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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개처럼 일했는데 개처럼 쫓겨났다”

“개처럼 일했는데 개처럼 쫓겨났다”
조선업 구조조정 파도에 스러지는 하청노동자
[경향신문] 거제 | 글·사진 정원식 기자 | 입력 : 2016.05.20 21:56:00 | 수정 : 2016.05.21 00:06:25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 11일 오전 1시, 정현우 씨(38·가명)는 저녁부터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개처럼 일했는데 이렇게 돼버렸어.”, “오빠, 그런 거 아냐.” 최혜영 씨(36·가명)는 날이 밝으면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남편을 미용실에 데려가 염색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세 아이는 부부 사이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남편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전 2시 최씨가 먼저 잠들었다. 4시간 뒤인 오전 6시 15분쯤, 아내는 욕실에서 목을 매고 숨진 남편을 발견했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추정했다.

정 씨는 삼성중공업 사내하청업체인 성우기업에서 취부(선체 조립 시 부재를 도면에 정해진 위치에 고정하는 공정) 1반 반장으로 일했다. 사망 하루 전인 10일 그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의 아내와 동료들은 부당한 인력 구조조정 압박에 사표를 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임시휴일 지정으로 생긴 나흘간의 연휴 동안 출근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임시휴일인 6일 오전 7시 26분 성우기업 관리자들의 단체 채팅방에 직장(하청업체 소장과 반장 사이 직책)이 올린 메시지가 떴다. “언제까지 X닦아 줘야 되는지 이리 바쁘다고 난리인데 취부 반장들은 한 명도 안 나오고 사람 바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책임을 지고 그만두니까 알아서들 해라.”

연휴 후 첫날인 9일(월요일), 회사는 조직 개편으로 취부반 2개를 1개로 통합한다면서 정 씨를 물량팀 조장으로 발령낸다고 통보했다. 물량팀은 조선소 사내하청의 하청을 받아 일하는 ‘하청의 재하청’으로, 통상 10~20명이 한 팀을 이뤄 필요한 물량을 채워주고 해산하는 조직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월급과 상여, 수당을 받지만, 물량팀 노동자들은 상여나 수당 없이 시급으로만 계산해 돈을 받는다.

하청업체 반장에서 물량팀 조장으로 가라는 것은 하청에서 ‘하청의 재하청’으로 소속을 바꾸라는 의미이자 관리자에서 일반 작업자로 강등되는 일이다. 급여도 줄어든다. 물량팀으로 소속이 바뀌면 성우기업 취부반 반원들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조선소 하청업체 본공(하청업체 직원) 노동자들은 물량팀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비해 많은 돈을 받는다고 여긴다. 취부반 반장에서 물량팀 조장이 되면 그동안 동고동락해온 취부반원들과 각을 세우는 처지에 서야 한다. 정 씨는 회사의 통보를 받고 오전 10시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서 물량팀으로 가라고 하는데 나와야겠지?”라고 말했다.

아내 최 씨는 “한두 달 전부터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 평소 오전 7시에 출근하던 사람이 6시에 출근하고 퇴근도 더 늦게 했다”며 “휴일에 사흘 놀았다는 걸 빌미로 나가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병역특례로 조선소 하청업체에 입사해 스물다섯에 반장이 됐을 정도로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세 곳에서 조선소 밥을 먹은 기간이 20여 년이다. 한 동료는 “자기 반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월 400시간을 넘긴 적이 허다했다. 철야를 밥 먹듯 했다”며 “죽으라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물량팀으로)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정 씨는 보직변경 통보를 받은 다음 날인 10일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자 회사가 그를 붙잡았다. 물량팀 조장이 싫으면 물량팀 반장 보직을 주고 급여도 동일하게 유지하겠다고 제안했다. “남편이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어요. 막상 나간다고 하니까 더 부려먹으려고 잡은 거잖아요. 신랑이 그랬어요. ‘내가 진짜 배신감을 느낀다. 개처럼 일하다가 쫓겨나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 약까지 올리는 것 같다’고요.”

사망 후 확인된 정 씨의 카카오톡 바탕화면에는 “이제 무겁다…내려놓아도 될까”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작성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우기업 측은 인력감축을 할 상황이 아니었고 보직이 변경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 지난 13일 오후 1시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본사 앞에서 11일 사망한 삼성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정모씨의 아내가 남편의 영정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소리 없이 진행되는 구조조정

성우기업에서 갑작스러운 보직변경 통보를 받은 것은 정씨가 처음이 아니다. 조선소에서 15년을 일했다는 김철중 씨(43·가명)는 지난해 12월 회사로부터 반장을 그만두고 작업자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자괴감과 모멸감이 들었죠. 반장 하다가 작업자를 하라고 하면 사람들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저도 아이가 셋이고 반장이었기 때문에 현우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저는 휴가를 내고 버텼어요. 그런데 연락도 없고 작업자 말고는 할 일이 없다고 해서 결국 사표를 썼습니다.”

