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 기고] 일제강점기에도 ‘국정’ 아니었다
[민중의소리] 윤종배 서울 수락중학교 교사 | 최종업데이트 2015-10-16 11:13:36
기어이 정부와 여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단다. 역사교사로서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으로 볼 때, 세계적인 웃음거리요,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볼 때, 우리가 이렇게 후진적인가를 한탄하게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한테 한심한 어른들의 민낯을 들킨 것 같아 내가 오히려 부끄럽다.
정부, 여당에서는 통합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라는 말로 적당히 포장하려 하지만 본질은 국정이다. 국정교과서는 우리가 알만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제도이며, 북한처럼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역사왜곡에 따른 갈등이 많은 요즘, 중국도 일본도 검정인데 우리만 국정교과서 제도를 운영한다면 우리의 항의가 설득력을 갖기는커녕 그들의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중등 역사교과서는 검정이었으며, 이념대립이 매우 심했던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역사는 검정교과서였다. 그런데 지금이 이토록 무리수를 두며 심각하게 이념을 단속해야 할 시기인지, 그것도 늘 북한을 멸시하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왜 북한을 따라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오른쪽 끝에서 가운데를 보고 ‘너희는 죄다 왼쪽에 있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잊을만하면 역사교과서를 문제 삼아 교육현장을 흔들고, 소위 이념을 앞세워 역사과목 고유의 다양성, 창의성을 제약하려 하였다. 역사학자, 역사교사의 90%가 좌편향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일까, 고집일까?
그 말이 맞다면 나는 90%에 해당하는 좌편향 교사인 셈이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좌편향 교과서인 줄 알면서 슬그머니 사상을 주입한 교사이거나 좌편향인 줄도 모르고 가르친, 무식하고 무능한 교사라는 얘기인가? 나의 떳떳함을 말하려면 교육부와 정치권이 거짓말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권능과 공공성을 무시해야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니!
21세기는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하며 창의성의 전제는 다양성이다. 이는 최근에 보도된 유엔 교과서 권고에도 명시되어 있는 상식에 속한다. 아무런 비교대상도, 경쟁대상도 없는 한 권의 책으로 창의성을 기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도 1년 만에 뚝딱 만든 교과서로 얼마나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검정교과서도 부실하다며, 검정기간을 더 늘리고 절차도 엄정하고 까다롭게 하겠다던 교육부가 1년이면 교과서 집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니 지금껏 교육부가 보여 준 자기모순의 결정판이 아닌가 싶다.
우려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처럼 90%에 이르는 ‘좌편향적인’ 대학 연구자나 교사가 집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10%에 해당하는 우편향적인 인사들이 쓰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국정교과서가 나왔을 때, 역으로 또 논란이 제기될 것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고 있는 터에 국정교과서가 되면,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과 유혹이 상존하며 그를 상대방이 문제 삼아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소위 보수층 결집을 위해 교과서를 잘 써먹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교육현장에서 뒷감당하는 교사들은 너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교과서에 대해 더 이상 종북 프레임으로 가지 말아 달라고 읍소하고 싶다. 그리고 학자와 교사들의 양식과 전문성을 믿어주면 좋겠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2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장기적,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서 오늘날의 교육적 성과를 낳고 있다. 5년도 안돼서 교육과정이 바뀌고 3년 만에 또 교과서 바뀌는 혼란의 형국이니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정권은 유한하나 교육은 지속되어야 하므로 우리도 긴 호흡으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면서 역사 교육과정을 만들고 다양하고 질 높은 교과서를 발행하여 학생들이 재미있고 의미 있게 역사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권에서는 교육계에서 요청할 때, 이 문제를 제도화하는 데 나서주는 게 정말로 도와주는 것임을 역사교사로서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출처 [역사교사 기고] 일제강점기에도 ‘국정’ 아니었다
[민중의소리] 윤종배 서울 수락중학교 교사 | 최종업데이트 2015-10-16 11:13:36
기어이 정부와 여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단다. 역사교사로서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으로 볼 때, 세계적인 웃음거리요,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볼 때, 우리가 이렇게 후진적인가를 한탄하게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한테 한심한 어른들의 민낯을 들킨 것 같아 내가 오히려 부끄럽다.
정부, 여당에서는 통합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라는 말로 적당히 포장하려 하지만 본질은 국정이다. 국정교과서는 우리가 알만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제도이며, 북한처럼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역사왜곡에 따른 갈등이 많은 요즘, 중국도 일본도 검정인데 우리만 국정교과서 제도를 운영한다면 우리의 항의가 설득력을 갖기는커녕 그들의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일제강점기, 이승만 정권 시기에도 검정 교과서 사용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중등 역사교과서는 검정이었으며, 이념대립이 매우 심했던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역사는 검정교과서였다. 그런데 지금이 이토록 무리수를 두며 심각하게 이념을 단속해야 할 시기인지, 그것도 늘 북한을 멸시하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왜 북한을 따라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오른쪽 끝에서 가운데를 보고 ‘너희는 죄다 왼쪽에 있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잊을만하면 역사교과서를 문제 삼아 교육현장을 흔들고, 소위 이념을 앞세워 역사과목 고유의 다양성, 창의성을 제약하려 하였다. 역사학자, 역사교사의 90%가 좌편향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일까, 고집일까?
그 말이 맞다면 나는 90%에 해당하는 좌편향 교사인 셈이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좌편향 교과서인 줄 알면서 슬그머니 사상을 주입한 교사이거나 좌편향인 줄도 모르고 가르친, 무식하고 무능한 교사라는 얘기인가? 나의 떳떳함을 말하려면 교육부와 정치권이 거짓말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권능과 공공성을 무시해야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니!
21세기는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하며 창의성의 전제는 다양성이다. 이는 최근에 보도된 유엔 교과서 권고에도 명시되어 있는 상식에 속한다. 아무런 비교대상도, 경쟁대상도 없는 한 권의 책으로 창의성을 기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도 1년 만에 뚝딱 만든 교과서로 얼마나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검정교과서도 부실하다며, 검정기간을 더 늘리고 절차도 엄정하고 까다롭게 하겠다던 교육부가 1년이면 교과서 집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니 지금껏 교육부가 보여 준 자기모순의 결정판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안국동사거리에서 정부서울청사까지 한국사 국정교과서 거부 청소년들이 역사를 왜곡할 국정교과서를 거부 행진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교과서 나오면 또 논란될 것
윤종배 교사 ⓒ민중의소리
교육 선진국 핀란드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2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장기적,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서 오늘날의 교육적 성과를 낳고 있다. 5년도 안돼서 교육과정이 바뀌고 3년 만에 또 교과서 바뀌는 혼란의 형국이니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정권은 유한하나 교육은 지속되어야 하므로 우리도 긴 호흡으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면서 역사 교육과정을 만들고 다양하고 질 높은 교과서를 발행하여 학생들이 재미있고 의미 있게 역사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권에서는 교육계에서 요청할 때, 이 문제를 제도화하는 데 나서주는 게 정말로 도와주는 것임을 역사교사로서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출처 [역사교사 기고] 일제강점기에도 ‘국정’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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