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본 한국 읽기
[민중의소리] 원동석 문화평론가 | 최종업데이트 2016-03-06 11:08:46
중국 공자가 제자와 대화를 나눈 책 ‘논어’ 가운데 자공이 정치의 요점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요샛말로 바꾸면 충분한 경제력, 국방력, 국민 신임이라 하겠다.
자공이 ‘그 가운데 부득이 하나를 버린다면’이라고 묻자 공자의 대답은 ‘족병’이다. 또다시 ‘부득이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이라고 묻자, ‘이번에는 족식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다 죽거니와 백성의 신의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한국의 정치 현실에 비유하여 읽는다면 5·16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가 떠오른다. 그는 혁명 공약에서 ‘반공을 국시(國是)로 운운’하면서 북한과 대치하는 국면에서 자주국방을 튼튼히 하는 반공 이념을 국시=국책으로 삼겠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로 쿠데타를 지켜본 미국의 환심을 샀다. 둘째로 그는 ‘기아선상에 헤매는 민생고를 해결하며’라는 대목에서 해방 이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 지지 박수를 얻어내었다.
오늘날 박정희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 다르건 몰라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잘사는 선진국들 틈에 끼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부자 만들기에 힘쓴 박정희 덕분이 아닌가, 영남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경제개발의 산업화 기지 건설에 참여하여 점차 재벌가로 성장한 사람들의 출신이 영남인이다는 사실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 신임을 왜 얻지 못하였는가?
쿠데타 끝나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공약을 깨고 대통령직 욕심을 내어 영구집권을 시도하고 비난하는 언론을 틀어막고 지식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계엄령 포고를 연발하여 민심을 탄압한다.
공자가 중시한 민신(民信)을 얻지 못하니 나라가 시끄럽고 민심의 저항이 부산에서 일어난다. 박정희는 마침내 자신이 만든 권력의 핵심부처 김재규 중앙부장 총격에 쓰러지고 김재규는 재판과정에서 민주주의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한다. 우리는 공자의 어록에서 역사의 심판이라는 한국의 현실을 읽는다.
공자는 네 가지 인간형을 성인처럼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공자 자신), 아는 것이 막혔으나 알려고 하는 사람(공자 제자들), 마지막 가르칠 수도 없는 우둔한 사람(백성 평민)이라고 가름한다. 위의 세 인간형이 군자라고 한다면 백성은 소인이라 불렀는데 소인이 군자를 먹여 살리므로 군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공자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는 군자와 소인을 가름하여 군자는 노심(勞心)자라면 소인은 노력(勞力)자이다. 즉 마음을 닦는 지식인 통치자 계층과 육체노동으로 일하는 평민층으로 나누는데 소인이 군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것이 당시의 분업사회에서 맡은 역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닦는 군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조선 유학 사상의 골격을 형성한 사단칠정이 ‘논어’에 나온다.
즉, 4단(端)은 측은(惻隱)지심 - 타인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수오(羞惡)지심 -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사양(辭讓)지심 - 백성에게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시비(是非)지심 -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군자에게 본래 구유하고 혹은 배워서 아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는 군자 자신이 아닌 상대편 백성이 경험적으로 체득하여야 한다. 자화자찬하는 군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한국 현실과 비교하여 살펴보자. 10%도 안 되는 재벌이 국민소득 90%를 장악한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300여 명이 바다에 수장되었는데 측은한 마음을 발동하여 부끄러워한 적이 있는가?
노동력을 통제하는 대기업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생계비 벌기도 힘들어 최저 임금 인상 요구 및 고용창출 노동자 제안을 한 번이라도 양보하는 사양지심을 발휘한 적 있는가?
파업하는 노동자를 고소, 고발 수천, 수억의 벌금을 매기는 악랄한 사법부를 공정하다고 시비(是非)할 수 있는가?
노·사·정 위원회는 있으나 마나 저들끼리 풍기는 악취를 눈감고 귀 막고 입 막는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노닥거리니 이게 대한민국 실세의 풍경도인가?
오로지 실리를 추종하는, 사람 닮은 소인배 귀신들만 살판나는 세상이다.
