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서울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

서울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
2003년 이후… 5~8호선의 9번째 ‘비극’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 입력 : 2016.05.06 17:12:00 | 수정 : 2016.05.06 23:02:49


▲ 지난 4월 26일 오후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6호선 봉화산 방면 구간 맞은편에서 열차가 달려오고 있다.

열차는 정시에 도착했다. 지난 4월 26일 오후 1시 19분 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도시철도)가 운영하는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승차장 1-1지점. 33년 차 기관사 김기수 과장(52)은 앞선 근무자와 교대해 기관사실에 탑승했다. 그는 가방을 계기판 왼쪽에 내려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열차는 곧 터널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침묵 속의 주행

눈앞에 보이는 것은 터널의 회색 콘크리트 벽과 길게 뻗은 검은 선로가 전부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형광등이 전방을 창백하게 비췄다. 열차가 덜컹거리며 속도를 높이자 선로를 구르는 바퀴의 마찰음이 커졌다. 1분쯤 후 다음 역인 월드컵경기장역 승차장이 보였다.

열차가 정차하자 김 과장은 신호, 열차 출입문, 스크린도어의 상태를 표시하는 계기판과 모니터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개통”, “양호”, “열림”이라고 중얼거렸다. ‘지적확인’과 ‘환호응답’이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입으로도 말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열차가 출발할 때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날 오후 1시 19분부터 3시 7분까지 약 2시간 동안 김 과장이 운전하는 열차는 49개 역을 통과했다.

얼핏 보면 스크린과 모니터만 확인하는 단순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열차와 선로의 기계적·전기적 오작동 및 승객들의 돌발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기관사는 고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작은 사고라도 발생하면 마음은 더욱 매우 급해진다. 여러 대의 열차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지하철의 특성상 고장이나 돌발상황을 처리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다. 6호선의 역 간 소요 시간은 1~2분이다. 각 역에서 정차하는 시간은 20~40초다. 열차 운행이 몇 분만 지연돼도 민원을 감수해야 한다. 환승역에서는 기관사가 환승 안내 방송도 해야 한다. 자동 음성 안내 방송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환승역을 놓치는 승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규칙한 근무환경도 기관사 생활의 어려움 중 하나다. 기관사들은 교번제로 근무한다. 교번제란 분 단위로 출발하는 열차 운행 시간에 맞춰 기관사들을 분 단위로 꽂아넣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기관사들의 출퇴근 시간은 날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다. 달라지는 출근 시간을 모두 외울 수 없다. 기관사들은 운행 일정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과 시간을 강박적으로 확인한다.

열차는 오후 2시 12분 종착역인 봉화산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김 과장은 열차 반대 방향 기관사실로 향했다. 그는 1984년 철도청에서 기관사 일을 시작해 2002년 서울도시철도로 옮겼다. “철도공사에서 일할 때는 공황장애라는 말을 몰랐어요. 지하철에서는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 수가 없어요. 밤에는 한 번 타면 3시간 정도 혼자 이러고 있는데 아무래도 우울해요. 혼자 있다 보니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게 되더라고요.”

열차는 오후 3시 7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정차했다. 김 과장이 내리고 다른 기관사가 탑승했다. 김 과장은 2시간 동안 함께 탄 기자와 몇 마디라도 말을 나눴지만, 교대자는 환승 안내 방송을 할 때 말고는 침묵 속에서 주행할 것이다.

말동무도 없이 3시간을 달린다
보이는 것은 잿빛 터널과 선로뿐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나는 모른다.



9개의 ‘근조 리본’

이날 김 과장은 검은 양복을 입고 ‘근조’ 리본을 달고 있었다. 앞서 지난 4월 8일 오전 6시 30분쯤 그와 같은 서울도시철도 6호선 수색승무사업소에서 일하던 김 모 씨(51)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 소속 기관사의 자살은 2003년 이후 9번째다.

2003년 8월부터 2006년 4월까지 4명이 자살했다. 2012년 3월부터 2013년 10월 사이에는 3명이 목숨을 끊었다. 서울시는 2012년 박원순 시장 지시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만들고 2014년 4월 힐링센터 설치 등의 내용이 담긴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안’을 내놨다. 그러나 그해 9월 1명이 자살한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서울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 사건은 서울메트로(1~4호선)나 다른 광역시 지하철과 비교해 지나치게 많다. 서울도시철도보다 20여 년 먼저 개통된 서울메트로의 기관사 자살은 지금까지 2명(2014년, 2015년)이다. 부산지하철(2016년 4월)과 인천지하철(2013년) 기관사는 각각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구, 광주, 대전지하철에서는 자살로 사망한 기관사가 없다.

