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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누를수록 강해지는 줄 모르는 정몽구 회장님, 포기란 없습니다”

“누를수록 강해지는 줄 모르는 정몽구 회장님, 포기란 없습니다”
고공농성 100일 맞이하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최정명 씨 인터뷰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17 18:40:58


여름이 시작되던 6월 초,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들고 오른 침낭은 낡고 낡아 옷을 겹겹이 입고 들어가도 새벽 한기를 참을 수 없게 됐다. 계절이 바뀌고 100일의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인권위 전광판 위 두 노동자에게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들의 의지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져있었다.

고공농성 100일을 하루 앞둔 17일, 민주노총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대의원 최정명(45)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직접 만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가족의 출입마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통화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80일째 고공농성 중인 최정명, 한규협 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광고탑 농성장에서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대회 참가자들에게 깃발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00일, 법 지키라는 당연한 얘기 듣는데 이렇게까지 걸려야 하나”

“저희 말고도 (고공)농성하시는 분들이 있고, 그 전에 400일 넘게 농성하셨던 분들도 있잖아요. 고공농성 해보니까 사람이 할 짓이 아닌거 같아요(웃음). 빨리 해결되고 내려가면 좋겠죠. 현대기아차가 법 지키라고, 너무도 당연한걸 요구하며 올라온건데, 재벌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손도 못쓴채 이렇게 시간이 가고 있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고공농성 100일을 앞둔 심경을 묻는 질문에 최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현대기아차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최 씨와 한규협(41), 두 노동자는 정몽구 회장이 직접 책임질 것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 전광판에 올랐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던 사측은 고공농성 중인 이들을 해고했다. 지난 3일 사측과 노조의 특별교섭 자리가 마련됐지만, 사측은 고공농성 해제 없이는 대화하지 않겠다며 이후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음식과 물이 차단돼 이렇게 오래 굶으면서 고공농성 한 경우도 드물 거에요. 인권위 전광판 광고업체에서 새벽에 플랑 찢겠다고 가위 들고 올라오고... 기아차는 광고업체 뒤에 숨어있는거죠. 급기야 해고까지 시키고 정말 잔악하기 이를 데 없어요. 뻔히 전광판 위에 있는지 알면서 해고하겠다 이러고, 몇 번씩 바지사장들 보내서 또 소명하라고 그러고...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 탑 파이브에 들겠다고 하던데, 노동탄압, 인권탄압으로 5위 안에 들고도 남을 거에요.”

그러나 ‘분노’와 ‘연대의 힘’은 이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아요. 기가 차고 분노스러울 뿐이죠. 저렇게 하면 의지가 약해질거라고 생각하나본데, 진짜 잘 모르는거 같아요. 탄압할수록 의지는 강해지는데 말이죠.”

연대하는 분들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주변의 아픔에 저렇게까지 던져놓고 함께 했나’ 하면서 돌아보기도 하고. 참 소중하죠. 탄압이 있어도 꿋꿋하게 버텨 나가고 힘을 다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지지와 연대가 있는 이상 무너지지 않을거라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새벽 한기에 잠 설쳐도 음식과 물만 전달받을 수 있어

▲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45)씨와 한규협(41)씨가 고공 농성 100일 이틀 앞둔 16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판에 ‘정몽구 구속’과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훼손된 채 여전히 걸려있다. ⓒ김철수 기자

▲ 16일 각계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문제 해결 및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공: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그러나 70미터 상공에서의 100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갖고 올라온 침낭은 다 낡았고 옷을 겹겹 입어도 한기를 참을 수 없는 날씨가 됐지만, 물과 음식 말고는 반입이 차단된 상태이다. 읽을 책 한권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새 침낭과 이불은 바랄 수조차 없다.

“바람이 너무 강하고 추워서 새벽에 옷을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자요. 근데 침낭이 워낙 얇고 오래돼서 소용이 없죠. 가족들이 밥하고 물 올리는 것만 가능하고. 평일에 가족이 못오면 인권위 직원이 밥이랑 물을 올려주고 있어요. 새 침낭은 커녕 책 한권, 청테이프 하나도 못 올리게 하고 있으니... 그런게 답답하죠.”

화가 날 상황일 법한데도 오히려 담담하게, 해탈한 듯 상황을 전하던 최 씨를 힘들게 하는건 추락에 대한 공포였다.

“시간이 지나니까 다른건 그래도 적응을 했는데 추락위험이 항상 있어요. 안전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 번 중에 한번 실수하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가도 추락에 대한 공포는 없어지질 않네요.”


“힘 충전하고 오셔서, 같이 싸워요”

사내하청, 파견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만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비정규직 확산의 길을 열어준 노사정위 합의는 어떻게 보였을까?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정권과 집권 여당이 재벌 편을 들어주는 법안을 만드는데 들러리로 방패막이 된 한국노총 지도부도 한심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구분을 없애라고 싸우고 있는데 비정규직이 봇물 터지듯 생겨날 합의안이 나오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을 위해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민중들이 힘을 모아서 분노가 뭔지 보여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다 죽는다, 이런 각오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 연휴를 고공농성장에서 맞이할 그의 마음이 걱정됐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5학년, 7살인 두 아이가 사진으로 봐도 100일 사이 훌쩍 컸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인 안내려가겠다고 마음먹고 올라왔잖아요. 추석이 지나면 설이 있고, 설이 지나면 또 뭐가 있겠죠(웃음). 추석 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전광판 위에서 추석을 새야하는 상황이라면 둘이서 나름의 추석행사를 하면서 오붓하게 지낼 생각이에요. 다른 분들이 가족들하고 연휴 잘 보내고 힘 충전하고 오셔서 같이 싸웠으면 좋겠어요. 미안한 마음일랑 갖지 마시고. 충전해야 힘이 나서 또 같이 싸우죠(웃음).”


출처  “누를수록 강해지는 줄 모르는 정몽구 회장님, 포기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