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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평화통일’이 외세와의 야합이 되어서야

‘평화통일’이 외세와의 야합이 되어서야
한반도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는가?
[민중의소리] 정은교(서울 강신중학교 교사) | 최종업데이트 2015-09-30 16:38:43


“북한 정권아, 무너져라! 수리수리마수리!” 미국과 남한 지배세력이 그동안 이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학수고대해 왔다는 사실은 서귀포 너머 가파도 마라도의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다. 작년 10월에 발간된 미국 육군의 보고서는 “북한지도부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전쟁이나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서술해서 미국 지배세력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냈다. 이런 예언을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예언’이라 일컫는데 그렇게 되기를 자기들이 바라고 있으므로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는 예언을 두고 붙이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쉽게 벌어질 것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던 까닭은 북한이 70년간 자기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해 왔는데 그들이 그렇게 만만하게 당하겠느냐, 하는 기본적인 반론이 곧바로 제기되는데다가, 중국이 그런 사태를 과연 바라겠느냐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군사적 포위 압박에 맞서야 하는 처지에서 북한은 그들에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도우미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지금의 정치지형을 허무는 변화를 그들이 바랄 리 없다고 우리는 생각해 왔다.


예사롭지 않은 칙사 대접

하지만 지난 9월 3일 전승절 행사장 장면이 TV로 전세계에 보도된 것을 보면, 혹시 남북한을 둘러싼 여지껏의 정치지형이 어떤 식으로든 바뀔 조짐이 나오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을 바로 옆자리[예전엔 김일성 주석이 앉았던 자리]에 모시고 칙사 대접을 하는 동안, 북한의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주최측으로부터 한참 먼 구석 자리에서 뙤약볕을 견디고 있었다. 중국 지도부가 남한 지도부와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은 내용의 정치적 거래를 하고 있지 않겠냐, 하고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 박근혜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자금성 망루에 올라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그 추론을 얼마쯤 뒷받침하는 보도가 지난 8월초 언론에 살짝 나왔다. MBN 등에 따르면, 한미연합훈련과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남한 혹은 미국의) 문건에 “북한지역을 4개국이 분할통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합참에 요청함”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원전반대그룹이 해킹해서 공개한 자료의 한 대목인데 이 자료는 2010년이나 2011년에 진행된 훈련의 사후 평가보고서로 짐작된단다. 그러니까 북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꺼내들 시나리오의 하나로서 ‘분할통제안’ 자체는 여러 해 전에 미국과 남한의 지배세력 내부에서 검토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9월 17일자 중앙일보의 한 칼럼은 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이 작성한 칼럼 ‘김정은의 서조선, 시진핑의 동조선’에 따르면 중국이 자기들 나름의 ‘북한 분할통제안’을 미국에 제안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기들 몫으로 원산만을 눈독 들이고 있단다. 동해 바다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다. 네이버의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나선 지방이 있는) 함경북도를, 미국에는 강원도를 떼어주고 중국은 평안북도와 함경남도를, 남한은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나눠 갖고 싶다고 중국이 제안했다고 한다. 평양시는 (베를린시를 흉내내서) 4대국 공동관리 밑에 둔단다.

중앙일보 칼럼은 뉴스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항간에 떠도는 제안’이라고 얼버무리면서 ‘말도 안 된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제안이 사실인 것처럼 못을 박고서 비판을 한 것을 보면 그 소문이 민초(民草)들의 뜬구름 같은 어림짐작의 표현이 아니라 고위 권력층 사이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급변 사태가 가까운 장래에 닥칠까?

중국이 그런 (놀라운) 제안을 충분히 했음 직하다고 여긴다. 지금의 세계 정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 9월 17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제로상태[0~0.25%]로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올 연초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뒤엎는 방침이다. 경제가 회복된다면 얼른 기준금리를 올려야 금융자본들이 돈놀이를 재개(再開)할 수 있는데[그래야 자본이 호시절을 누릴텐데] 그랬다가 세계경제가 다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런데 경제공황은 어김없이 전쟁정세를 불러온다.1) 시리아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떠올리자. IS를 당장 무너뜨리겠다는 미국의 호언장담은 ‘없었던 얘기’가 돼버렸다. 러시아가 뒷배를 봐주는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리려면 IS가 (미국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있으니 한반도에도 전쟁[제국주의 침략]의 포연(砲煙)이 피어오를 개연성이 한결 높아졌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으리라.

