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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Anti SamSung

“삼성 노트북을 쓰는 게 이렇게 창피할 줄 몰랐습니다”

“삼성 노트북을 쓰는 게 이렇게 창피할 줄 몰랐습니다”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0-22 17:49:06


김치냉장고에 찍힌 삼성로고를 보고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안왔어요. 삼성 이름만 봐도 치가 떨린다고...

지난 7월 혜경씨 집을 찾았을 때 어머니 김시녀씨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삼성'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돼있었습니다. 삼성이라면 치를 떨던 혜경씨와 어머니는 지금 삼성 로고가 곳곳에 새겨져있는 강남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준 걸까요?


최소한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 삼성, 부끄럽습니다

혜경씨를 만난건 삼성 직업병 피해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던 지난 7월, 10여년의 시간을 싸워온 혜경씨와 어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곧 이 문제가 해결되고 이제 이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많은 곳에서 혜경씨를 마주쳤고, 반가운 마음이 이토록 착잡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혜경씨는 입사 6년 만에 공장을 그만뒀습니다. 급격히 악화된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뇌종양진단을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 “범죄자한테 스스로 조사하라고 할 수 없어요.”)

수술 후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고 시력도 거의 잃어 장애1급 판정을 받은 혜경씨와 어머니에게 필요한건 재활치료와 안정된 기본적인 생활일겁니다. 그러나 이들은 삼성의 책임 있고 성실한 자세를 요구하며 오늘도 비닐 한 장에 의지해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회의에 피해자 가족들과 인권단체로 구성된 반올림 회원들이 조정권고안을 듣고 있다. 이날 조정위는 삼성전자 측에 1천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 설립을 권고하며 반도체 사업체들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도 합당한 수준의 기부를 요구했다. ⓒ정의철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앞 모습. 지난달 21일부터 반올림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 이어말하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건물 주변에 빨간색 띠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다. ⓒ민중의소리


삼성 반도체‧LCD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피해자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이 확인한 수만 해도 200명이 넘습니다. 같은 공정에서 일하다가 아프고 죽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다면 ‘그 공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게 아닐까요? 그 당연한 의심을 ‘개인탓’으로 돌리던 삼성은, 삼성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故 황유미씨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지 7년여 만인 2014년에야 권오현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피해자들과 대화로 해결하길 거부하고 ‘제3자’인 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삼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지난 7월 조정위원회 권고안이 나오자 이를 거부하고 회사 내 독자적인 보상기구를 만들었습니다. 혜경씨 모녀를 비롯한 반올림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생활하며 삼성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 대화도 조정위도 외면하려는 삼성…직업병 피해 가족들, 삼성 앞 노숙농성 돌입)

혜경씨가 농성을 시작한 7일은 삼성이 보상기구를 만들고 처음으로 다시 조정회의가 열린 날입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삼성 교섭단은 기자들과 만나 “반올림이 제시한 수정안을 보면 사실상 조정위 권고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올림이 제시한 ‘공익법인 기금마련 방법’을 언급했습니다. 삼성이 보상위원회를 만들며 스스로 거부한 ‘공익법인’의 운영기금에 대한 반올림 의견을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설명했습니다. 10분도 채 안된 질의응답 시간동안 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조정회의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조정회의를 다룬 기사들은 “반올림이 무리한 요구를 해 해결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삼성이 되길

혜경씨 모녀를 만난 후부터 삼성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스스로 한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삼성의 물건을, 수많은 이들의 고통의 대가로 만들어진 삼성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써온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제3의 중재기구를 마련하고 여기서 결정되는 내용을 따르겠다”며 직접 공언한 삼성이었습니다. 최소한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지금도 글을 쓰며 마주하고 있는 노트북에 적힌 ‘삼성’ 로고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삼성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기자수첩] “삼성 노트북을 쓰는 게 이렇게 창피할 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