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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러려고 모금한 거야? 청년희망펀드의 실상

겨우 이러려고 모금한 거야? 청년희망펀드의 실상
박근혜의 청년희망펀드 띄우기가 불편한 이유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1-28 19:28:08


박근혜가 상당히 기뻤나 보다. '청년희망펀드' 얘기다. 박근혜는 25일 청와대에서 본인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난주 청년희망펀드를 통해서 처음으로 10명의 취업 청년이 배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서로 조금씩 나누고 양보를 하면 이런 나눔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다"라고 소회도 덧붙였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한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건물 6층에 있는 '청년희망재단'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박근혜는 재단 사무실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재단을 통해 일양약품 영업직에 취업한 취업자들을 만나 함께 화이팅을 외쳤다.

▲ 박근혜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년희망재단에 방문해 취업자들과 대화를 나구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떠난 뒤 찾아간 청년희망재단
"약속 안 하셨으면 취재가 좀 곤란한데요"

박근혜가 30분간 머무르고 떠난 직후, 기자는 청년희망재단을 찾았다. 건물 1~4층은 광화문 우체국이, 7~9층은 서울지방우정청이 쓰고 있었다. 재단은 6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아래 5층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인큐베이팅센터가 있었다.

건물 출입은 자유롭지 않았다. 1층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방문 목적을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청년희망재단 취재왔습니다."
"약속하고 오셨나요?
"아뇨, 약속은 안 했습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청년희망재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재단 직원을 바꿔줬다.

"예, 민중의소리 기잔데요. 재단 사업 관련한 취재를 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약속 안 하고 오시면 취재가 곤란합니다."


재단 직원은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취재가 곤란하다고 했다. 그럼 재단 사무실이라도 좀 둘러보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것도 곤란하다고 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좀 하다 5분만 둘러보기로 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6층으로 올라갔다. 박근혜가 다녀간 직후라 직원들이 집기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뒷정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6층을 모두 재단이 쓰고 있었는데, 재단 사무국(운영지원팀, 멘토단지원팀, 기업청년매칭팀, 일자리사업팀)이 쓰는 공간이 있었고, 그 옆으로 상담 부스가 3곳 설치돼 있었다. 요새는 하루 10여 명이 찾아와 구직 상담을 받는다고 재단 직원이 말했다.

그 옆으로 사진촬영 부스도 있길래 구직자들 증명사진 촬영도 무료로 해주는 줄 알고 물었더니, "이벤트를 위해 설치한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근혜 방문용 이벤트라고 설명한다. 박근혜가 떠났으니 철거될 부스였다. 사회 각계 인사들의 재능 기부로 진행하는 특강을 위한 강의실도 있었다.


박근혜가 직접 아이디어 낸 후 '속전속결'
눈치보던 재벌들도 줄줄이 기부
초기부터 "사업 실효성 없다" 비판 제기

박근혜가 다녀간 재단을 짧게 둘러보고 나오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청년희망펀드는 박근혜가 아이디어를 낸 사업이다. 박근혜가 지난해 9월 15일 아이디어를 낸 후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박근혜가 한마디 했으니 그 밑의 관료들이 부지런히 움직인 것이다.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국민에게 기부를 받아 펀드(이익을 내 돌려주는 펀드는 아니고 기부다. 정식 명칭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이다)를 모금하기로 했고, KEB하나은행, KB국민, 우리, 신한, 농협 등 주요 은행에 기부금 모집 창구가 개설됐다.

박근혜가 1호 기부자로 일시금 2,000만 원을 기부했고, 매월 월급의 20%를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등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기부했고, 눈치를 보던 재벌들도 이건희 삼성 회장을 필두로 재벌서열대로 기부했다. 이렇게 해서 28일 현재 누적 기부액은 1,323억 원가량 된다.

청년희망펀드는 박근혜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부터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우선,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국민에게서 기부금을 걷어 청년을 돕자는 발상 자체가 황당했다. "청년이 거지냐?", "세금 걷어서 뭐하는 거냐?", "관제모금에 그치는 것 아니냐", "박근혜 측근 일자리 창출용 사업이냐?"라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기부금이 얼마나 걷힐지는 모르지만 수천억 원의 기부금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청년희망재단을 설립하면서 밝힌 사업계획은 지난해 7월 정부가 발표하자마자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몰매를 맞았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과 유사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과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 박근혜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년희망재단에 방문했다. ⓒ뉴시스



청년희망재단 사업계획과 예산 보니

청년희망재단 2016년 주요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보자. 크게 '일자리 매칭'과 '인재 육성' 사업으로 나뉜다.