수틀린 김에 사표를 냈지만, 대안은 없다. “장사를 하려고 해도 거제 경기가 안 좋으니 나가서 먹고살 길이 없잖아요. 현우도 그랬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경력이 짧은 작업자도 예외가 아니다. 사망한 정현우 씨가 느닷없이 물량팀 전보 통보를 받았던 지난 9일 성우기업 취부2반 소속 박해진 씨(33·가명)도 일방적인 인사이동 통보를 받았다. 최근 건강이 나빠진 그는 지난 4일에 연차를 쓰고 나흘 연휴를 모두 쉬었다. 9일 오전 전 사원이 모인 가운데 시행된 안전교육 시간에 관리자는 박 씨의 용접용 장비를 지목하면서 ‘이 장비의 주인에게 다시는 장비를 지급하지 말라’고 했다. 곧이어 직장과 반장의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면담 요청은 곧 문책을 뜻한다. 관리자들은 박 씨에게 이날부터 거제 한내공단 적치장으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적치장에서 바지선 화물 고박(화물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것) 업무를 하라는 것이었다. 박 씨는 이를 거부하고 계속 종용할 경우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고 말했다.

오후 1시, 소장과 면담했다. 박 씨는 그 자리에서도 적치장 근무를 거부했다. 면담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고 같은 말싸움이 반복됐다. 박 씨는 결국 한 달간 적치장에서 일한 후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그가 정 씨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적치장 출근 첫날이었다.

박 씨는 정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30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조선 노동자는 하청업체 노동자라도 기술 하나는 최고라는 자긍심으로 일한다”며 “항상 바르고 성실했던 정씨가 받은 심리적 타격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반장도 아니고, 시급이 깎이지도 않았고, 책임질 가족이 없어도 이렇게 힘든데, 형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지난해 삼성중공업 출신이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회사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박 씨는 말했다. 하청업체 소장은 항상 현장 사람이 승진하던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경우다.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130여 개 가운데 조선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선수·미 공정을 진행할 수 있는 기업은 성우기업을 포함해 2개 업체에 불과하다. 박 씨는 “구조조정을 칼같이 하려면 오랫동안 작업자들과 같이 일해온 소장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흘러가면 결말이 뻔하다”며 제 발로 걸어나간 이들만 20여 명쯤 된다.

노동계는 정 씨의 죽음이 하청업체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본다.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중공업과 성우기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중단할 것과 하청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책임 하청에 떠넘기는 구조조정

사망한 정 씨는 사표를 내면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거제 지역 조선 노동자들은 원청 정규직 노조가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정규직 노조도 없는 삼성중공업보다 인간적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정이 나쁘기는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폐업한 사내하청업체는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만 사내하청업체 21곳이 폐업했다. 조선업종에 적색 신호가 켜지기 전만 하더라도 원청 노조가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와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정규직들도 감원 걱정으로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노무사들만 ‘노’났죠.”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인 한철호 씨(43·가명)가 말했다. “체당금이란 게 있는데 이걸 신청하려면 서류가 복잡해서 노동자들이 혼자 못해요. 노무사들이 체불임금의 5%를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재작년까지는 7%였는데 지금은 노무사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좀 떨어졌어요.” 체당금은 업체가 폐업하면 국가가 먼저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근로복지공단이 다음에 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서울지역 노무사들까지 거제에 내려와 영업하고 있다. 그나마 체당금은 하청업체 본공 노동자들만 신청할 수 있다. 물량팀 노동자들은 임금을 떼이면 민사소송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절차 때문에 대부분 그냥 포기한다고 한다.

한 씨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하청업체들을 합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은 루마니아 자회사가 수주한 유조선 2척이 전부일 정도로 나쁘지만, 기존 물량을 소화해야 하므로 업체들을 묶어 필요한 인원만 남기고 털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딱 두 부류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평소에 하던 대로 하는 사람. 전자는 정말 열심히 해요. 평소 두 배로. 잘리면 갈 데가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런데 옆 사람이 그래요. ‘너 빨리 잘리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잘리려고 열심히 일하느냐’는 농담은 작업 속도에 비례해 일거리가 떨어지기 때문에 공정을 지연시켜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청업체 노동자, 물량팀 팀장, 물량팀 팀원 등 “업체 사장 말고는 다 해봤다”는 한 씨는 정부의 구조조정이 조선업의 고질적인 하청-재하청 구조를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닌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청업체 소장이 물량팀에 물량을 배분합니다. 물량팀마다 단가를 다르게 잡아요. 말 잘 듣고 술이라도 한잔 사주면 단가가 조금 높은 걸 주는 식입니다. 원청이 하는 짓을 하청업체가 물량팀에 하는 겁니다. 물량팀장은 하청에서 받은 돈으로 팀원들에게 돈을 줘야 하니까 단가를 맞추려면 일을 막 할 수밖에 없어요. 불량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구조조정을 하려면 이런 것부터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인원 감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또 다른 대우조선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인 박홍규 씨(42·가명)는 최근 들어 ‘안전규정 엄수’ 요구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반장이 앞으로는 안전규정을 어기면 퇴출당한다는 말을 했어요. 분명히 ‘퇴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납품기일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눈감아 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지키라고 하는 거죠.”

일부에서는 조선업종 실업대란을 막는 방법의 하나로 임금삭감과 연동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 씨는 그러나 “조선소 일을 한 지 7년 됐는데 시급이 6,300원이다. 4대 보험을 제외하면 매달 150만 원에 불과하다”며 “여기서 임금을 더 줄인다면 죽으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거제지역 구조조정 폭풍은 올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들이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는 현재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8기 중 9기, 삼성중공업은 24기 중 5기가 6~9월 사이에 선주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거제지역에서만 2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출처  [커버스토리] “개처럼 일했는데 개처럼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