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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물대포 무릅쓰고…농민 백남기, 광화문 온 숨은 이유

농민 백남기씨는 왜 광화문에 왔을까
[경향신문] 정희완 기자 | 입력 : 2015-12-01 11:19:13 | 수정 : 2015-12-01 18:37:35


지난 14일 오후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앞서 농민들이 집회를 열었습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 씨(68)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전남 보성에 사는 백씨는 어떻게 하다 서울 광화문까지 와서 집회에 참여하게 된 걸까요? ‘테러’를 저지르려고요? 북한 김정은 체제를 찬양하려고요? 이날 이 자리에서 백남기 씨와 농민들이 요구한 건 간단하고 당연한 겁니다. ‘쌀값 폭락에 따른 정부의 적절한 대책’입니다.

언론에서 쌀 문제를 둘러싼 농민들의 목소리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집회를 열었는지 더 알기 힘듭니다. 백씨의 딸 민주화씨(33)와 도라지씨(29)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왜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느냐”며 여러 번 울먹였습니다. 민주화씨는 “쌀값이 너무 많이 떨어져 다른 농민들을 대변해서 그 자리에 말을 하려고 갔던 건데 왜 거기에 나갔는지 본질은 모르고 빨갱이라고 한다”고도 했죠. (▶[단독] 백남기씨 딸들 “아빠가 왜 집회에 나갔는지는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

▲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에서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다. ⓒ공무원U신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12월 5일 다시 집회를 열려고 합니다. 정부와 경찰은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참가자 전원을 처벌한다고 했습니다. 여권 여러 정치인은 ‘집회 참가자=테러리스트’란 틀을 이미 짜두었습니다. 정권의 초강경 집회 대응 방침에다 집회를 불법·폭력으로 몰고 가는 여론 작업에도 농민들은 집회 개최를 고수합니다. 농민들은, 백남기 씨는 왜 한겨울 물대포를 무릅쓰고 광화문까지 왔을까요.

향이네가 농민과 쌀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셨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다자간 무역협상인데, 우루과이에서 열려서 ‘우루과이라운드’라고 부릅니다. GATT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기 전까지 미국이 주도한 국제무역기구 역할을 했습니다.

19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는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도 포함됐습니다. 1990년 초부터 한국 농민들과 대학생 등 많은 시민이 정부에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 1993년 12월 쌀 포대를 쌓아놓고 농산물 수입 개방 반대 시위하는 농민과 시민 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3년 타결된 협상은 모든 농산물을 개방키로 합니다. 다만 한국의 쌀은 예외를 인정받았습니다.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10년 동안 유예하게 됩니다. 대신 같은 기간 동안 5%의 낮은 관세로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 합니다. 또 이 ‘의무 수입물량’은 매년 약 20,000t씩 늘려야 합니다. 기준연도(1988~1990년)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1% 물량으로 시작해 2004년까지 4%로 늘리는 것입니다. 첫해인 1995년 의무수입 물량은 51,000t이었습니다.

▲ 1994년 11월 농민들이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개방 유예 10년 연장…‘밥쌀용 쌀’ 의무 수입

10년이 지났습니다. 2004년 쌀 시장 개방 유예기간이 끝났습니다. 한국은 재협상에서 다시 시장 개방을 10년 동안 유예합니다. 2004년 의무 수입물량은 205,000t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국내 쌀 소비량의 4% 수준입니다. 재협상에 따라 수입쌀 물량을 2014년까지 8%(409,000t) 수준으로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2004년 협상에서 새로운 조건이 붙습니다. 쌀은 떡·과자 막걸리 등을 만드는 ‘가공용 쌀’과 밥을 지을 때 사용하는 ‘밥쌀용 쌀’로 나뉘는데요. 기존에 한국은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고 ‘가공용 쌀’만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이 협상에서 ‘밥쌀용 쌀’의 의무 수입 비율이 생깁니다. 의무 수입쌀 가운데 10%는 밥 짓는 용도로 수입해야 하고, 그 비중을 2010년까지 30%로 늘려 2014년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국내 쌀 소비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밥쌀용 쌀이 수입되면서 국내 쌀 가격 하락 우려가 커졌습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8개 농민단체 회원들이 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 같은 쌀 협상 비준안은 2005년 11월 23일 국회를 통과합니다. 앞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은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농민 전용철 씨(당시 43세)와 홍덕표 씨(당시 68세)가 경찰의 강경 폭력 진압으로 사망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전 씨와 홍 씨는 경찰이 휘두른 방패와 진압봉에 머리와 목 등을 맞아 숨졌습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시장 완전 개방…‘밥쌀용 쌀’은 계속 수입

2014년, 다시 10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은 기간 유예 대신 시장 개방을 선택합니다. 정부는 2014년 7월 ‘쌀 관세화 결정’을 발표합니다. 2015년 1월 1일부터 쌀 시장이 개방되는 겁니다.

WTO에서 추가 유예 기간을 받으려면 의무 수입물량을 2배인 80만t 이상으로 늘려야 하므로 국내 쌀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대신 관세율을 513%로 책정합니다.

