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름만 무거운 '어버이연합', 불쌍하다고? 천만에

이름만 무거운 '어버이연합', 불쌍하다고? 천만에
냉소보다는 '냉정한 국민의식'으로 어버이연합 사태 책임 규명해야
[오마이뉴스] 글: 안호덕, 편집: 박정훈 | 16.05.06 10:51 | 최종 업데이트 16.05.06 10:51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 주간지 <시사저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의 지시로 보수단체 집회를 개최했다고 보도한 <시사저널>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어버이연합을 둘러싼 수억 원대의 거래 및 관제데모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인들 무료 급식이나 여비 지급 등에 대해 적극적 해명을 내놓던 당사자들은 아예 입을 닫고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아예 잠적 상태다. 수억 원의 돈을 지원했다는 전경련과 청와대도 발뺌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응도 차갑다. 주변만 보더라도 "그럴 줄 알았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냐?", "정권, 검찰, 언론 다 똑같은데..."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평소 정치 문제에 비판적이던 후배조차도 관련 뉴스를 보면서 "원래 그랬다"라는 말로 화제를 돌린다.

'원래', '본디 그러한'으로 풀이되는 낱말, 묘하다. 원래 그랬을까? 원래 그랬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못 본척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버이연합의 패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활동을 시작하면서 정권의 대북관에 시비를 걸었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다른 보수 단체와 비교해도 특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냉전적인 대북관에 입각해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고, 보수 대권 후보였던 이회창을 지지하는 것도 사회적 비판 기능 수행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용인되는 수준은 여기까지였다. 삼성 떡값 검사 논란에서 특검팀 수사를 방해하고 김용철 변호사 신변을 위협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낸 미국산 수입 소고기 반대 투쟁을 국가를 망치는 괴담으로 규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 화형식을 감행하고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천막농성장을 습격하기도 했다.

사자가 된 전직 대통령을 관에서 불러내는 퍼포먼스, 부관참시라 불리는 만행을 하는 곳에도 어버이연합이 있었다. 또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조롱을 일삼는 자리에도 그들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없는 만행에 시민들은 두려워했고 언론은 눈감았으며 공권력은 무력했다. 이처럼 어버이연합의 걷잡을 수 없는 패행은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괴물의 자양분을 공급해 오면서 키운 것이다.

▲ 세월호참사 유가족 일부가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로 한 2014년 9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앞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폭행사건에 관련된 유가족과 술자리에 함께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드러난 일면은 추악하다. 경제인단체 전경련에서 매번 수천만 원의 돈을 지원했고 노인들에게는 2만 원이 상시로 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은 직접 관제데모를 협의하거나 지시했다. 퇴직경찰관의 모임인 '경우회'도 이들에게 집회 자금을 제공했다.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법의 테두리를 넘었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송금 부분은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전경련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업무상 배임·횡령죄를 위반했을 확률이 높다. 청와대 행정관의 관제데모 지시가 사실이라면 공무원 중립의 의무도 피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JTBC와 몇몇 언론을 제외하면 보수 언론들은 아예 사실 보도를 하는 것조차 인색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닉슨정권의 사임의 단초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한 헌정 유린이다. 추선회 사무총장의 잠적, 전경련의 침묵,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느긋한 검찰의 대응은 이해하기 힘들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구명로비가 큰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백억 원대 원정도박, 50억 원 수임료, 이를 둘러싼 전·현직 판검사의 이합투구와 형량 낮추기, 입점 로비 등, 사법 권력과 자본 권력이 유착이 낳은 최악의 사법비리다. 이는 어버이연합 사태와도 비슷하다. 정치권력(청와대·국정원)과 자본권력(전경련)이 직접 법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본질은 같지 않은가.

그런데 청와대, 국정원, 전경련, 어버이연합이라는 악마의 카르텔을 단죄 않고 정운호 구명로비만 법의 심판대에 올린다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어버이연합 사태. 국민의 힘으로 단죄해야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배후 의혹을 규탄과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1960년, 이승만 정권 몰락의 시초가 된 4.18 고대생 습격사건을 주도한 건 대한반공청년단이었다. 이들은 자유당 정권의 비호 아래 친위대를 자처했던 정치깡패였다. 어버이연합의 탄생과 활동, 거기에서 드러난 정치·자본권력의 검은 거래는 우리 사회가 정치깡패 시대로 퇴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버이연합. 이름만 무거웠을 뿐 어버이의 품성도 노인의 지혜로움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 언론 일부에서는 '2만 원 알바에 내몰린 불쌍한 노인들'이라며 동정 여론을 조성하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엄연한 범죄행위다.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드러난 정치·경제 권력과의 검은 거래는 냉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용서 또한 진실로 뉘우치는 자들에게만 해당할 일이다. 잠적한 책임자, 묵묵부답인 당사자들에게 베풀 관용이 아니다. 용서의 주체 또한 국민이지 그들을 은근슬쩍 두둔해오던 보수언론이 아니다.

원래 악하고 나쁜 사람은 없다. 그래도 되는 사람도 없다.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여소야대 정국이다. 정권이나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야당을 압박해서라도 정치·자본 권력을 이용해 친위대를 만든 정권과 전경련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 앞에선 만인이 공평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옥시 불매운동'이 불붙고 있다. 이 불매운동은 옥시에만 적용할 일도 아니다. 어버이연합에 더욱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 어버이연합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출처  이름만 무거운 '어버이연합', 불쌍하다고? 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