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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교육감 무더기 고발, 사법부 판결마저 거스른 ‘몽니’

박근혜 정부의 교육감 무더기 고발, 사법부 판결마저 거스른 ‘몽니’
2009년 김상곤 전 교육감 때도 법적 다툼서 무죄 판결 났던 사안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3-07 09:10:33


최근 박근혜 정부가 시‧도 교육감 14명을 대검찰청에 무더기 고발한 일이 있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 요구에 응하지 않아 법적 의무가 있는 직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직무유기) 것이다.

교육부는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교육의 중립성 등을 규정한 교육기본법 제6조를 비롯해 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제56조(성실의무), 제57조(복종의 의무),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지난해부터 시도 교육감들에게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해왔다. 이와 함께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 등 전임자 88명을 지난해 11월 5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대구·경북·울산 교육감을 제외한 14개 시·도 교육청 교육감들이 징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같은 해 12월 24일 교육감들에게 징계 명령을 따르라는 직무 이행 명령을 내렸다.


법적으로도 ‘직무유기’ 성립 안 돼
대법, 김상곤 전 교육감 고발 사건 때 ‘무죄’ 확정 판결 내려

이번 사태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례와 판박이다.

2009년 6월 전교조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강압 수사, 용산참사 등을 정권의 공권력 남용 및 독선적 정국운영에서 비롯된 민주주의 위기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자 교육부는 교사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전국 교육감들에게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을 징계할 것을 요청하고, 이와 함께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전임자들을 무더기 고발했다.

이에 15개 시·도 교육감들이 교육부 요구에 응했으나, 당시 김상곤 경기교육감만이 징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그해 11월 김 전 교육감에게 교사들에 대한 징계 명령을 따르라는 직무이행 명령을 내렸으나 김 전 교육감은 대법원에 ‘직무이행 명령 취소’ 청구 소송과 직무이행 명령 집행정지 결정 신청을 제기하면서 맞섰다. 그러자 교육부는 다음 달 김 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교육부 주장을 그대로 적용해 김 전 교육감을 기소했다.

▲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정의철 기자


이번에 교육부는 교육감들에 대한 고발 조치를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이라고 강조했으나, 김 전 교육감을 고발했을 당시 법원 판례를 봤을 때 교육감들의 직무유기 혐의는 법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시국선언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은 교육감의 ‘직무유기’ 여부를 판단하는 데 고려된 쟁점은 ▲징계 사유를 판단할 재량권이 교육감에게 있는지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징계 사유로 볼 수 있는지 ▲교육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직무유기’의 범의 여부 등 크게 세가지다.

수원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2010년 7월 27일 김 교육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직무유기죄 관련 법리와 쟁점에 대한 꼼꼼한 정리를 토대로 정부의 주장과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재판부는 “징계 제도의 취지, 교원징계령‧국가공무원법과에 대한 법률 해석, 징계 실무와 실무관행을 존중할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교육감이 징계 사유가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재량이 있고, 나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한 징계의결 요구를 하지 않을 재량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이 징계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법원들이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권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국선언에 대해 수긍할 여지가 상당히 있다는 점과 시국선언이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그 내용도 헌법정신에 위배되거나 반사회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시국선언이 교육감에게 징계의결 요구 의무를 발생시킬 정도로 징계 사유가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전 교육감의 ‘직무유기 범의’ 여부도 쟁점이 됐다. ‘범의’란 범죄 행위임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말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검찰은 “법령상 준수 의무를 위반해 주관적 가치관과 개인적 소신을 이유로 교원들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를 거부했다. 이는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내지 방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교육감은 교과부 방침에 따른 징계 절차에 협력해야 할지 시국선언을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 행사로 존중해야 할 가치인지 사이에서 깊은 고뇌를 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에서 법률자문을 구하고 교원들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며 “징계의결 요구를 유보하게 된 동기와 그간의 경위 등을 종합하면 징계권자로서의 책임감과 교육감으로서의 철학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지, 직무를 포기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김 교육감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잇따라 항소했으나 이듬해 1월 항소심을 거쳐 2013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미 동일한 사안에 대한 법원의 명확한 판단이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같은 논리를 내세워 교육감들을 무더기 고발한 건 사실상 ‘몽니’에 가깝다. 법원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국한돼 있는 만큼 교사들의 직무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을 제외한 나머지 교육감들이 징계 요구에 응했던 2009년과 달리 이번엔 세 개 교육청 교육감을 뺀 나머지 교육감들이 징계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법원 판례를 고려한 대응으로 보인다.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교사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의사표현’이지 ‘정치적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꼭 징계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징계를 안했다고 해서 교육감들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교육감이 갖고 있는 인사권(징계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서울, 경기 등 나머지 지역 교육감들도 교육부의 고발 방침에 적극 소명하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출처  박근혜 정부의 교육감 무더기 고발, 사법부 판결마저 거스른 ‘몽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