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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보수단체 친일인명사전 딴지걸기

교육부·보수단체 친일인명사전 딴지걸기
친일청산이 좌편향?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3-07 12:08:36


▲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양지웅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시교육청이 각 학교에 예산을 내려보내는 절차를 문제 삼아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제동을 걸고 나섰고, 보수성향의 학부모단체들도 예산편성과 배포 과정이 위법하다며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을 검찰에 고발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공문서 등을 바탕으로 쓰인 친일인명사전이 좌편향됐다는 색깔론을 앞세워 친일사전 배포가 이념 대결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친일인명사전은 박정희(다카키 마사오)와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작곡가 안익태 등 4,389명의 친일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사전은 일제강점기 공문서, 신문, 잡지 등 3,000여 종의 문헌자료와 250만 건의 인물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만든 사실 중심의 인물사전이다.


교육부·보수단체 친일인명사전 배포 딴지걸기,
친일인명사전은 좌편향, 친일청산은 국론분열?

논란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 의결에 따라 3월 새 학기 시작 전까지 583개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기로 하고, 학교당 30만 원의 예산을 내려보내기로 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친일인명사전 배포와 관련해 보수성향의 학부모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자율교육학부모연대는 지난달 18일 친일인명사전이 좌편향 됐고, 국론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친일인명사전 구입 및 배포, 교육자료 활용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 지난 2일 조희연 서울 교육감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좌편향 논란이 있는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가치 중립적이고 올바른 준법정신을 갖도록 교육해야 할 서울시 교육위원회 위원장과 교육감으로서 현행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는 논리다.

▲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학부모단체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배포 중단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보수단체의 공세와 함께 교육부도 서울시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어깃장을 놓았다.

교육부가 지난달 12일께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대해 “학교의 자율적인 도서 구입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시교육청의 예산 사용 등이 적절한지 점검에 나섰다. 이어 교육부는 “학교에서 교육자료로 활용하거나 학교도서관에 자료를 비치할 때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도서관운영위 심의 등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며 “학교별로 법령에 규정된 심의 절차를 준수했는지를 8일까지 확인해 보고하라”고 서울시교육청을 재차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디지텍고 등 고교 4곳, 창동중 등 중학교 6곳 등 총 10개교가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거나 예산 사용을 유보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서울 사립 중·고교교장회도 4일 성명을 통해 “학교를 이념 논란의 장으로 만들지 말고 친일사전의 구입 등에 관한 결정을 자율에 맡겨 달라”고 요구해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보수단체 등에 업고 친일사전 배포 방해하는 교육부
친일청산은 이념논쟁 거리 될 수 없어”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일각에서는 오히려 교육부가 보수단체를 등에 업고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민중의소리>와 전화통화에서 교육부와 보수단체의 친일인명사전 공세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가 배포 과정서 절차상의 문제 지적한 것과 관련해 “학교 자체적으로 도서를 구입할때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은 의회가 예산을 편성해 교육감이 배포를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시의회 의결권과 교육감의 집행권은 투표를 통해서 국민에게 부여받은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간섭하는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친일인명사전이 비치를 둘러싼 서울디지텍고와 사립학교장들의 반발에 대해 “도서관에 비치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서구입 비용을 지급하겠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학교가 친일인명사전을 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 행사에서 직접 필사본을 제작했다. 한 참석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적고 있다.(자료사진) ⓒ양지웅 기자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친일사전 좌편향 공세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은 이념논쟁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민족문제연구소는 법원과 검찰 등 국가기관 등이 ‘친일 행정조회’를 의뢰하는 공신력을 인정받은 기관이고, 친일사전은 이미 법원에서 객관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은 책”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친일인명사전 대상자 유족과 보수단체들은 ‘친일인명사전 발행 또는 게재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0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 판결을 받았고, 2009년 일부 유족이 제기한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역시 기각됐다. 당시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 ‘표현 내용이 진실하고 목적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각각 판결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신력과 관련해 지난 2006년 이후 연구소가 국가기관에 친일 행적 조회를 해준 건수만 80여 건에 이르고, 기관들을 살펴보면 교육부, 국가보훈처, 문화체육관광부, 옛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공공기관, 군(제1 군단사령부), 검찰(수원지방검찰청), 법원 등이다.

이준식 위원은 “보수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서 책이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논리, 논란이 된 책이라서 학교 도서관에도 비치할 수 없다는 학교장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차라리 친일 청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솔직한 의견을 밝히는 게 정당하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친일청산 문제는 이념 논쟁거리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면서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정부와 보수단체가 방해하는 현재의 모습이 친일청산 과정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교육부·보수단체 친일인명사전 딴지걸기··· 친일청산이 좌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