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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차례 못 지내요. 아직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차례 못 지내요. 아직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추석 앞둔 진도 팽목항, 시민들과 함께 한 세월호 가족들
[민중의소리] 김주형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27 11:52:46


▲ 한 무리의 새떼가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는 팽목항 하늘 위를 날아가고 있다. ⓒ김주형 기자

“추석이라고요? 차례 못 지냅니다. 상만 차릴 겁니다. 아직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추석과 설, 다시 추석이 돌아왔지만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차례는 치러지지 못한다.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며 애타게 미수습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과 함께 웃으면서도 웃음 속에 스며 있는 그늘을 감출 수 없었다.

추석을 앞둔 26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도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등대를 마주보고 방파제 오른쪽에 빼곡하게 매달린 갖가지 펼침막은 항구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에 배를 부풀렸다 바람을 뺐다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 가을 하늘과 강렬한 햇살을 작렬하고 있는 진도 팽목항 방파제. ⓒ김주형 기자

팽목항에 도착하자 여객선 한 척이 귀향객들을 싣고 바다를 뒤로 밀어내며 서서히 관매도 같은 진도 인근 섬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뱃고동도 없었다. 한 시간쯤 뒤 조도 등을 향하는 여객선이 들어오고 다시 20여명의 귀향객과 여러 대의 승용차가 그 배에 올랐다. 그리고 그 배 또한 뱃고동도 없이 그리운 가족들을 향해 떠나갔다.

귀향객을 떠나보내자 팽목항은 외로운 바람만 더욱 세차게 불어대기 시작했다. 가끔 진도가 고향인듯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팽목항 방파제를 서서히 둘러보곤 훌쩍 떠나갔다.

멀리 등대 앞에서는 노래소리가 들리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전국의 예술인들이 미수습자 9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4번째 팽목항 예술제 사전연습 중이었다. ‘팽목항에서 여전히… 기다리다’라는 내용으로 이날 오후 6시 예술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날 예술제를 끌어갈 민중가수 이수진씨를 비롯한 서울 마로니에 촛불공연팀이 연습에 한창이었다.

▲ 26일 오후 팽목항 방파제에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며 전국의 예술인들이 마련한 4번째 팽목항 문화제가 붉은 노을로 물든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열리고 있다. ⓒ김주형 기자

6시가 조금 넘어 예술제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나자 방파제 왼쪽으로 해가 지면서 하늘과 바다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노을져 붉게 물들어갔고, 바다 또한 붉게 물들어가면서 파도에 따라 일렁거렸다. 30여명이 공연을 지켜보고, 몇 명은 방파제 좌우에서 노을을 사진에 담거나 펼침막, 그림타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불어대는 바람에 점퍼를 덧입거나 모포를 몸에 두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분향소쪽으로 돌아갔다.

전남 영암에서 온 한 시민은 “자식 잃은 부모들, 가족 잃은 식구들의 신음소리가 선하다”면서 “그들의 신음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광주를 거쳐 왔다는 50대 시민은 “말을 하지 못하겠다. 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고, 경남 남해에서 온 30대 오누이도 비슷한 답을 내놨다.

예술제를 마치고 분향소 근처 식당에서 미수습자 가족들과 예술인들, 시민들이 어울려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준비한 밥과 닭볶음탕, 광주시민상주모임이 싸온 전과 부침개 등으로 저녁이 해결됐다.

웃으며 저녁을 함께 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활짝 웃지는 못했다. 권재근씨 형인 권오복씨는 “추석요? 차례 못 지냅니다. 그냥 상이나 차릴 겁니다”라고 한숨을 내뱉으며 “아직 우리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라며 말을 흐렸다.

▲ 세월호 참사 이후 3번째 맞는 명절인 추석에도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는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차례는 치러지지 않는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직 품에 안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차례를 지내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상만 차려두고 추석을 맞는다. 사진은 최근에 팽목항에 놓여 있던 상차림. ⓒ김희용 목사

겨레 최대명절인 추석이지만, 세월호 참사 540여일이 지나도록 가족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명절은 없었다. 문득 지난달 예술제에서 ‘은화엄마’ 이금희씨가 오열하며 한 말이 떠올랐다.

친구들이랑 같이 떠난 수학여행, 친구들이랑 같이 졸업시키고 싶다

추석이 지나면 곧 겨울이 다가온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미수습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 떠났던 (남)현철이와 (박)영인이, (조)은화와 (허)다윤이가 겨울이 가기 전에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을까?

▲ 붉은 노을이 건너편 하늘과 바다를 물들일 때 팽목항 뒷산으로 만월에 조금 못미치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는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올 희망을 위해 영정 사진 대신 노란 기다림의 쪽지가 들어 있다. ⓒ김주형 기자
▲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시민들이 26일 오후 팽목항 방파제를 둘러보고 있다. 한 가족이 팽목항 방파제 입구에 걸려 있는 미수습자 9명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지켜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진도 팽목항에는 추석을 맞아 귀향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이 조도 등 진도 인근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진도 팽목항에는 추석을 맞아 귀향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이 조도 등 진도 인근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추석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는 이따금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 둘러보고 있다. ‘엄마의 노란손수건’ 까페에 실린 글과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들의 사진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방파제에 ‘졸업을 함께 하고 싶다’는 꿈을 담아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주형 기자

▲ 한 시민이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참사 관련 갖가지 희망, 희생자에게 남기는 말과 그림 등이 담긴 타일을 꼼꼼이 살펴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방파제 등대 앞에 설치돼 있는 하늘우체통에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띄운 편지가 담겨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방파제 너머로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가을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방파제 너머로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가을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예술제 찾은 시민들이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김주형 기자

▲ 팽목항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추석을 하루 앞두고 떠오른 달을 보며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이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김주형 기자


출처  “차례 못 지내요. 아직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