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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영덕 핵발전소 정당하다면 주민투표 왜 막나

영덕 핵발전소 정당하다면 주민투표 왜 막나
[민중의소리] 이보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최종업데이트 2015-11-09 19:46:19


바로 이틀 뒤 11월 11일부터 12일, 영덕에서는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시행된다. 영덕핵발전소 유치 신청은 전임 영덕군수가 4만 명의 영덕군민 가운데 399명의 동의서만으로 졸속 진행한 것으로, 주민투표는 이를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바로잡는 과정이다. 이희진 영덕군수는 이렇듯 정당한 주민투표도 정부 눈치를 보며 받아들이지 않아, 기어이 주민들이 직접 나서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희진 군수는 심지어 ‘주민투표는 불법’이라는 망발까지 하고 있다. 군수의 발언뿐만 아니라 주민투표가 다가오자 ‘주민투표 불법’ 현수막 수백 장이 나붙고 주민투표를 방해하는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다. 법령 어디에도 주민투표를 금지하는 조항 따윈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하지 않은가?

한국수력원자력도 물량공세로 꽤 바쁘다. 지역신문에 전면광고도 싣고, 언론인 해외연수에 주민 국내외 견학은 물론 수박, 복숭아, 쌀 등을 주민들에게 부지런히 돌린 모양이다. 영덕핵발전소반대 범군민연대가 지난 10월 29일 리서치DNA에 의뢰해 영덕군 유권자 1,516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덕군민의 24.9%가 '한수원이나 유치 찬성 측이 동네를 방문했다'고 응답했고 10%의 주민들은 한수원과 유치 찬성 측이 제공하는 접대나 물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밝히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8.7%에 달해 약 20%의 영덕주민들이 한수원이나 찬성 측 물량공세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됐다.

영덕 주민투표를 앞두고 주민투표 반대 측에서 붙인 현수막. ⓒ페이스북



전기 남는다는데도 핵발전소 더 짓겠다는 정부

유치 과정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지을 필요도 없는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에너지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3분기까지 국내 평균 경제성장률은 3.5%로 지난해보다 0.8%포인트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1~9월 전력수요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또한, 국내 전력소비 추세가 2011년 이후 내림세로 돌아섰으며, 이러한 내림세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7월 여전히 높은 전력소비 증가율을 전제로 핵발전소를 13기나 더 짓겠다는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확정·공고했다.

누구든 낭비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5~2019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평가’를 통해 올해 확정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기저 발전기의 과도한 건설투자로 매몰 비용이 발생하여 전력소비자에게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2017년 이후 잉여 발전이 발생하기 시작해서 2022년이면 겨울철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서 잉여 발전이 발생하고, 2029년에는 최대 18,920MW(핵발전소 약 19기)의 잉여 발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필요 없는 발전소 13기를 더 지어, 19기의 발전전력이 남아돌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제정신인가?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 정부들은 에너지와 전력 소비를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히 중앙집중식 공급형 에너지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서울시와 경기도가 나서고 있다. 서울은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이 시민들의 지지 속에 목표를 조기 달성하며 이제 2단계에서는 1단계보다 2배의 에너지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전 둘 줄이기가 되는 셈이다.

서울에 이어 올해에는 전국 온실가스 배출량 1위, 전력소비 1위, 전력자립도 11위의 경기도가 나섰다. 2030년까지 현재 29.6%인 전력자립도를 70%로 올리고 에너지 효율 개선 및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으로 노후 핵발전소 11기 중 7기를 대체하겠다는 야심 찬 ‘경기도 에너지 비전 2030’을 선포했다. 경기도의원들은 아예 ‘영덕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에 지지까지 선언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이러한 변화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 해안가에 핵발전소를 세우고 765kV 송전선로를 통해 수도권에 대규모 전력을 융통하는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은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 걸친 광역정전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력전문가들조차 경고하고 있다.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 범군민대회 가두행진. ⓒ구자환 기자



정부 스스로 백지화해야

핵발전소는 한마디로 구시대적이다. 대량 생산 대량 수송 방식의 에너지 시스템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고 불안정하며 위험을 증가시키는 낡은 시스템이다. 또한, 지금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4개의 지역은 모두 군사독재 시절이기 때문에 입지가 확보될 수 있었다. 영덕 주민투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더욱이 이미 전력수요 증가가 정체되고 있다. 여기에 시민들의 노력과 의지가 모여 지방 정부들까지 공격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소를 더 지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있는 핵발전소를 줄여나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아닌가? 당장에 올바른 길로 돌아서도 이미 저질러 놓은 위험들이 산재한 이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안 될 일에 돈을 쏟아 붓는가? 정부는 이제 그만 우기고, 스스로 영덕 핵발전소는 물론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라. 제발 국민의 뜻을 따라라.


출처  [기고] 영덕 핵발전소 정당하다면 주민투표 왜 막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