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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원인부터 밝히자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원인부터 밝히자
[민중의소리] 김영욱 (30일에 끝내는 자본론특강 저자,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 | 최종업데이트 2016-04-26 14:50:30


총선이 끝나고 정국을 강타한 키워드는 ‘구조조정’이다. 현대중공업이 30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것을 시발로 삼성중공업, 한진해운 등 재벌업종의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전문가란 사람들은 전문가대로 각기 처방을 내놓으니 백화제방(百花齊放)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정작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원칙 하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은 보기 드물다. 자본주의 경제는 항상적인 과잉투자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될 것 같으면 자신의 자본금을 생각지 않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다 쓰고 나중에는 갚지 못하고 배 째라고 한다. 그리고는 부실기업에 대한 자구노력으로 대량해고를 앞세운다. 특히 대기업집단은 부도나 기업파산 등 한국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정부가 나서서 어떻게 해줄 것이라는 이른바 ‘모럴헤저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진해운 전 회장인 최은영 유스홀딩스 회장이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하기 전 보유하고 있던 주식 96만7천주를 전량 매각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런데 이 돈을 한진해운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써보겠다는 말은 들어보지는 못했다. 내가 너무 과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정부 측이나 언론의 논조를 보면, 두 가지 편향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은 글로벌 저유가 상황에서 조선업종의 불황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인정하고 책임을 개별기업에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특별고용업종지원’으로 정리해고의 직격탄을 완화하고 고용위기에 대처하는 고용안전망 정책을 보강하자는 제안하는 것이다.

▲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 ⓒ뉴시스



정부와 국책은행의 안일한 대응, 더 큰 위기 불러

그러나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이번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은 이미 예견되었음에도 정부나 국책은행의 대처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11월 KDI에서 발표했던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보면, 일반 시중은행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으로 식별되는 시점보다 평균 1.2년 정도 앞섰다. 그러한 반면 3개 국책은행들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 식별시점보다 1.3년 늦었다. 일반은행과 비교하면 2.5년 가량 ‘구조조정’이나 대책수립이 지체되었던 셈이 된다. ‘한계기업’이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을 말한다.

해운・조선사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금융사들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손실발생가능액)은 약 21조7천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사의 익스포저는 약 1조7700억원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기업에 대출해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며 은행의 지휘감독 방기가 눈에 띤다. 실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을 받은 기업의 총차입금 중 대기업비중은 2010년 37.9%에서 2014년 47.5%로 늘었고 이 중 한계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4.6%에서 12.4%로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국책은행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결국, 국책은행 입장에서는 부실대출로 인해 이를 떠안을 자본확충방안을 세워야 하는데,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다. 현상적으로 보면 정부가 보유한 공기업주식을 현물출자해 직접적인 예산부담을 회피할 수 있지만 결국 공기업이라는 국민이 자산을 팔아먹는 것이다. 다른 방안으로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찍어 국책은행의 증자를 돕는 방식인데,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이다.

▲ 25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시화방조제에서 바라본 인천신항 한진인천컨테이너터미널의 모습 ⓒ뉴시스



대기업에게 더 이상 국민의 혈세로 퍼주기를 해서는 안된다

결자해지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삼성 이건희, 현대 정몽준, 한진 조양호 등 대기업집단을 주무르는 오너에 그 연대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호출자 및 이와 연관된 제도를 정비하고 연대책임을 묻는 법제도를 정비해야 무책임경영에 대해 긴장하게 된다. 일반인이 빚을 못 갚으면 사기혐의로 법적 제재를 받는다. 대기업의 오너는 기업회생이니 워크아웃절차를 밟아 정부가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나아가 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국책은행 또한 경제 살리기를 핑계로 면죄부를 받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낳고 있다. 그 피해자는 해당기업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세금을 내는 우리 봉급쟁이들이며 자영업자들이다.

한편 충격을 완화하자는 취지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주장하는 흐름이 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지원금·실업급여 특별연장급여와 전직·재취업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만으로는 수만명에 이를 실직자 혹은 실업 대기자를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원·하청을 포함해 올해 연말까지 최소한 1만8천여명이 해고되거나 실직 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지원대책이 고용보험 가입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조선업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 현실 똑바로 직시해야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기업 활력 제고법’은 기업 인수·합병이나 기업분할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권한을 대폭 높여 손쉬운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됐다.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위해 기업에 유리한 법을 총선을 앞두고 기를 쓰고 통과시킨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의 친재벌, 대기업 오너 편향성을 바로 잡아야 할 야당이 선거를 언제 치뤘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지난 21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부실기업은 채권단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활용해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대규모 실업 사태를 야기하는 이전의 구조조정 방식을 답습하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이날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협조하겠다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 현대중공업 노조 기자회견 ⓒ뉴시스


여야가 친재벌 정책으로 마치 경제를 위하는 것 인양 폼잡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며칠 전 전남 광양의 한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회사 부도로 실업자가 된 ㄱ(37)씨가 지난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월께 실업자가 된 그는 모친의 집에서 지내며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재취업하지 못했다. 고인은 "후세에 엄마가 내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동안 엄마한테 받아 왔던 사랑 이상을 베풀게요. 미안해요"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또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일이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과거 대표적인 구조조정 사업장이었던 쌍용자동차에서는 2천여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28명이 직접 혹은 간접적인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보면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의 탐욕과 정부의 부실한 지휘감독이 빗어낸 ‘인적 재앙’일 뿐이다. ‘인적 재앙’은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재발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 해양 조선업 부실화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출처  [김영욱의 노동경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원인부터 밝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