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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군사정권이 빼앗은 이름... ‘노동절’

군사정권이 빼앗은 이름... ‘노동절’
5월 1일, 아직도 되찾지 못한 ‘노동절’
‘노동 차별 용어’ 어제와 오늘

[경향신문] 김지환 기자 | 입력 : 2016.05.01 22:35:00 | 수정 : 2016.05.01 23:43:07


▲ 국립국어원이 2014년 4월 말 노동자를 근로자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트윗.

국립국어원은 2014년 4월 말 트위터에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로, 트위터를 통한 국어생활종합상담 업무를 하지 않으니 이용에 차질 없으시기를 바란다”고 공지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노동자의 날'로 바꾸어달라”고 하자 국립국어원은 “‘노동절’은 1963년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노동자’는 ‘근로자’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많은 이용자가 이 트윗을 비판하자 국립국어원은 “담당자가 착각해 잘못 답변하면서 혼란을 끼쳤다”며 사과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를 순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 빚어낸 단면이기도 하다.

‘노동’과 ‘근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으로 설명돼 있다. 노동이 노동자의 능동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근로는 부지런함을 강조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사용자 관점이 투영돼 있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학술적으로 두 개념은 큰 차이가 없는데 한국 사회 주류세력이 노동이라는 단어에 이념적 색칠을 한 뒤 의도적으로 이를 배제해왔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부터 시작된 노동절 행사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7년 대한노총(자본의 노예이며 어용노조인 한국노총의 전신)의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로 날짜가 바뀌었다. 이승만이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박정희는 1963년 '노동절'이라는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 문민정부 시기인 1994년 노동절을 5월 1일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남아 있다.

법률 용어에서도 ‘노동’을 지우려는 흐름이 진행돼 왔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오랜 기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노동3권’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199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보충의견으로 '근로3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헌재도 1990년 제3자 개입금지조항 위헌사건 결정까지는 '노동3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 이후부턴 '근로3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노동계는 “민주화 시대지만 노동자라는 단어는 완전한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근로’를 ‘노동’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송 교수는 “노동자는 저임금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근로자는 화이트칼라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뿌리내린 상황”이라며 “학생들이 진로 선택에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 용어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5·1 노동절 126년] 군사정권이 빼앗은 이름…5월1일, 아직도 되찾지 못한 ‘노동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