▲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2014년 7월 18일 쌀 시장 개방 관련 정부 브리핑이 열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사 진입을 시도하며 뿌린 쌀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러나 시장을 개방해도, 2014년 기준 의무수입물량 409,000t은 기존대로 5%의 낮은 세율로 매년 수입해야 합니다. 다만 기존처럼 할당된 물량을 무조건 다 수입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국내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서 ‘가공용 쌀’과 ‘밥쌀용 쌀’ 비율이 고정돼 30%를 ‘밥쌀용 쌀’로 수입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2015년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한국은 이 비율 규정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즉, 한국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409,000t의 쌀을 모두 ‘가공용 쌀’로 수입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밥쌀용 쌀’은 수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밥쌀용 쌀’ 3만t을 수입합니다. 농민들은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데 정부를 굳이 수입해 쌀값 하락을 부추긴다”고 반발합니다. 정부는 향후 협상에서 관세율 513%를 지켜내기 위해 일정 물량의 밥쌀용 쌀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 지난 5월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밥쌀용 쌀 수입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준헌 기자

정부는 지난해까지 의무적으로 수입하던 ‘밥쌀용 쌀’ 수입을 갑자기 중단하면 협상 대상국들이 이를 문제 삼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한국은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WTO에 관세율 513%를 고지했습니다. 그런데 이 관세율에 WTO 가입국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국, 미국 등 5개국이 관세율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규정상 한국은 이의를 제기한 국가가 이의를 철회할 때까지 협상을 벌여야 합니다. 정부가 얘기하는 ‘관세율 유지를 위한 협상’이란 게 바로 이것입니다. 협상 기간에는 쌀 수입국이 통보한 관세율이 부과됩니다.


TPP·FTA…농민들 “정부 못 믿겠다”

정부는 모든 통상 협상에서 쌀 시장은 양허(관세 유지·인하, 시장 개방 등을 회원국에 약속하는 것)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변칙적 요구까지 무시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농민들은 앞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면 낮은 관세의 수입쌀 물량은 늘어날 것으로 관측합니다.

실제 한국과 쌀 시장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TPP에 원체결국으로 참여하면서 관세율을 지키는 대신 미국, 호주에서 저관세 의무수입 방식으로 매년 쌀 8만t가량을 추가로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농민들이 향후 WTO의 압력이 있거나 FTA 협상을 포함해 각종 무역 협정에서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이 요구하면 쌀 시장이 추가 개방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농민들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한·중 FTA와 TPP 등 반농민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쌀값 폭락 대책 마련과 한·중 FTA 비준 반대를 촉구했습니다. 이어 “올해 쌀값은 지난해보다 20% 떨어진 수준인데 1990년대 쌀값으로 쌀을 팔아 2015년을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농민들이 정부와 집권 여당에 분노하는 이유 중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박근혜는 지난 대선 당시 80kg당 17만 원 하던 쌀값을 2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쌀값은 해마다 떨어져 지금은 15만 원대입니다.

농민들은 “정부와 국회는 쌀 수입과 쌀시장 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한·중 FTA 비준과 TPP 가입을 사실상 선언했다”며 “국민의 생존주권으로 이어지는 쌀 문제를 해결하고 쌀값과 농산물에 대한 적절한 가격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민주노총 등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개최한 정부 규탄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도중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를 맞으며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어 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농민들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반대, 밥쌀용 쌀 수입 중단, 기초농산물 가격안정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수입 의무가 없는 밥쌀용 쌀을 계속해서 들여오는 등 식량 주권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정부의 농산물시장 개방확대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식량 자급률이 낮아지면 세계적인 흉작으로 곡물 가격이 오를 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식량 주권’ ‘식량 안보’ 개념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4%입니다. 식용기준 자급률도 49.8%로 2011년 이후 늘어났지만 2015년 목표치인 57%와는 차이가 큽니다. 쌀 자급률은 100%대에 가깝습니다. 2010년 104.6%까지 상승한 후 2011년 83.2%까지 떨어졌지만, 2013~2014년 2년 연속 풍년으로 올해는 90% 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 쌀만으로도 자급이 충분함에도 쌀을 계속 수입하는 것은 식량 주권을 잃는 일”이라며 “WTO 협정에도 명시된 식량 주권을 행사하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결책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15년 쌀 재고량은 130만t이 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재고율 32%로 적정재고율 17~18%를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2015년 7월 현재 2013·2014년산이 약 85%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연평균 재배면적 감소율은 1.8%입니다. 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율은 2.5%입니다. 같은 기간 쌀 생산량은 연평균 1.2% 감소한 반면 식용 소비량은 1.8%로 줄어들었습니다.

시장 개방 유예 대가로 증가한 의무수입물량도 재고가 쌓이는 원인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후 쌀 시장 개방 유예를 대가로 도입한 의무수입량은 1995년 5만1000t에서 2014년 40만9000t으로 늘었습니다. 재고량이 많아지면 쌀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겠죠.

보통 쌀은 수확해 일부를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 해 4~5월쯤 가격이 비싸질 때 판매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4~5월 쌀 가격이 수확기보다 더 낮아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수확하자마자 일찌감치 팔아치우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올해는 쌀시장 개방이 겹치면서 쌀값이 더 하락할 것을 우려한 농민들이 쌀을 저장하지 않고 바로 판매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이는 수확기 쌀값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습니다.

▲ 제공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결책을 두고 사회복지용, 해외원조, 대북지원 방안이 나옵니다. 그러나 해외원조는 운송비 등 부대비용으로 10만t당 2,432억 원의 판매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주요 쌀 수출국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을 사회복지용 지원에 사용하면 처리비용이 낮습니다. 그러나 수급자가 쌀 대신 다른 식품을 선호하면 공급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그중에서도 대북지원이 가장 효과적이란 게 농업계 중론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00년대 초 쌀 재고량이 크게 늘었지만 2003년부터 대북지원이 늘어나면서 쌀 재고량도 많이 감소했습니다. 남북 간 정치적 관계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국내산 쌀의 대북지원은 1995년 150,000t을 시작으로 2010년 5,000t을 마지막으로 중단됐습니다.

▲ 제공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은 “작황에 따라 적정량을 초과해 생산된 물량은 다음 해 처분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공급 측면에서는 쌀 생산유발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쌀 소비촉진 정책인 중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출처  [정리뉴스] 농민 백남기씨는 왜 광화문에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