지하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 날마다 출근 시간이 달라지는 불규칙한 근무 패턴, 돌발적 안전사고에 대한 강박적 긴장감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운행 지역과 관계없이 모든 기관사가 겪는 어려움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도시철도에서만 불과 13년 사이에 9명이나 목숨을 끊은 걸까. 노동강도와 근무환경, 조직문화와 노사관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도시철도는 전 구간을 기관사 1명이 운전하는 1인 승무제로 운영된다. 반면 수동운전 차량이 대부분인 서울메트로는 열차 맨 앞에 기관사가 타고 맨 뒤에 차장이 탑승하는 2인 승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1인 승무제에서는 2인 승무제에서 기관사와 차장이 분담해서 하는 일을 기관사가 혼자 수행해야 한다. 2인 승무제는 기관사의 고독감을 덜어줄 뿐 아니라 사고 시 대처 능력에서도 우월하다. 당연히 기관사의 심리적 부담이 덜한 쪽은 2인 승무제다.

현재 국내에서 2인 승무제를 운영하는 곳은 서울메트로뿐이다.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등 다른 광역시 지하철은 서울도시철도와 마찬가지로 모두 1인 승무제다. 하지만 수송량에서 큰 차이가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서울도시철도 일일 수송 인원은 267만5000명이다. 반면 부산교통공사는 그 절반 이하인 89만 명, 대구도시철도공사는 36만7000명, 인천교통공사 27만9000명, 대전도시철도공사 11만2000명, 광주도시철도공사는 4만9000명이다.

▲ 서울도시철도공사 김기수 기관사가 지난 4월 26일 오후 6호선 전동차 기관사실에서 열차 신호와 출입문 개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억압적 노무관리

서울메트로는 일일 수송량이 서울도시철도보다 많은 423만 명이고 일일 운행횟수도 서울도시철도보다 1,000회가량 많은 2,420회에 이른다. 그런데도 서울도시철도의 자살 사건이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은 승무제의 차이 때문이라는 게 서울도시철도 노조의 주장이다.

1인 승무제가 기관사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이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의 제1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노조와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점은 서울도시철도의 경직된 조직문화와 억압적 노사관계다.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출신으로 2003년 2명의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노조 승무본부장을 지낸 정흥준 고려대 연구교수(경영학)는 “서울도시철도는 설립 당시의 특별한 배경 탓에 노조에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군대식 문화가 오랜 기간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서울시가 서울 지하철 운영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로 나눈 표면적인 명분은 비교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실제로는 강성으로 꼽혔던 서울메트로 노조를 약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쟁사를 만든 것”이라며 “서울도시철도는 사용자 주도 노사관계로 가보자는 실험적 조직으로 노조를 억압하는 문화가 오래 지속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서울시 특별감사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는 2000~2009년 소속 기관사들에 대해 개인정보, 노조 활동경력, 직책, 정치 성향을 담은 인사·노무 파일을 불법적으로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서울도시철도의 경직된 조직문화가 음성직 전 서울도시철도 사장 재임 기간인 2005~2011년에 더욱 억압적으로 변했다고 평가한다. 음 전 사장은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 교통국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성과주의를 내세워 재임 기간 중 17차례나 조직개편을 단행한 음 전 사장은 2008~2011년 직원들 사이에서 ‘강제 퇴출 프로그램’으로 통한 ‘5678서비스단’을 조직했다.

대상은 54세 이상 고연령자와 노조 간부 등으로, 회사는 이들에게 자발적 명예퇴직을 압박했다. 서비스단 소속 노동자들에게는 지하철 잡상인 단속, 객차 내 포스터 붙이기, 무단승차자 단속 등 잡무가 떨어졌다. 당시 서비스단에서 3년 동안 일했던 한 기관사는 “승무사업소장이 작성한 서비스단 배치 이유를 보니 ‘근무는 성실한데 노조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며 “서비스단은 존재 자체가 공포였다. 조금만 잘못해도 서비스단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시키는 건 뭐든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서울도시철도는 2008년부터 2012년 초까지 기관사들에게 수동운전을 지시했다. 명분은 전기절약이었다. 회사는 수동운전 시간을 계측해 승진, 성과급, 퇴출 프로그램 대상자 여부를 결정하는 데 사용했다.

지난해 서울도시철도 내 3개 노조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5678서울도시철도노조로 통합된 이후 노사관계에서는 큰 폭의 진전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태훈 노조 승무본부장은 “노사관계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문제는 노사관계의 암흑기에 발병한 분들이 있지만,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사망한 김 씨는 45만㎞ 무사고 운전에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지만, 사망 하루 전에야 힐링센터를 찾았다. 동료 중 아무도 그가 2005년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2012년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의 임시건강진단에서도 그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노조는 지하 근무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바꿀 수 없는 한, 2인 승무제로 가는 게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와 서울도시철도는 비용상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는 견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조직국장은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러시아워 때만이라도 2인 승무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세상속으로] 서울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