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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노동시장 개편안 ‘8대 핵심 쟁점’ 뜯어보니…

노동시장 개편안 ‘8대 핵심 쟁점’ 뜯어보니…
노동시간 주 68→52시간…‘특별연장 8시간’ 덧붙여
정년 연장 따른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자율로 추진

[한겨레] 전종휘 김민경 기자 | 등록 : 2015-09-14 21:41 | 수정 : 2015-09-15 11:20


▲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4인 대표자회의를 마친 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해 노사정 대표자들이 대타협안에 사실상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 통상임금·노동시간

통상임금 범위 법제화…‘제외항목’ 정부에 맡겨 논란

노사정이 잠정합의한 내용 가운데 실제 적용 때 노동 현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로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명확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이른바 3대 현안이다.

노사정은 노동시간을 정부·경영계가 요구해온 대로 현재 1주 68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원칙적으로는 연장근로만 포함한 1주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그 뒤에는 4년 동안 특별연장근로란 이름으로 8시간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적어도 2024년까지는 주 60시간 체제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러곤 2024년에 특별연장근로 제도의 폐지 여부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연장근로를 하려면 노사 대표의 서면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나, 10% 안팎에 불과한 낮은 조직률의 국내 노동 여건을 고려하면 사실상 회사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 산업계에 미칠 충격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원칙에서 큰 폭의 후퇴를 했다는 평가가 많은 이유다.

법정 노동시간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 운수업 등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현재 26개에서 10개로 축소된다. 나머지 16개 업종의 장시간 노동 개선 방안은 2016년 5월 말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2013년 12월 18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 판결 뒤 통상임금 개념의 명확화 필요성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노사정은 “통상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는 개념 정의를 입법화하되, 구체적인 제외 금품은 시행령에 위임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정부·재계가 주장해온 60살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 체계 개편도 “노사는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기로 한다. 임금체계 개편 방향은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노사 자율로 추진하기로 한 임금체계 개편을 제외하면, 노동시간 단축과 통상임금은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조만간 노사정 합의 내용이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노사정 합의를 명분 삼아 야당을 압박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이미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터라 당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갈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통상임금 제외 규정은 노사정이 시행령에 위임해 사실상 정부가 통상임금 범위를 결정할 길을 열어뒀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새날)는 “노사정이 특별연장근로를 인정하는 바람에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근로기준법을 무시해온 관행을 바로잡지 못했다”며 “통상임금은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이면 모두 인정돼야 하는데 시행령이 이 기준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장시간 노동은 그대로 두고 되레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해 ‘값싼 추가 노동’이 지속하리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민경 기자





둘 중 누가 비정규직일까요 둘은 케이블방송사 씨앤앰 직원이었지만 외주화 이후, 임금과 처우에서 차이가 커지고 있다. 안도환(왼쪽)씨는 씨앤앰 정규직, 강규석씨는 협력업체 타코스 직원이다. 여주/박종식 기자


■ 비정규직·중기 대책

원청이 하청노동자 복지사업 지원땐 세제 혜택
“대기업 횡포 근절·골목상권 보호 등 핵심 빠져”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시작인 원·하청, 정규직·비정규직, 대·중소기업 이중구조 문제는 합의문에 청년고용 다음으로 등장한다. 원청, 대기업, 고소득 노동자의 협력과 정부의 지원을 통해 하청,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노사정은 근로소득 상위 10% 이상의 임직원이 자율적으로 억제한 임금인상분과 이에 상응하는 기업의 기여를 바탕으로 청년채용을 늘리고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의 처우 개선 추진에 합의했다. 기업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재단 등을 통해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지원하면, 정부는 이를 세제 지원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기업이 사내근로복지기금 등을 통해 중소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복지사업을 활성화하면 정부가 이를 손비 처리해주거나 기업소득환류세제 과세 제외 등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원·하청 공정거래를 위해 납품단가조정협의제, 불공정거래 의무고발요청제도,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등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런 합의 내용은 노사는 자율로, 정부는 각종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6월에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내놓는 상생협력기금의 7%를 세액 공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14일 “재벌 대기업의 갑질 횡포, 골목상권 보호,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한 법 개정은 (노사정 합의문에서) 모두 빠졌다”며 “하청 중소기업과 하청 노동자한테서 부당한 이익을 얻어온 원청 대기업에 어떤 책임도 부과하지 않은 채 노사정의 부담 분담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 만 18~35살 청년층의 실질실업률은 30.9%에 이른다.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 밖 청년’은 전체 20대의 절반 가까이(456만2천 명) 된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모습. 한겨레


