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정몽구·최태원의 공통점... 정말 놀랍다
[주장] 재벌 총수 솜방망이 처벌에 대법원 양형기준 개정... 태광그룹 선고 주목
[오마이뉴스] 김득의 기자 | 12.02.20 21:24 | 최종 업데이트 12.02.20 21:24
서민의 삶이 궁핍해져 '반재벌' 정서가 팽배해지고 '재벌개혁'의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의 재벌 규제 완화 정책과 이를 악용한 재벌들의 탐욕 때문에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아울러 재벌총수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사법적 불평등 문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4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자산기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 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으나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집행유예된 처벌마저도 예외 없이 사면받았으며, 사면받기까지 걸린 시간도 고작 평균 285일에 불과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1996년 8월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지만 402일 만에 사면됐다. 이어 그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특검에서 2009년 8월에 배임·조세포탈 사건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유죄 파기환송됐는데도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139일 만에 사면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사건으로 2008년 6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았고 73일 만에 사면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조5000억 원대의 SK글로벌 분식회계로 2008년 5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78일 만에 사면됐다. 그는 현재 수백억 원대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횡령사건도 마찬가지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이 선고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징역 3년, 집행유예'
재벌총수들이 검찰이나 법정에 출두할 때 휠체어를 타고 가는 바람에, 외신들은 한국 재벌들의 차량을 '휠체어맨'이라고 조롱까지 하고 있지만 진정한 반성은 없다. 지난 20년간 법원은 재벌총수들의 범죄에 대해 단죄는 커녕 특별사면이라는 특혜를 남발하였다. 오히려 재벌들은 대대손손 경영권까지 세습하면서 범죄를 저질러도 실형을 면하는 무소불위의 특권계급이 돼가고 있다.
법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징역 3년, 집행유예' 판결을 한다. 하나 같이 '징역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것은 징역 3년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는데 법원은 재벌 총수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솜방망이 판결을 지속하였다. 반대로 용산 철거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맺힌 절규에 대해서는 쇠방망이 판결을 한다.
법원은 중국음식점 배달원이 77만 원을 횡령해도 실형을 선고한다. 횡령한 재벌총수에게는 '경제발전'과 '사회공헌'을 들먹이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국민들이 사법부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10억 달러 분식회계' 미국 월드컴 CEO, 징역 25년 실형
미국의 월드컴 CEO는 110억 달러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2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또 '미국 최악의 회계부정사건'이라는 기록을 세운 엔론사의 전 CEO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금도 감옥에 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총수 7명이 20년 동안 약 23년의 형을 선고받고 그것이 모두 집행유예된 것과 대조적이다. 월드컴 CEO 1명의 '25년 징역형'과 비교하면 참으로 국격이 비교된다. 솜방망이 정도가 아니라 솜털 처벌이라 할 만하다.
재벌 총수들의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사면복권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는 재벌총수가 불법행위로 취하는 이익과 처벌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저울질해보면 쉽게 다가온다. 기대 손실이 적고, 법원이 경제 논리 등의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되풀이 하니 재벌 범죄가 반복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1월 4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낮은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횡령·배임했던 대기업 총수들을 계속 풀어주고 사면복권해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판사들 머릿속에는 '대기업 총수에게 중형을 선고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왜 만날 그러는지, 우리나라 양형은 너무 낮고 온정적"이라고 했을까.
대법원은 이런 부자들의 특혜판결 논란을 줄이고자 양형기준을 새롭게 개정했다. 50억 원 이상 이득을 얻은 경우는 실형을, 300억 원 이상 이득을 얻었다면 최고 징역 11년까지 선고하게 한 것. 이 양형기준에 따르면 재벌범죄로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 이 선고가 법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에 태광, 한화 재벌 총수들의 판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월 2일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징역 9년,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또 지난 3일 이호진 당시 태광그룹 회장에게는 1400억 원대 횡령 및 배임 등 범죄혐의로 징역 7년, 벌금 70억 원을 구형했다. 이호진 회장은 2월 21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오는 23일로 잡혀있던 선고공판이 20일 돌연연기돼, 3월 22일 변론재개하기로 했다.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서 "지금까지 재벌총수는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는 더 나빠질까봐, 좋을 때는 찬물을 끼얹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되지 못했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재벌총수를 계속 처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또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서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횡령한 돈을 자신의 유산증자와 세금 납부, 보험금 납부 등에 사용했다"면서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영권 확보와 아들의 경영승계에 활용한 것은 물론 그 책임을 임원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대법원 새 양형기준 시험대... 태광 이호진·한화 김승연
태광그룹 계열사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2001년 10월, 흥국생명은 2005년 1월 미래경영상의 이유로 흑자 나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하였지만 이번 재판을 통해 거짓임이 밝혀졌다. 노동자에게는 살인과 같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남발하면서, 이 와중에도 회삿돈을 횡령한 것이다.
