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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반대는 불순 좌파"... 찬반 현수막 1만 장 걸려

"원전 반대는 불순 좌파"... 찬반 현수막 1만 장 걸려
[현장] 11일 '원전 유치' 주민투표 앞둔 영덕군
[오마이뉴스] 김종술 | 15.11.10 19:31 | 최종 업데이트 15.11.10 19:31


하늘은 푸르다. 산자락에서 물든 단풍은 계곡을 타고 모퉁이까지 내려왔다. 대게와 송이 원산지인 인구 4만의 소도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핵발전소 유치를 놓고 오는 11일~12일 이틀 동안 찬반투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주민 투표 하루 전인 10일 직접 찾은 경상북도 영덕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동해안 국도변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노란색, 붉은색의 현수막으로 울긋불긋 도배돼 있었다. 시내 가로수 중에서 똑바로 서 있는 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영덕조각공원과 오십천 강변길은 줄줄이 매달린 현수막으로 나무들만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에 한수원, 삼성까지... 원전 유치 여론전 치열

‘핵발전소’ 주민투표를 앞둔 영덕군에는 투표에 참석하자, 참석하지 말자는 주장이 걸린 현수막이 어림잡아 1만 장 가까이 걸렸다. ⓒ 김종술


현재 영덕군에서는 천지원전 유치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군민과 투표 없이 유치하지는 군민,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건설시공사인 삼성·현대·대우·두산·한화까지 동참한 여론전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발길, 눈길이 닿는 곳마다 현수막이 도배돼 있었다. 영덕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아래 투표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영덕군 안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어림잡아 1만 장에 이른다고 전했다.

오일장이 열리는 영해관광시장은 입구부터 뜨거웠다. 붉은색 조끼를 입은 젊은 청년들이 줄지어 서 있다. 홍보차량에서는 원전이 유치되면 주민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홍보동영상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정부의 국책사업이니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는 방송까지 겹치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그곳으로부터 50m쯤 떨어진 사거리에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와 '영덕핵발전소반대추진위원회' 등 반대 주민들이 포진했다. 이곳에서는 "개인투표는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꼭 투표에 참석해 달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또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일장을 찾은 주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전단을 나눠주기도 했다.

오일장인 영해관광시장에서 주민투표 찬반 홍보전에 나선 주민들. ⓒ 김종술


시장에서 만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지역의 정서상 주민들이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못 한다"고 설명한 뒤 "그런데 여론이 주민투표에 참여하자는 쪽으로 몰리자 한수원이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알바생 100여 명이 원전 유치 홍보물을 배포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항의에 위축된 알바생들은 군 내 차량과 집에 홍보물을 몰래 꼽고 다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염 사무처장은 "현재 한수원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주민들이 투표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집집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명의의 우편물을 보내서 이번 주민투표는 불법이라고 홍보한다"며 "이번 투표는 주민들이 어느 정도 참석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영덕군은 주민 399명의 동의와 영덕군의회의 결의로 원전 유치를 신청했다. 이어 지난 2012년 정부가 신규 원전 2기(천지 1, 2호기)의 원전 예정지인 전원개발예정지구로 고시했고, 지난 7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영덕에 150만kw급 원전 2기를 각각 오는 2026년까지 준공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반대는 불순 좌파세력" 색깔론까지 등장

영덕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 10일 오후 3시에 영덕군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투표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김종술


투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기자회견을 열고 4만 영덕군민에게 주민투표에 참가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정부와 한수원은 주민투표를 방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찬성도 영덕사랑 반대도 영덕사랑 주민투표 합법이다, 합법적인 주민투표 정부는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2012년 9월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예정지 지정에 맞서 그동안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요구해왔다"며 "원전 유치는 지방자치법에 따른 주민투표 대상임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정당한 주민투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와 한수원은 행정과 금권을 동원한 방해 행위로 지역공동체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이날 거리에서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을 '불순 좌파세력'이라고 비난하는 전단이 배포되는 등 주민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이다.

원전 유치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10일 영덕군에 배포된 전단.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을 '불순세력'이라고 규정하는 등 주민 사이 갈등이 높은 상황이다. ⓒ 김종술


끝으로 이들은 "위원회는 군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민투표를 시행할 것"이라며 "4만 군민이 주민투표에 동참하여 영덕의 미래를 결정하자"고 호소했다.

한편 오는 11일과 12일 양일간에 치러지는 천지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의 투표소는 20곳에 설치됐다. 주민과 자원봉사자 400명으로 구성된 투표종사원이 투입돼서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1996년 11월 11일 이전 출생자는 신분증을 지참하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전체 유권자는 3만400여 명 중 부재자를 제외한 2만700여 명이다.


출처  "원전 반대는 불순 좌파"... 찬반 현수막 1만 장 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