청년 일자리 원스톱 정보센터 구축(6억7천만 원), 신생 벤처기업-청년인재 매칭지원(22억 원), 강소·중견 온리원 기업 채용 박람회(3억 원), 멘토링 서비스 사업(2억 원), 빅테이터 서비스 기획자 양성(5억4100만 원), 모바일 게임 기획자 양성(9억 원), 청년 관광 통역 안내사 양성(6억 원), 실리콘밸리 진출 프로젝트 과정(3억 원), 청년 글로벌 보부상 양성(67억5000만 원),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5억2천만 원), 청년 희망채움사업 -청년 신규제안 사업 등(56억1000만 원), 기관운영비(13억8900만 원)

청년희망재단은 28일 현재 누적 기부금액 1,323억 원 중 올해 청년 일자리 관련 사업으로 총 199억8000만 원(기관운영비 포함)을 집행할 계획이다. 이 사업으로 청년 다수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사업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됐다면 진작에 해결됐을 것이다. 청년희망재단이 올해 야심 차게(?) 벌이겠다고 밝힌 사업은 이미 민간 또는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등에서 다 하고 있는 것들이다.

박근혜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소개한 청년희망재단을 통한 취업사례를 보자. 재단은 강소·중견기업 한 곳을 선정해 그 한 기업만을 위한 취업박람회를 연다. 기업이 선정되면 재단이 홈페이지와 워크넷에 채용 공지를 올리고,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한다. 1차 면접은 기업 인사담당자가 나와서 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하고, 2차 임원 면접은 본사에서 진행한 후 최종 합격자가 나오거나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 네 번째 박람회 만에 일양약품에서 11명의 취업자가 나왔다.

이 과정은 청년희망재단이 기업의 HR(Human Resource)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것으로, 쉽게 얘기하면 잡코리아, 인크루트 등의 구인·구직사이트와 같은 업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이런 일들은 민간의 구인·구직대행업체들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규모 있게 잘한다.

청년희망재단이 내세우는 장점은 있다. "요즘 청년 구직자들이 서류를 내도 면접도 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서류 탈락의 멘붕을 겪고 있는 건데요. 저희는 서류를 낸 모든 구직자에게 면접 기회를 줍니다. 또 면접 때는 전문컨설턴트가 배석해 구직자의 태도를 분석해 피드백도 해주고요."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에 일양약품은 87기 영업사원 모집을 투트랙으로 진행했다. 하나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공고를 내서 사원을 뽑았고, 하나는 청년희망재단과 손잡고 했다. 청년희망재단에는 72명이 지원해서 최종 11명이 합격했고, 일양약품 공고에는 200여 명이 지원해 10명이 합격했다. 일양약품은 손해를 본 걸까? 이득을 본 걸까?

또 한가지 질문, 서류탈락 없이 모든 지원자에게 면접기회를 준다는 재단의 기조는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번에 일양약품 취업자도 나오면서 재단의 사업이 좀 더 널리 알려져 다음 박람회 때는 1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1천 명 모두 면접을 볼 수 있을까? 청년희망재단의 "모든 지원자 면접기회 부여"가 유지되려면 지원자가 많아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다.


공공부문 최저임금 인상 행정명령 발동한 오바마
취업브로커 이벤트하고 손뼉 치는 박근혜

국민한테 돈을 걷어 이런 이벤트성 사업이나 하라고 국민이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일자리의 양보다는 일자리의 질이 문제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해 저임금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 그 힘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당장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이다. 상시적 일자리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고, 공공부문부터 상시적 일자리는 정규직 고용 관행을 정착시켜 민간 기업에 모범을 보일 수도 있다. 이게 황당한 주장도 아니고, 박근혜 스스로 대선 때 공약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저임금의 덫에 갇혀 있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재계와 국회 등을 설득하고 나설 수도 있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연방정부 계약노동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올리는 행정명령을 발동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자신이 공약했던 것도 잊고 '쉬운 해고'를 위한 노동개혁을 몰아붙이면서 국민서명, 취업브로커 이벤트에 박수나 치고 다니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통령을 뽑은 건 취업 브로커 하라고 뽑은 게 아니잖아요. 법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 거죠. 10명 정도 취업시키는 것은 취업 브로커나 하는 일이죠.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 질입니다. 최저임금이 생계비 수준으로 인상돼야 하고,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돼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해야죠." 박정훈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위원장의 비판이다.


출처  겨우 이러려고 모금한 거야? 청년희망펀드의 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