이호진 회장은 불법과 편법으로 오로지 자신의 재산만 증식했고, 심지어 횡령한 회삿돈을 초등학생 아들의 불법적인 경영권 세습을 위해 사용했다. 반면, 해고자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7년 동안 살인과 같은 해고의 고통에다 손배가압류 때문에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 나고,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태광그룹 계열사에는 흥국생명, 흥국화재, 고려저축은행 등 금융회사가 많다. 이호진 회장의 개인회사인 동림관광개발이라는 골프장을 위해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전부 동원되어 불법지원했다. 특히 보험회사인 흥국생명 220억 원, 흥국화재 312억 원 골프장 회원권 선구입 지원은 보험회사 계약자돈을 쌈짓돈처럼 여기는 것으로 저축은행 대주주 비리 사건과 다를 바 없다.
한화그룹은 2002년 12월 공적자금 3조5000억 원이 투입된 대한생명을 당시 기업가치인 1조6150억 원의 51%인 8236억원에 매입했다. 2011년 감사원은 "총 누락된 금액이 약 8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결국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8000억 원의 사익을 취하고, 그만큼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은 회수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혜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기인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피고인 김승연과 그 일가가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일들을 보자. 이들은 개인 부채를 갚기 위해 다단계 합병·분할, 부동산 상호거래, 빈번한 회사명 변경, 유상증자, 선급금 지급을 위장한 회계분식 등 이른바 '기업세탁' 방법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마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덧붙여 검찰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문서 위조 등 증거인멸은 물론 공무집행까지 방해한 혐의도.
한화그룹의 계열사에는 대한생명, 한화증권, 한화손해보험 등 수많은 금융회사가 있고 현재는 동양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과 경영진들은 대한생명 콜옵션 무상양도 관련 573억 원 배임에 따른 4856억 원의 실질적 손해를 회사와 소액주주, 일반투자자들에게 끼치고 한화증권에도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승연 회장 개인을 위해 소액주주와 고객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태광그룹과 대동소이하다.
'경제 민주화'는 커녕 '재벌공화국'으로 전락
태광그룹과 한화그룹 총수들의 범죄는 그 피해가 단순히 자신의 회사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소액주주와 금융소비자까지 피해가 확산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들이 피해자다. 이러한 공공성 때문에 은행은 대주주 자격을 반기마다 심사하고 있다. 만약 은행처럼 대주주 심사권이 보험회사나 증권회사에 있다면, 이번 범죄의 경우 대주주 자격이 상실되어 의결권이 정지되고 주식처분 명령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경영권이 박탈되는 것이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흥국생명의 일시납계약으로 거액의 수당을 착복해 지난 2004년 5월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94년 1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007년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이는 경영권 박탈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이 사건을 수사했던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이 "재벌은 살아 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고 했겠는가. 그는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고 덧붙였다. 재벌 총수들은 처벌이 아니라 수사조차도 힘들다는 말이다. 시대는 '유전무죄'에서 '재벌무죄'로 진화하고 있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넘어 '재벌천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번 판결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남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징역 3년, 집행유예'를 내린다면, '법은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조롱을 당할 것이다. 수많은 '부러진 화살'이 날아들 것이다. 법원은 경제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불법행위를 일삼았던 재벌 총수들과 경영진들에게 새로운 대법원 양형기준을 적용하여 사법정의가 살아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득의 기자는 흥국생명 해고자로,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국장입니다.
