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
유명자 전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17 11:24:58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된다고 했다. 2,822일. 곰 28마리가 사람이 되고도 남는 시간을 그는 쓸쓸히 버텼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연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켜져 갔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한다”는 마법의 주문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그리고 승리했다. ‘최장기 투쟁’에 마침표를 찍고 내년 1월 현장에 복귀하는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유명자(47) 씨를 14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2,822일 간의 농성 끝에 복직 합의를 끌어낸 유명자씨 ⓒ민중의소리


간 큰 신입의 반란,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했을 뿐인데”

유명자 씨와 재능교육 간의 끈질긴 인연(?)은 지난 1998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유 씨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했을 뿐인데 상황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1~2년 정도 일해서 카메라 장비를 사려고 일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어서 거부감 없이 시작했죠. 하지만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멘붕’이었습니다. 첫 달에 제가 가르치던 학생 중 3명이 그만두고 1명이 새로 가입했어요. 실적이 -2가 된 거죠. 최소한 2명을 더 채워서 실적 0 이상을 만들라는 압박이 들어왔어요. 그럴 수 없다고 버텼죠. 저는 처음부터 ‘간 큰 신입’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그는 ‘영업실적 강요’, ‘인센티브를 통한 월급지급’ 등 “학습지 교사를 둘러싼 모든 노동 조건이 부당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씨가 일을 시작한 지 1년만인 1999년 11월 불합리한 노동조건에 반발한 동료교사들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달 뒤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필증을 발부받았다.

“저는 학생운동이나 노조 활동을 해온 사람이 아니에요. 제 근무 조건에 부당함을 느꼈고,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서 노조가 필요했습니다.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절대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 민주노총 문화제에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유명자 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기타


7년 7개월간의 싸움, “꼭 사과받고 싶었다”

그는 “학습지 교사를 시작하고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처음부터 현재까지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상황은 2005년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악화됐다.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학습지 교사는 개인사업자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요지다. 2007년 사측은 이를 근거로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며 단체협약을 파기했고, 노조는 거리농성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2010년 노조원 12명을 해고했다.

“사람들은 긴 싸움 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없었는지 묻습니다. 저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답합니다. 재능교육과 싸우는 매 순간이 처절했고, 고통스러웠어요. 사측이 용역 깡패를 고용해 천막 농성을 하는 교사들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을 쏟아내고, 교사들을 미행해가며 성희롱 등을 저질렀던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꼭 사과를 받아내고 싶어요. 그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싸움은 2013년 8월 분기점을 맞는다. 사측과 해고자 간의 복직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해고자 9명이 사측과 복직에 합의했다. 하지만 유 씨는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에 대한 요구 중 단체협상 회복에 관한 사항이 불충분하다며 합의를 거부했다.

“우리는 ‘복직’과 ‘단협 회복’ 두 가지만을 요구하며 수년간 싸워왔습니다. 이 중 한 가지 요구안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사측이 절대 단협 요구까지 받아들이지 않을거라’는 한계를 갖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초기 요구를 받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 우리에게 값진 연대를 보내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거리농성 2,822일 인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에서 복직합의 체결 조인식을 마친 박경선 씨(오른쪽), 유명자 씨(가운데) 전 학습지 노조 재능교육지부장과 강종숙 전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이 손을 잡고 있다. ⓒ김철수 기자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

유 씨는 최근 “‘축하한다’는 말 다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가장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업장이 어떤 합의를 했는지가 다른 사업장 투쟁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퇴보한 조건으로 합의하면 다른 사업장도 그 정도 수준에서 타협합니다. 그래서 7년 7개월을 버텨온 거예요. 그러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는 연대를 하러 온 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불쌍해서 연대하러 왔다면 다신 오지 마라. 너희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상황에서 우리의 싸움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를 고민하라’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기점으로 해고가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남을 위한 연대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위한 연대가 더 중요합니다. 자신을 위해 연대해야지 노동자들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는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기독인 모임 불한당, 동국대 달려라 진보, 국제코뮤니스트 전망, 이랜드 뉴코아, 코스코 비정규직, 기륭, 한진, 콜드콜텍,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개인 활동가들….” 한참 동안 많은 사람의 이름이 불렸고,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합의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너무 억울한 거에요. 2,822일 동안 싸워온 결과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니 얻은 게 하나도 없잖아요. 40만 원 생활비로 농성장 나올 차비를 걱정하며 아등바등 버텨온 시간만 생각하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때마다 스마트폰을 열어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봅니다. 저의 전 재산이 돼버린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요.”

유 씨는 “내년 1월 4일 복직 전까지 시간을 내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지만, 방법은 차차 고민해보겠다"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진짜 연대를 하고 싶어요. 기륭 해고자들이 복직 합의를 하고 회사로 돌아가기 전에 연대 투쟁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남은 4개월 동안 몸 추스르면서 전국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제가 진 빚을 갚고 싶습니다.”

▲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2013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이날 예배에는 대표적인 노동탄압 사업장인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골든브릿지,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자료사진) ⓒ이승빈 기자


출처  [만민보]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