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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정규직 과보호? 비정규직 과소 보호가 문제”

“정규직 과보호? 비정규직 과소 보호가 문제”
[인터뷰] 노조 상근활동 1호 변호사,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0-26 13:31:04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새날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김기덕(52) 변호사는 노동전문 변호사다.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정동길을 따라 그가 일하는 법률사무소 '새날'을 찾아갈 때 구상은 이런 거였다.

오랜시간 노동자 편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변론을 했으니, 그를 만나서 얘기를 듣고 '노동전문변호사가 보는 노동개혁, 그리고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뭐, 대략 이런 내용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고문변호사 형태가 아닌 상근활동가로 노동운동과 결합한 변호사는 그가 처음이라는 사실이 이런 생각을 한 결정적 배경이다.


노조 상근활동 시작한 1호 변호사

김기덕 변호사가 노동계와 인연을 맺은 건 17년 전이다.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98년 사법연수원생시절,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연맹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금속산업노조연맹은 당시 민주노총의 주력부대로 210여개 단위사업장에 20만명에 육박하는 조합원이 있는 대규모 노조연맹이었다. 당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로 상당수 조합원들이 구조조정 대상이어서 일이 많았는데, 연맹에는 법률담당 부서도 없었다.

노동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9년에 금속산업노조연맹 법률국장으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는 1999년 3월 18일자에서 '법조 양지 박차고 노동자 도우미로'라는 제목의 기사로 비중있게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그는 변호사라고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고, 연맹 사무처의 다른 상근활동가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법률국장을 거쳐 법률원장으로 전체 10여년을 노조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현재는 노무사와 변호사 7명이 소속돼 있는 법률사무소 '새날'에서 "거의 100% 노동자측 노동사건"을 수임해 노동자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판검사나 로펌쪽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그에게서 이런 저런 개인사를 좀 듣고 싶었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 결국, 대화의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의 소위 '노동개혁'에 관한 것으로 흘렀다.

지금은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가려져 있지만, 노동개혁은 얼마전까지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정부의 노동개혁은 '정규직 과보호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임금이 높고, 상대적으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정규직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 노조 때리기를 하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을 밀어붙였다.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새날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 아닌, 비정규직 과소보호"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 아니라, 비정규직 과소보호 때문이다. 국가가 2년 범위에서 기간제 사용을 보장해주고, 파견이라고 해서 사용하는 사람과 고용하는 사람이 달라서 중간에서 수수료 챙겨 먹을 수 있는 제도를 합법화해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정규직의 권리를 깎아 내리면 자동으로 비정규직의 권리가 상승하는 관계라면 정규직이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결국 비정규직의 고용과 근로조건이 열악한 걸 어떻게 개선해 나갈 건지에 개혁의 방향이 맞춰져야 하는데, 정부 노동개혁에서는 그런 건 찾기 어렵다. 오히려 비정규직 사용범위를 넓혀주고 사용 기간 늘려주는 것을 노동개혁이라고 추진하고 있다."

노동개혁 테이블에는 노동계에서 쉬운해고라고 반발하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 파견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2년->4년으로 연장 등 하나하나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폭발력이 큰 쟁점들이 올라와 있다. 새누리당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문을 마련하자마자, 노사정위 합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기덕 변호사는 가장 심각한 것으로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안을 꼽았다.

"우선 파견대상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아주 심각하다.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것을 보면 제조업 뿌리산업이라고 해서 용접, 금형, 프레스 가공 등 지금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이라고 해서 파견이 금지돼 있는데, 그걸 다 열겠다고 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조선사업장은 합법적으로 다 파견으로 해서 운영될 거다. 기간제도 마찬가지다. 현 기간제법은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취지인데, 이걸 4년동안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4년동안 기간제를 사용하고 버리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일반 노동자 권리 측면에서 보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초기에 청년실업을 지렛대로 삼았다. 청년들이 심각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는데, 내년에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 청년들이 고용절벽에 직면할 수 있으니, 고임금의 중고령 노동자들이 임금을 양보(임금피크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청년 신규채용 효과를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고, 그 효과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노사정 갈등이 가장 큰 이슈는 소위 저성과자 해고로도 불리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 문제다. 정부가 판례를 기준삼아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노동계는 '쉬운해고'라고 반발하고, 정부는 '공정한 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판례를 기준으로 통상해고, 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안내하겠다는 것인데, 그건 결국 사용자가 가이드라인을 활용해서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게 만약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하는 거라면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정부가 굳이 악착같이 나설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인터뷰 말미에 20년 가까이 노동자 권익 신장을 위해 변론 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초기에 다루던 사건과 지금 다루는 사건들을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 노동자의 삶과 권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여전히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많이 했던 게 노동 형사 사건이었다. 파업, 집회, 투쟁하다가 구속된 형사 사건들. 최근에는 임금이나 해고 사건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노동운동이 대규모적으로 투쟁을 했다면 지금은 그런 건 드물죠. 그 지점에서는 차이가 있고, 일반 노동자 권리라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출처  “정규직 과보호? 비정규직 과소 보호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