출처 : 이건희·정몽구·최태원의 공통점... 정말 놀랍다
[주장] 재벌 총수 솜방망이 처벌에 대법원 양형기준 개정... 태광그룹 선고 주목
[오마이뉴스] 김득의 기자 | 12.02.20 21:24 | 최종 업데이트 12.02.20 21:24
▲ 회장님은 휠체어맨?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06년 2월 4일 김포공항),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2006년 7월 10일 서울중앙지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7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 ⓒ 권우성 / 연합뉴스 |
서민의 삶이 궁핍해져 '반재벌' 정서가 팽배해지고 '재벌개혁'의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의 재벌 규제 완화 정책과 이를 악용한 재벌들의 탐욕 때문에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아울러 재벌총수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사법적 불평등 문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4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자산기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 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으나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집행유예된 처벌마저도 예외 없이 사면받았으며, 사면받기까지 걸린 시간도 고작 평균 285일에 불과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1996년 8월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지만 402일 만에 사면됐다. 이어 그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특검에서 2009년 8월에 배임·조세포탈 사건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유죄 파기환송됐는데도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139일 만에 사면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사건으로 2008년 6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았고 73일 만에 사면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조5000억 원대의 SK글로벌 분식회계로 2008년 5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78일 만에 사면됐다. 그는 현재 수백억 원대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횡령사건도 마찬가지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이 선고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징역 3년, 집행유예'
▲ 재벌총수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은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로 형량이 동일하여 담합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김득의 |
재벌총수들이 검찰이나 법정에 출두할 때 휠체어를 타고 가는 바람에, 외신들은 한국 재벌들의 차량을 '휠체어맨'이라고 조롱까지 하고 있지만 진정한 반성은 없다. 지난 20년간 법원은 재벌총수들의 범죄에 대해 단죄는 커녕 특별사면이라는 특혜를 남발하였다. 오히려 재벌들은 대대손손 경영권까지 세습하면서 범죄를 저질러도 실형을 면하는 무소불위의 특권계급이 돼가고 있다.
법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징역 3년, 집행유예' 판결을 한다. 하나 같이 '징역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것은 징역 3년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는데 법원은 재벌 총수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솜방망이 판결을 지속하였다. 반대로 용산 철거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맺힌 절규에 대해서는 쇠방망이 판결을 한다.
법원은 중국음식점 배달원이 77만 원을 횡령해도 실형을 선고한다. 횡령한 재벌총수에게는 '경제발전'과 '사회공헌'을 들먹이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국민들이 사법부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10억 달러 분식회계' 미국 월드컴 CEO, 징역 25년 실형
▲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2011년 1월 4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서부지검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미국의 월드컴 CEO는 110억 달러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2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또 '미국 최악의 회계부정사건'이라는 기록을 세운 엔론사의 전 CEO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금도 감옥에 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총수 7명이 20년 동안 약 23년의 형을 선고받고 그것이 모두 집행유예된 것과 대조적이다. 월드컴 CEO 1명의 '25년 징역형'과 비교하면 참으로 국격이 비교된다. 솜방망이 정도가 아니라 솜털 처벌이라 할 만하다.
재벌 총수들의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사면복권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는 재벌총수가 불법행위로 취하는 이익과 처벌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저울질해보면 쉽게 다가온다. 기대 손실이 적고, 법원이 경제 논리 등의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되풀이 하니 재벌 범죄가 반복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1월 4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낮은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횡령·배임했던 대기업 총수들을 계속 풀어주고 사면복권해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판사들 머릿속에는 '대기업 총수에게 중형을 선고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왜 만날 그러는지, 우리나라 양형은 너무 낮고 온정적"이라고 했을까.