■ 청년일자리·임금피크제

청년 고용·정년 보장 ‘일거양득’?
임금피크제 실제 효과는 미지수

노사정이 합의한 문구에는 그동안 숱한 논란을 부른 임금피크제가 들어 있다. 청년고용 창출과 장년층 고용 안정을 명분으로 도입됐으나, 효과를 둘러싸곤 논란이 지속할 전망이다.

이번 합의문은 청년고용 창출과 관련해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된 재원을 청년고용에 활용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근로소득 상위 10%의 임직원은 자율적으로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재원으로 청년 채용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고용 확대 기업에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노사정은 ‘노사정 협력을 통한 청년고용 활성화’를 합의문의 맨 앞에 올렸다.

임금피크제는 장년층 고용을 안정화하는 장치로도 등장한다. 합의문 가운데 ‘정년연장 연착륙 등을 위한 임금제도 개선’ 항목은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고용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교육, 모델 개발·확산 및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라고 돼 있다. 임금피크제로 장년층 임금이 깎이게 됐으니 대신 이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여기서 절약된 재원으로 청년층을 신규채용하는 이른바 ‘양수겸장의 카드’라는 것이다.

몇 살부터 임금을 깎을지, 50대 후반 정점에 이른 임금에서 깎아 나가는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합의문에 없다. 그런 부분은 개별 기업의 노사가 알아서 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임금피크제가 청장년의 고용 창출과 안정이라는, 정부가 내세우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지다. 자발적 퇴직은 물론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기업의 잦은 구조조정 탓에 한국 노동자가 퇴직하는 평균 나이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기도 전인 52살이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예컨대 2012년에 퇴직한 55~59살 노동자 36만여 명 가운데 노동자의 퇴직 사유가 ‘정년퇴직’이라고 답한 이는 1만8100여 명뿐이다. 전체의 5%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제동을 걸어 노동자가 정년까지 일할 여건을 조성하고 기업이 노동자 임금을 깎은 재원을 다른 데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보완 조처가 마련되지 않으면 임금피크제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기업 주머니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리란 우려가 큰 이유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실업을 명분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가 진행됐는데 합의문에서 정작 청년고용은 공허한 내용으로 채워져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전종휘 김민경 기자





■ 고용·산재보험 개선

실업급여 확대…출퇴근길 사고도 산재 인정

노사정이 합의한 사회안전망 확충의 고갱이는 출퇴근 재해 보상 등 산업재해보험제도 개선, 실업급여 확대, 최저임금제도 개선이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구직급여(실업급여) 확대 방안이다. 노사정은 “실업급여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구직급여액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수급 기간을 현재의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리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산업재해 인정도 확대된다. 노사정은 “출퇴근 재해 보상 등 산재보험제도 개선 방안을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마련한다”고 합의했다. 합의가 현실화되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최저임금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된다. 노사정은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통계 기준, 산입 임금 범위, 지역별·업종별 결정 등 제반 쟁점 사항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2016년 5월 말까지 노사정위에서 논의해 마련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의제들은 노동계가 오랫동안 꾸준히 제기해온 의제다. 다만 ‘최저임금 지역별·업종별 결정’은 경영계의 요구가 반영됐다.

김민경 기자


출처  노동시장 개편안 ‘8대 핵심 쟁점’ 뜯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