중국 지도부에게 북한이 얼마나 만만한 존재로 비치고 있을까? 실제로 북한의 군사력과 국력이 근래 들어 급속히 취약해진 것일까?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필자로서 무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아무튼 중국으로서는 미국 쪽에서 북한붕괴 시나리오를 결행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기민하게 ‘제 몫 챙기기’에 나선 것일 듯싶다. 물론 그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남한과 중국의 희망사항이지, 그들 뜻대로 세상일이 전개되리라는 법은 없다. 그동안 수없이 나왔던 제국주의 열강의 공갈협박이 물거품으로 가라앉았듯이, 이 공갈도 같은 결말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남북한의 운명이 어찌 될지 예견할 수 없고, “급변사태가 가까운 장래에 닥칠지도 모른다.”고 지배세력이 자꾸 소문을 흘리는 것을 보면 우리가 경각심을 품어야할 필요는 더욱 커졌다.

그런데 중국이 “내 몫도 챙기겠다.”고 나서자, 남한과 미국이 이른바 ‘평화’통일이라고 떠드는 것이 얼마나 허튼 놀음인지 더 분명해졌다. 미국과 남한은 중국이라는 행위자를 무시하고 ‘통일’ 작전을 벌일 수 없다. 중국 몫을 얼마쯤은 떼줘야겠다고 미국은 진작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 순간, ‘통일’은 통일이 아니라 열강끼리 나눠 먹기가 된다. 남한 지배세력은 북한을 미국과도, 중국과도 나눠 잡숫지 않아야 “민족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노라!”하고 그럴싸하게 유세(遊說)를 떨 수 있다. 중앙일보 같은 보수세력이 중국의 제안에 대해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래서인데, 중국에게 하다못해 신의주와 나선지방이라도 떼어주지 않고서 북한 붕괴작전을 과연 결행할 수 있겠는가! 남한 보수세력은 근사한 흡수통일을 바라겠지만 현실에서 가능한 길은 중국과 흉물스럽게 야합(野合)하는 길 뿐이다.

▲ 25일 미국 백악관에서정상회담을 마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평화통일’이 외세와의 야합이 되어서야

제국주의자들은 북한과 남한의 민중이 무엇을 바라는지, 헤아릴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라고 줄곧 흔들어대는 쪽이든[흡수통일], 그럴 때 내 몫을 챙기겠다고 들이미는 쪽이든[분할점령] 자기들의 힘 과시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재작년에 이미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자기네 정부에다가 권고를 한 바 있다. “북한땅에 두 나라 군대가 분리선을 긋고 진주하는 것을 한국인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중국이 개입했다가 얼마 뒤 철수하는 쪽으로 합의할 것 같다. 하지만 UN안보리 결의가 시간이 걸리므로 ‘분리선’을 어디로 그을지를 북한이 무너지기 전에 합의하는 게 좋다.”

남한 집권세력에게 캐묻자. “북한 어디를 누구한테 떼주고, 어디를 딴 누구한테 떼주고...”하는 속닥질을 미국과, 또 중국과 얼마나 주고받았는지를! 그런 짓거리를 ‘평화’ 통일이라 스스로 자칭(自稱)하고 있는지를! 열강끼리 땅 따먹기하는 것을 남북한의 민중이 눈 뜨고 멀거니 바라만 볼 거라고 여기는지도 묻자. 한반도에 포연(砲煙)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깨어 있어야겠다.

필자 주 1) 2008년에 금융공황이 잠깐 터졌다가 끝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붕괴의 강도가 약했으므로 1929년 대공황에 견줄 수 없다는 게다. 그러나 1929년과 달리, 이번엔 엄청난 돈을 풀어서 공황의 폭발을 막았을 뿐이다. 그 모순이 줄곧 내연(內燃)하고 있다. 1929년 공황이 1937년에 시작된 전쟁으로 타개됐듯이, 2008년에 시작된 공황도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 타개할 길이 없다. 2008~2015년에 이르는 과정을 묶어서 ‘대공황’으로 파악해야 시리아 사태와 일본의 안보법 개정을 설명할 수 있다.


출처  [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평화통일’이 외세와의 야합이 되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