대법원은 이런 부자들의 특혜판결 논란을 줄이고자 양형기준을 새롭게 개정했다. 50억 원 이상 이득을 얻은 경우는 실형을, 300억 원 이상 이득을 얻었다면 최고 징역 11년까지 선고하게 한 것. 이 양형기준에 따르면 재벌범죄로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 이 선고가 법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에 태광, 한화 재벌 총수들의 판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월 2일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징역 9년,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또 지난 3일 이호진 당시 태광그룹 회장에게는 1400억 원대 횡령 및 배임 등 범죄혐의로 징역 7년, 벌금 70억 원을 구형했다. 이호진 회장은 2월 21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오는 23일로 잡혀있던 선고공판이 20일 돌연연기돼, 3월 22일 변론재개하기로 했다.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서 "지금까지 재벌총수는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는 더 나빠질까봐, 좋을 때는 찬물을 끼얹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되지 못했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재벌총수를 계속 처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또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서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횡령한 돈을 자신의 유산증자와 세금 납부, 보험금 납부 등에 사용했다"면서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영권 확보와 아들의 경영승계에 활용한 것은 물론 그 책임을 임원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대법원 새 양형기준 시험대... 태광 이호진·한화 김승연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유성호 |
이호진 회장은 불법과 편법으로 오로지 자신의 재산만 증식했고, 심지어 횡령한 회삿돈을 초등학생 아들의 불법적인 경영권 세습을 위해 사용했다. 반면, 해고자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7년 동안 살인과 같은 해고의 고통에다 손배가압류 때문에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 나고,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태광그룹 계열사에는 흥국생명, 흥국화재, 고려저축은행 등 금융회사가 많다. 이호진 회장의 개인회사인 동림관광개발이라는 골프장을 위해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전부 동원되어 불법지원했다. 특히 보험회사인 흥국생명 220억 원, 흥국화재 312억 원 골프장 회원권 선구입 지원은 보험회사 계약자돈을 쌈짓돈처럼 여기는 것으로 저축은행 대주주 비리 사건과 다를 바 없다.
한화그룹은 2002년 12월 공적자금 3조5000억 원이 투입된 대한생명을 당시 기업가치인 1조6150억 원의 51%인 8236억원에 매입했다. 2011년 감사원은 "총 누락된 금액이 약 8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결국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8000억 원의 사익을 취하고, 그만큼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은 회수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혜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기인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피고인 김승연과 그 일가가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일들을 보자. 이들은 개인 부채를 갚기 위해 다단계 합병·분할, 부동산 상호거래, 빈번한 회사명 변경, 유상증자, 선급금 지급을 위장한 회계분식 등 이른바 '기업세탁' 방법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마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덧붙여 검찰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문서 위조 등 증거인멸은 물론 공무집행까지 방해한 혐의도.
한화그룹의 계열사에는 대한생명, 한화증권, 한화손해보험 등 수많은 금융회사가 있고 현재는 동양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과 경영진들은 대한생명 콜옵션 무상양도 관련 573억 원 배임에 따른 4856억 원의 실질적 손해를 회사와 소액주주, 일반투자자들에게 끼치고 한화증권에도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승연 회장 개인을 위해 소액주주와 고객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태광그룹과 대동소이하다.
'경제 민주화'는 커녕 '재벌공화국'으로 전락
▲ 지난 2월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해고자들과 사무금융연맹 조합원들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엄벌을 촉구하면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흥국생명에서 첫 번째로 해고된 김형탁 전 흥국생명노조 위원장은 "진정한 반성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 구제"라고 밝혔다. ⓒ 김득의 |
태광그룹과 한화그룹 총수들의 범죄는 그 피해가 단순히 자신의 회사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소액주주와 금융소비자까지 피해가 확산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들이 피해자다. 이러한 공공성 때문에 은행은 대주주 자격을 반기마다 심사하고 있다. 만약 은행처럼 대주주 심사권이 보험회사나 증권회사에 있다면, 이번 범죄의 경우 대주주 자격이 상실되어 의결권이 정지되고 주식처분 명령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경영권이 박탈되는 것이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흥국생명의 일시납계약으로 거액의 수당을 착복해 지난 2004년 5월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94년 1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007년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이는 경영권 박탈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이 사건을 수사했던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이 "재벌은 살아 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고 했겠는가. 그는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고 덧붙였다. 재벌 총수들은 처벌이 아니라 수사조차도 힘들다는 말이다. 시대는 '유전무죄'에서 '재벌무죄'로 진화하고 있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넘어 '재벌천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번 판결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남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징역 3년, 집행유예'를 내린다면, '법은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조롱을 당할 것이다. 수많은 '부러진 화살'이 날아들 것이다. 법원은 경제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불법행위를 일삼았던 재벌 총수들과 경영진들에게 새로운 대법원 양형기준을 적용하여 사법정의가 살아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득의 기자는 흥국생명 해고자로,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국장입니다.
출처 : 이건희·정몽구·최태원의 공통점...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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