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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2등 국민’ 농민들의 한가위 명절

2등 국민농민들의 한가위 명절
[민중의소리] 한도숙(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 최종업데이트 2015-09-27 11:53:34


한가위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대목이다. 본래 한가위가 농사를 짓는 환경이 낳은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일을 따고 햅쌀을 거두어 조상들께 올리고 나누어 먹는다. 핵가족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에겐 이 특별한 유전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다. 한가위에는 누구나 조상을 찾고 음식을 나눈다. 그래야만 맘 편히 여가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격식은 잊어버렸으나 몸속의 유전자는 한가위만 되면 송편을 하고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도록 움직인다. 참 묘한 일이다.

그 유전자 덕에 농부들은 대목 특수를 노리고 농산물 출하를 준비한다. 희망을 가지고 좋은 값에 농산물이 팔리길 기대한다. 그런데 농민들은 우울하다. 한가위 농산물 값이 언제부턴가 똥값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이것으로 위기를 감지한다. 위기라고 느끼는 농민이 90%가 넘는 상황이 됐다. 한가위 대목특수를 기대해 보지만 정부의 물가관리는 농민들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더욱 “내손으로 농사는 짓지만 이후엔 농사지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화가 나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피지 않는다. 시장의 원리로 농산물이 과잉이라서 값이 하락 한다고 단순히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접어야 하는 것인가?


가뭄과 가격폭락 속에 찾아온 명절

올해는 유례없이 가뭄이 깊어진 해이다. 봄부터 가을 까지 비한방울 제대로 내렸다고 보기 어려운 기상 조건이었다. 수리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수리안전답마저도 마지노선이 붕괴 될 듯싶을 정도로 저수율이 떨어졌다. 일부 지역은 내년 봄에 물을 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봄에 김포 어느 지역에 소방차를 대동하고 물 뿌리는 시늉만 했지 가을가뭄이나 내년가뭄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봄가뭄을 이기고 길러낸 작물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이나 해 봤는가. 가뭄이 들면 작물 생장이 적어 생산량이 적고 품위도 떨어져 제값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각종 수입농산물이 시장을 잠식해 버리니 농민들은 이중삼중으로 고통뿐이다. 그렇게 생산한 햅쌀 값이 예년20만원 안팎이던 것이 올해는 16만원선에서 거래 되고 있다. 아무리 수입쌀이 들어 와도 추석 송편 빚는 햅쌀 값은 쌀값 이상으로 매겨지는 게 보통의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16만원이라도 가져가려는 상인조차 없다고 한다. 오래 농사를 지은 농부들이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올해 쌀값에 대해 걱정을 한다.

지난해 11월 2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중FTA 저지, 쌀 전면개방 반대.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위한 범국민대회'에서 한 농민이 담배를 피고 있다. ⓒ양지웅 기자


투입비용은 커지고 가격은 하락하니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할 텐가. 인건비가 비싸서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농사는 잘 지어도 장값이 모자라는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산업화 이전에 농사가 단순히 끼니를 먹기 위한 행위이기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 않는가. 출물(투입비)보다 소출이 더 많아야 농가경제가 지탱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소출보다 출물이 커지는 기형형태의 농사가 지속되고 농가는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밖에 없다.

고추가격을 한번 살펴보자. 한동안 90%이상 자급하던 고추다. 그런데 올해 고추생산량이 대폭 줄었다. 역시 가뭄 때문이다. 그런데 고추값은 끝을 모르고 하락 하는 추세다. 본래 고추는 고추를 심은 땅을 산다고 할 만큼 환금성이 좋은 작물이었다. 그러니 농민들은 고추농사에 심혈을 기우렸고 그런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담배농가의 퇴출로 고추농사로 이전은 고추의 과잉생산으로 노태우 정부시절 고추투쟁이라는 농민운동을 전개토록 했다. 즉 한 작물이 다른 작물에 미치는 결과를 꼼꼼히 따지지 못하는 농정부재가 가져온 결과였다. 결국 올해 고추값 하락도 일맥상통하는 농정부재의 결과물이다.

그것뿐인가. 모든 작물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실타래처럼 엉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봄부터 감자 ,양파, 마늘에 이어 각종 채소류와 과일에 이르기까지 하락하지 않는 농산물이 없다. 한계답에 심은 복분자가 냉동창고에 넘쳐난다. 블루베리, 오디도 그런 신세가 된지 오래다.

자! 쌀값이 생산비를 밑도니 그걸 벌충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가 2기작을 하는 것이다. 모내기 전 손쉬운 감자를 심는다. 그러니 감자생산이 많아져 폭락으로 품삯을 건지기 어렵고 강원도나 제주 농민까지 몹쓸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두 번째가 타작목으로 전환이다. 한계답이든 안전답이든 가리지 않고 돈이 될성부르면 남보다 빨리 재배하려든다. 근데 돈 좀 된다싶으면 너도나도……. 결국 모두가 줄초상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지기 직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쳐 본다. 그러나 우리농업 구조상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우리농업구조가 대단히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농업의 왜곡은 미국에 의한 것이다.

70년 전 미국의 잉여농산물 시장으로 편입될 때 그 기미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다. 약탈식 자본투입형 미국의 곡물이 우리농업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사위에게나 잡아주던 닭고기가 ‘치맥’으로 전환, 우리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내다팔기 위해 양계를 장려한 결과다. 무섭지 않는가. 사람들의 입맛을 조정하는 거대농업자본의 행패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정책은 마치 비오는 날 개울에 빠진 사람을 꺼내주진 않고 우산으로 비를 가려주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이다.


칸쿤에서 쓰러진 이경해 열사의 외침

2003년 9월 10일, WTO 제5차 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고 이경해 열사가 'WTO가 농민을 죽인다'고 외치며 자결, WTO에 온몸으로 항거했다. ⓒ민중의소리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외마디 비명으로 칸쿤에서 쓰러져간 이경해 열사의 외침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정부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만 다른 산업을 위해 농사는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농식품부는 이미 역할이 끝난 것이다. 이미 관세화를 선언하며 밥쌀용 쌀 수입이 강제성이 없어졌는데 밥쌀용 쌀을 수입하는 것이 쌀농가를 생각한 정책인가. 게다가 쌀값이 하락하도록 유도하기위해 손해를 보면서까지 공매를 한다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WTO가 FTA가 체결되기 전 정밀예측으로 우리농업의 변화를 미리 준비해 줬어야 한다. 10년 내 관세철폐라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과일이라고 문을 열어준 결과는 농민을 멘붕에 빠뜨리고 있지 않는가. 농가가 쌀값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기도 전에 쌀값이 하락 하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농민은 이등국민이 된지 오래다. 희망이 없다. 식량주권은 고사하고 제 목숨을 연명하는 것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가 돼 가고 있다. 쌀이 남아도니 논에다 타작물을 심도록 해야 한다는 농정이라면 이제 차라리 농식품부를 해체해야한다. 생명철학에서부터 민주주의까지 철저한 고민 없이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이는 식”으로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는다. 한가위를 맞는 농민들이 맘 편치 못한 것은 어느 작목이나 예외가 없다. 정광훈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농업이 살아나려면 “농민이 단단히 고장을 내야 한다.”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은 농민들 스스로에게 넘겨졌다. 이번 한가위를 뜻있게 보내시길.


출처  [한도숙 칼럼] ‘2등 국민’ 농민들의 한가위 명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