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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황제 노역’ 사라졌지만…수천만원 ‘귀족 노역’ 여전

억대 ‘황제 노역’ 사라졌지만…수천만원 ‘귀족 노역’ 여전
작년 3월 ‘허재호 논란’ 이후
벌금 대신 제하는 하루치 노역 값... 1천만원 이상인 경우가 ‘6건’
“서민들의 노역과 형평성 어긋나 총액 아닌 일수 벌금제 도입해야”

[한겨레] 정환봉 기자 | 등록 : 2015-09-29 19:07 | 수정 : 2015-09-29 21:30


▲ 광주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3월 26일 광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 노역’을 결정한 법원을 비판하고 있다.

허재호(73) 전 대주그룹 회장의 하루 5억 원짜리 ‘황제 노역’ 논란 뒤 일당 1억 원이 넘는 노역은 사라졌지만 1,000만 원이 넘는 ‘귀족 노역’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춘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2010년 1월~2015년 8월 전국 지방검찰청별 환형유치 금액 상위 10위 목록’을 보면, 황제 노역 논란이 빚어진 지난해 3월 이후 환형유치 금액이 하루 1,000만 원 이상으로 정해진 경우가 6건 있었다. 환형유치란 벌금을 내지 못하면 교정시설에서 노역하도록 하는 것인데, 법원은 벌금형 선고 때 노역으로 공제되는 금액이 하루 얼마인지도 정해준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허위 세금계산서 교부 등 혐의로 부산지검이 기소한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벌금 40억 원이 확정됐는데 노역으로 공제되는 벌금액이 하루 5,000만 원이었다. 80일 노역으로 벌금 40억 원을 탕감받을 수 있다. 서울서부지검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관세포탈 혐의로 기소해 지난해 6월 벌금 83억여 원이 확정된 홍아무개씨는 환형유치액이 하루 4,000만 원이고, 서울동부지검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해 지난해 6월 벌금 48억 원이 확정된 강아무개씨의 환형유치액은 하루 2,000만 원이었다.

서울남부지검·대구지검·의정부지검에서 허위 세금계산서 교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명은 벌금 8억 원, 12억 원, 14억8000만 원을 각각 선고받았는데 환형유치액이 하루 1,000만 원씩이었다. 서너 달 노역하면 대신 10억 원가량 절약하게 된 셈이다.

지난해 황제 노역 논란 뒤 국회는 벌금 1억~5억 원은 300일 이상, 5억~50억 원은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은 1,000일 이상 노역해야 벌금이 면제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개정법이 발효된 지난해 5월 이후 시작된 재판은 이의 적용을 받지만,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던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

새 제도에 따르더라도 총 노역 기간은 3년을 넘을 수 없어 벌금 액수가 클 경우엔 일당 수천만 원짜리 귀족 노역이 불가피하다. 환형유치 일당이 보통 하루 10만 원인 서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밖에 없다. 이춘석 의원은 “이들 6명의 경우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인데도 벌금 낼 돈이 없어 장기간 노역해야 하는 서민들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 노역장에 갈 처지에 있는 서민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벌금액을 대출해주는 ‘장발장은행’의 오창익 대출심사위원은 “환형유치액이 수백 배 차이가 나는 불평등을 줄이려면 판사에게만 결정을 맡길 게 아니라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억대 ‘황제 노역’ 사라졌지만…수천만원 ‘귀족 노역’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