출처 [기고] 논어를 통해 본 한국 읽기
[민중의소리] 원동석 문화평론가 | 최종업데이트 2016-03-06 11:08:46
문화계의 원로이신 원동석 평론가께서 <민중의소리> 독자들에게 민중의 관점에서 본 예술, 신화, 철학,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중국 공자가 제자와 대화를 나눈 책 ‘논어’ 가운데 자공이 정치의 요점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요샛말로 바꾸면 충분한 경제력, 국방력, 국민 신임이라 하겠다.
자공이 ‘그 가운데 부득이 하나를 버린다면’이라고 묻자 공자의 대답은 ‘족병’이다. 또다시 ‘부득이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이라고 묻자, ‘이번에는 족식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다 죽거니와 백성의 신의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한국의 정치 현실에 비유하여 읽는다면 5·16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가 떠오른다. 그는 혁명 공약에서 ‘반공을 국시(國是)로 운운’하면서 북한과 대치하는 국면에서 자주국방을 튼튼히 하는 반공 이념을 국시=국책으로 삼겠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로 쿠데타를 지켜본 미국의 환심을 샀다. 둘째로 그는 ‘기아선상에 헤매는 민생고를 해결하며’라는 대목에서 해방 이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 지지 박수를 얻어내었다.
오늘날 박정희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 다르건 몰라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잘사는 선진국들 틈에 끼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부자 만들기에 힘쓴 박정희 덕분이 아닌가, 영남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경제개발의 산업화 기지 건설에 참여하여 점차 재벌가로 성장한 사람들의 출신이 영남인이다는 사실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 신임을 왜 얻지 못하였는가?
쿠데타 끝나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공약을 깨고 대통령직 욕심을 내어 영구집권을 시도하고 비난하는 언론을 틀어막고 지식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계엄령 포고를 연발하여 민심을 탄압한다.
공자가 중시한 민신(民信)을 얻지 못하니 나라가 시끄럽고 민심의 저항이 부산에서 일어난다. 박정희는 마침내 자신이 만든 권력의 핵심부처 김재규 중앙부장 총격에 쓰러지고 김재규는 재판과정에서 민주주의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한다. 우리는 공자의 어록에서 역사의 심판이라는 한국의 현실을 읽는다.
▲ 박정희 생가에서 개최된 박정희 동상 제막식 ⓒ뉴시스
공자는 네 가지 인간형을 성인처럼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공자 자신), 아는 것이 막혔으나 알려고 하는 사람(공자 제자들), 마지막 가르칠 수도 없는 우둔한 사람(백성 평민)이라고 가름한다. 위의 세 인간형이 군자라고 한다면 백성은 소인이라 불렀는데 소인이 군자를 먹여 살리므로 군자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공자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는 군자와 소인을 가름하여 군자는 노심(勞心)자라면 소인은 노력(勞力)자이다. 즉 마음을 닦는 지식인 통치자 계층과 육체노동으로 일하는 평민층으로 나누는데 소인이 군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것이 당시의 분업사회에서 맡은 역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닦는 군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조선 유학 사상의 골격을 형성한 사단칠정이 ‘논어’에 나온다.
즉, 4단(端)은 측은(惻隱)지심 - 타인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수오(羞惡)지심 -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사양(辭讓)지심 - 백성에게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시비(是非)지심 -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군자에게 본래 구유하고 혹은 배워서 아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는 군자 자신이 아닌 상대편 백성이 경험적으로 체득하여야 한다. 자화자찬하는 군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한국 현실과 비교하여 살펴보자. 10%도 안 되는 재벌이 국민소득 90%를 장악한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300여 명이 바다에 수장되었는데 측은한 마음을 발동하여 부끄러워한 적이 있는가?
노동력을 통제하는 대기업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생계비 벌기도 힘들어 최저 임금 인상 요구 및 고용창출 노동자 제안을 한 번이라도 양보하는 사양지심을 발휘한 적 있는가?
파업하는 노동자를 고소, 고발 수천, 수억의 벌금을 매기는 악랄한 사법부를 공정하다고 시비(是非)할 수 있는가?
노·사·정 위원회는 있으나 마나 저들끼리 풍기는 악취를 눈감고 귀 막고 입 막는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노닥거리니 이게 대한민국 실세의 풍경도인가?
오로지 실리를 추종하는, 사람 닮은 소인배 귀신들만 살판나는 세상이다.
출처 [기고] 논어를 통해 본 한국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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