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 한장이면 한미FTA 폐기 가능, 문제는 의지
[해설] "발 빼는 민주당…대안체제 논의해야"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12-02-24 오전 7:56:0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일이 확정됨에 따라 협정을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을 맞는 모양새다. 정부는 공세를 펴고 있고, 민주당 내에서는 잡음이 커지고 있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이 공격의 선두에 섰다. 이 대통령은 발효일이 확정된 지난 22일 가진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는 사실 전 정부에서 결정했고, 국가 경제 발전이나 안보를 위해 매우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본다"며 "지금 반대하는 분들도 과거 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분들인데, 이 분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야권인사들의 실명까지 콕 집어 공격할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셌다. 이는 '한미 FTA 부담을 줄이기 위해 4월 총선과 시간차가 있는 2월 중 발효를 원한다'는 이전의 관측과 배치되는 행보다. "핵안보정상회의 일정에 맞춰 한미 FTA 발효를 원한다"는 미국의 바람대로 일정이 진행돼, 총선국면과 FTA를 완전히 떼놓기 어렵게 되자, 아예 보다 선명한 공세구도를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말 끝났나
이에 반해 야권의 공세는 단박에 식었다. 민주통합당이 곧바로 의원총회를 소집해 '한·미 FTA 발효 중지 및 전면적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냈으나, 이미 먹히지 않는 카드인 '재협상'에 머무는 데 그쳤다. 도리어 이날 의원총회에 한명숙 대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 홈페이지에는 민주통합당의 저자세 분위기에 실망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정동영 전 최고위원 등 소수를 제외하면, 당 분위기가 이미 '게임 끝'이라는 기운이 확연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민주당이 벌써부터 저렇게 바람을 잡는 걸 보니 답답하다"며 "대중 동력을 통해 문제를 정면돌파해야지, 포기할 때가 아니다. 이미 발효는 예고된 사실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현실적으로 두 나라 국회가 비준에 동의하고 발효일까지 확정되다보니 반대 진영에서 동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총선, 대선 시기와 겹쳐 운동진영의 활동가들 관심이 이 방면으로 몰리는 감이 있고, 정당의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에는 '한미 FTA 폐기' 자체를 불가능한 요구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자기검열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애초 민주당이 '폐기'가 아닌 '재협상'을 주장할 때부터 이런 비판은 적잖았다. 폐기는 발효 이후에도 매우 간단히 이뤄질 수 있다.
최종규정을 다룬 한미 FTA 협정문 24.5조 '발효 및 종료' 항목은 한미 FTA 협정의 종료 방법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협정문에 따르면 "이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 간단히 말해 한국이 한미 FTA 폐기를 원한다면 그저 미국에 협정 종료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 자동 종료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토론회에서 이 조항에 대해 "대통령이 미국에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한미 FTA는 종료된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이제 시작"
오히려 한미 FTA 문제는 장기적인 의제로 수년 간 한국 사회에 숙제를 안겨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박 정책국장은 "아직 여러 변수들이 남아 있다"며 "<인사이드 유에스트레이드> 등 미국 언론에서도 '발효에는 한국 야당이 변수'라고 지적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당장 쇠고기 문제만 해도, 이미 미국 언론에서 알려졌듯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총선과 대선 사이 국면에 쇠고기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지난 2008년 정부와 미국 측의 재협상에 따라 불거진 쇠고기 방사선 조사(照射) 허용 문제가 다시금 논란이 될 수 있다. 방사선 조사란, 방사선을 도축한 고기에 쬐어 살균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불결한 도축장 환경에서 발생하는 균을 없애기 위해 이 방식을 이용한다.
