목표로 하는 펀드의 통칭이었다. 주가야 원래 오르내리는 법이지만 고액 자산가들은 이런 위험을 싫어한다. 그래서 돈을 맡기는 부자들은 많이 벌지 않아도 좋으니 은행 금리보다는 높게, 그리고 최대한 안전하게 돈을 굴려줄 곳을 찾는다. 바로 이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이들이 헤지 펀드다. 그래서 헤지 펀드는 투자된 돈의 안전한 관리에 목숨을 건다. 하락장에서도 이들은 반드시 목표한 수익을 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헤지 펀드가 초단기성 자금인 핫머니가 되어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종횡무진 휘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는 안정적 수익이라는 목표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할 이유가 없다. 일반 주식형 펀드만 해도 가입자들의 이해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증시가 하락세로 접어들어 손실이 나도 대부분 투자자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헤지 펀드의 고객들은 다르다. 하락장이건 상승장이건 횡보장이건, 세계 경제가 활황이건 불황이건, 이들은 오로지 안정적 수익을 원한다. 헤지 펀드는 이를 위해 각 나라 금융시장의 모든 제도를 활용해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1997년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출발점은 태국 바트화의 폭락이었는데, 이 폭락을 주도한 세력이 바로 헤지 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였다.
초이노믹스, 헤지 펀드의 시선을 끌다
로저스가 한국에 살가운 애정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초이노믹스’에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펼치고 있는 그 경제 정책 말이다. 초이노믹스의 핵심은 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즉 회사가 쌓아놓은 유보금을 배당이건 임금이건 어떤 방식으로라도 시중에 풀도록 해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길 지나가던 중소기업 사장님 아무나 붙잡고 “사내 유보금을 풀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한번 물어보라. 괜히 시비 건다고 한 대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쌓아둔 돈이 있어야 풀 것 아닌가?
유보금을 쌓아놓고 떵떵거리는 곳은 극소수 재벌 대기업들뿐이다. 게다가 이들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임금 인상은 생색만 내고 결국 배당금을 높일 확률이 훨씬 크다. 이 혜택은 다시 자본소득가, 즉 오너 일가나 로저스 같은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한계소비성향이라는 어려운 경제 용어까지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월 2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100만 원을 더 쥐어줬을 때와 자산이 200억 원인 사람에게 100만 원을 더 쥐어줬을 때 누가 그 돈을 더 열심히 쓸 것인가? 배당액을 높여 부유층의 소득을 높여줘도 내수가 살아날 일이 절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왜 로저스가 초이노믹스에 열광하는지 분명해졌다. 초이노믹스는 단기적, 안정적 투자수익률을 지향하는 헤지 펀드에 실로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이 재벌 대기업 주식을 보유하면 고배당이 보장된다. 고배당은 다시 주가 상승을 이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이런 시스템에 든든한 뒷배가 돼준다. 주가 상승의 공은 초이노믹스가 가져갈 것이다. 로저스가 전화 통화하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며 한국 투자를 고려할 충분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 부유해야 한다
정말 내수를 진작하고 싶고, 그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투자자들에게 뭉칫돈을 쥐어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돈을 쥐어줘야 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내수 경제가 탄탄했던 서유럽 복지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충분한 근로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초이노믹스는 그래서 실패가 자명하다. 그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았다. 모름지기 ‘~노믹스’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면 최소한의 체면은 있어야 한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라고 경제팀을 꾸렸는데, 초이노믹스는 국민이 아니라 헤지 펀드의 수장에게서 칭찬을 듣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자유주의의 허언에 속고 살았다. 그 말이 혹시라도 옳은 듯 해서 신자유주의가 가자는 길로 열심히 따라와봤더니 재벌 일가의 창고만 채워졌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낙수효과라고 했던가? 재벌에 열심히 퍼주면 그들이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려 여기저기 받아먹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이 복잡한 절차의 목적이 무엇인가? 국민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떨어질지 안 떨어질지 모르는 빵 부스러기를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다. 빵을 국민에게 쥐어주면 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아니라, 자본이 아니라, 국민의 소득이 늘어야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단단한 전제여야 한다.
출처 : 헤지 펀드는 왜 ‘초이노믹스’에 열광하나?
한국, 투기자본의 현금자동인출기인가?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하라 - (하)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시간 2014-09-09 11:31:00 | 최종수정 2014-09-09 12:33:45
수치스러운 두 가지 별명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80년대까지 한국은 놀랍게도 철저한 계획 경제 국가였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정부가 대충 경제성장률을 정하고 이를 하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부는 대놓고 시장 곳곳을 통제했다. 자본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무부 공무원들은 주요 투자신탁회사 펀드매니저들에게 “이번 주는 화학주를 집중 매도하고, 건설주를 집중 매수해 건설업종 주가를 끌어 올려라”고 주문했다.