박 국장은 "2008년 4월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방사선 조사를 금지한 국내법 개정을 전제로 정부가 미국 측에 방사선 조사를 허용한 이면 합의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한미 FTA 비준을 전제로 수락한 투자자국가제소제(ISD) 재협상 논의도 강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요구 수준에 맞지 않을 경우 한미 FTA 재협상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폐기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
"대안통상체제 논의 시작해야"
무엇보다 대규모 경제 협상의 특성상 한미 FTA 효과가 수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날 것인만큼,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응하는 새 패러다임 논의가 본격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 교수는 "FTA에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대안 통상모델, 곧 '신통상정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며 "앞으로 국회 권력이 변화할 때를 대비해 대안통상협정 마련을 공약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특정 FTA에 대한 찬반여론에 사회가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한미 FTA 협정 과정서 드러난 통상교섭본부 독재를 방어하기 위해 통상교섭본부의 해체 등 보다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한중 FTA를 포함한 모든 FTA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별히 한미 FTA 발효에 대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며 "한미 FTA 논란이 수년 간 지속된 걸 감안할 때, 이번 발효 역시 여러 변곡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출처 : 팩스 한장이면 한미FTA 폐기 가능, 문제는 의지
[해설] "발 빼는 민주당…대안체제 논의해야"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12-02-24 오전 7:56:0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일이 확정됨에 따라 협정을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을 맞는 모양새다. 정부는 공세를 펴고 있고, 민주당 내에서는 잡음이 커지고 있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이 공격의 선두에 섰다. 이 대통령은 발효일이 확정된 지난 22일 가진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는 사실 전 정부에서 결정했고, 국가 경제 발전이나 안보를 위해 매우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본다"며 "지금 반대하는 분들도 과거 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분들인데, 이 분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야권인사들의 실명까지 콕 집어 공격할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셌다. 이는 '한미 FTA 부담을 줄이기 위해 4월 총선과 시간차가 있는 2월 중 발효를 원한다'는 이전의 관측과 배치되는 행보다. "핵안보정상회의 일정에 맞춰 한미 FTA 발효를 원한다"는 미국의 바람대로 일정이 진행돼, 총선국면과 FTA를 완전히 떼놓기 어렵게 되자, 아예 보다 선명한 공세구도를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발효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야당에 강한 공세를 폈다. ⓒ뉴시스 |
정말 끝났나
이에 반해 야권의 공세는 단박에 식었다. 민주통합당이 곧바로 의원총회를 소집해 '한·미 FTA 발효 중지 및 전면적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냈으나, 이미 먹히지 않는 카드인 '재협상'에 머무는 데 그쳤다. 도리어 이날 의원총회에 한명숙 대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 홈페이지에는 민주통합당의 저자세 분위기에 실망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정동영 전 최고위원 등 소수를 제외하면, 당 분위기가 이미 '게임 끝'이라는 기운이 확연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민주당이 벌써부터 저렇게 바람을 잡는 걸 보니 답답하다"며 "대중 동력을 통해 문제를 정면돌파해야지, 포기할 때가 아니다. 이미 발효는 예고된 사실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현실적으로 두 나라 국회가 비준에 동의하고 발효일까지 확정되다보니 반대 진영에서 동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총선, 대선 시기와 겹쳐 운동진영의 활동가들 관심이 이 방면으로 몰리는 감이 있고, 정당의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에는 '한미 FTA 폐기' 자체를 불가능한 요구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자기검열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애초 민주당이 '폐기'가 아닌 '재협상'을 주장할 때부터 이런 비판은 적잖았다. 폐기는 발효 이후에도 매우 간단히 이뤄질 수 있다.
최종규정을 다룬 한미 FTA 협정문 24.5조 '발효 및 종료' 항목은 한미 FTA 협정의 종료 방법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협정문에 따르면 "이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 간단히 말해 한국이 한미 FTA 폐기를 원한다면 그저 미국에 협정 종료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 자동 종료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토론회에서 이 조항에 대해 "대통령이 미국에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한미 FTA는 종료된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이제 시작"
오히려 한미 FTA 문제는 장기적인 의제로 수년 간 한국 사회에 숙제를 안겨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박 정책국장은 "아직 여러 변수들이 남아 있다"며 "<인사이드 유에스트레이드> 등 미국 언론에서도 '발효에는 한국 야당이 변수'라고 지적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당장 쇠고기 문제만 해도, 이미 미국 언론에서 알려졌듯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총선과 대선 사이 국면에 쇠고기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지난 2008년 정부와 미국 측의 재협상에 따라 불거진 쇠고기 방사선 조사(照射) 허용 문제가 다시금 논란이 될 수 있다. 방사선 조사란, 방사선을 도축한 고기에 쬐어 살균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금지돼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불결한 도축장 환경에서 발생하는 균을 없애기 위해 이 방식을 이용한다.
박 국장은 "2008년 4월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방사선 조사를 금지한 국내법 개정을 전제로 정부가 미국 측에 방사선 조사를 허용한 이면 합의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한미 FTA 비준을 전제로 수락한 투자자국가제소제(ISD) 재협상 논의도 강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요구 수준에 맞지 않을 경우 한미 FTA 재협상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폐기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
▲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철회 및 폐기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대안통상체제 논의 시작해야"
무엇보다 대규모 경제 협상의 특성상 한미 FTA 효과가 수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날 것인만큼,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응하는 새 패러다임 논의가 본격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 교수는 "FTA에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대안 통상모델, 곧 '신통상정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며 "앞으로 국회 권력이 변화할 때를 대비해 대안통상협정 마련을 공약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특정 FTA에 대한 찬반여론에 사회가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한미 FTA 협정 과정서 드러난 통상교섭본부 독재를 방어하기 위해 통상교섭본부의 해체 등 보다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한중 FTA를 포함한 모든 FTA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별히 한미 FTA 발효에 대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며 "한미 FTA 논란이 수년 간 지속된 걸 감안할 때, 이번 발효 역시 여러 변곡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출처 : 팩스 한장이면 한미FTA 폐기 가능, 문제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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