요즘은 금융통화위원회라는 것이 열려 금리를 결정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구 자체가 없었다. 명목상 기준금리를 정하는 기관은 한국은행이었지만, 실제 한국은행이 이런 기능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곳은 당연히 재무부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게는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다. 아마도 한국은행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별명이 아닐까 싶다.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지만 예전에는 재무부에서 기준금리를 정했다. 한 때 한국은행은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다. ⓒ월간 말 |
이에 필적할만한 수치스러운 별명이 하나 더 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일컫는 말인데, 그 별명은 ‘국제 금융자본의 ATM(현금자동인출기)’이라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국 자본에 돈을 구걸하며 규제란 규제를 모조리 풀었다. 그 결과가 바로 ‘한국의 국제 금융자본의 ATM화’였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한국은 최악의 환율 대란을 겪었다. 2008년 초 1050원에서 거래되던 달러 환율은 2009년 초 무려 1570원대로 치솟았다. 오죽했으면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중계 화면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미친 환율 좀 잡아주세요. 우리 아빠 허리 휘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장면이 잡혔을까?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
환율 시장에서 ‘미국이 콜록’ 하면, ‘한국이 휘청’ 하는 이유는 바로 촘촘하게 엮인 투기자본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미국 금융시장에 불안한 요소가 발생하면,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한 외국 투기자본들은 빠른 속도로 돈을 인출한다. 실탄이 있어야 본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탄이 필요할 때 이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는 ATM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돈을 넣었다 뺐다 해도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이 콜록하면 그 덤터기를 한국 환율시장이 다 뒤집어쓴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는 국제 자본을 한국 경제를 구원할 구세주로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자본이 쉽게 움직일 길을 최대한 터 주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들은 이런 현상의 위험을 간파하고 조심스럽게 자본의 이동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단호하다. 최경환 부총리는 인사 청문회에서 “국제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토빈세(단기 외환 거래에 부과하는 것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가 주장한 세금)를 도입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외국 자본 신격화의 본질
▲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오면 무슨 도움이 될까. 론스타의 먹튀는 외국투기자본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일러스트 : 유동수 디자인실장 |
금융자본은 근본적으로 산업자본과 다르다. 이들이 한국에서 노리는 것은 실질 투자의 활성화를 통한 고용 확대와 생산성 증대가 아니다. 치고 빠지면서 돈을 벌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외환은행에 투자해 4조 원이 넘는 돈을 뽑아간 론스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가끔 “외국 금융자본 중장기 투자자금은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투자 기간이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이 돈을 회수하는 기간이 늘어날 뿐이다.
자본시장이 개방되면 국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이 어불성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4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는 NAFTA(북미자유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해 자본의 이동에 대한 제한을 철폐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 자본이 들어오면 고용이 증가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 결과는? 미국 자본은 멕시코의 금융기관과 유통기업 대부분을 인수했다. 그런데 이들은 고용을 늘기는커녕 경영 효율화를 명목으로 대량의 정리 해고를 감행했다. NAFTA 이후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많이 늘어난 새로운 직종은 택시 운전기사였다. 이들 대부분은 NAFTA 실시 이전까지 버젓이 쇼핑센터와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산층들이었다.
외국 자본이 한국의 재벌을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재벌의 문제는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 재벌은 철저히 최대주주인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기업의 구조를 설정한다. 이 설정에 가장 열광할 이들이 바로 주요주주인 외국인들이다. 전편에서도 살펴봤듯이 ‘배당금을 늘려 자본 투자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라’는 ‘초이노믹스’에 가장 열광한 이들도 국제 투기자본들이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경제를 위하여
거창하게 자립경제 같은 어려운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미국 자본이 없으면, 선진 자본이 없으면 우리도 살 수 없다”는 이 뿌리 깊은 미신을 극복하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미국의 콜록’에 영원히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없는 경제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나?”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미국이 없는 경제’를 상상해 보기는 했느냐 말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는 사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이 기축통화의 위력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한 번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투기자본의 드나듦을 허용하는 한국의 금융체제로는 변화의 싹조차 틔울 수 없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 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내수의 기반인 국민들의 실질 소득이 늘어야 경제의 자립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과감히 국제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제한할 과세 방침을 찾아야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렵다면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권 주요 국가와 경제 블록을 형성해 서구 경제권역에 맞서는 힘을 키우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이 블록 안에 북한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당연히 고려 대상이다. 뒤처진 북한 경제를 활성화해 남북의 경제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삼는 것이다. 동북아시아권의 군사적 긴장감을 크게 낮추는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환상을 없애야 한다. 국제 투기자본은 한국 경제를 구원할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자립도를 현저히 깎아 먹는 해악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그들에게 돌아가는 자본 소득을 노동 소득으로 돌려야 한다.
길이 멀다고 안 갈 수는 없다. 최소한 첫 발을 떼어 볼 용기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출처 : 한국, 투기자본의 현금자동인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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