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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342만명 삶 바꾼다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342만명 삶 바꾼다
최저임금위 사흘간 집중 심의... 노동 “1만원” 대 재계 “6030원”
최저임금 받는 78%가 핵심 소득원... 각계 “큰 폭 올려 격차 해소를”

OECD 26개국 중 18위로 한국 임금수준 낮지만
노동자 영향률은 미국의 4배... 미·영·일 등 1만원 넘거나 근접

[한겨레] 정은주 박태우 기자 | 등록 : 2016-07-04 20:02 | 수정 : 2016-07-04 22:58


▲ 알바노조 용윤신 사무국장(왼쪽)과 우람 정책팀장이 4일 오후 장밋비가 내리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인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는 파견노동자 이상현(가명·29) 씨는 한 주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다른 주는 오후 3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며 월 170만 원을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을 적용한 월급이다. 월세 30만 원과 공과금을 내고 부모님께 생활비(50만 원)와 적금을 보내고 나면 20만 원으로 식비와 나머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이 씨는 “친구를 만날 때도, 경조사를 챙길 때도 늘 눈치가 보인다”며 “인간관계가 끊기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을 하려면 월급이 200만 원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씨처럼 최저임금이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는 342만 명, 전체 임금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에 이른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10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미국 민주당이 최저임금 15달러(약 1만7000원)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나오는 등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거세고, 국내에서도 어느 때보다도 ‘격차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는 4일 8차 전원회의를 열어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를 재개했다. 지난달 28일 7차 전원회의에서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이 내놓은 최저임금 요구안을 놓고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간 것이다. 노동계는 시급 1만 원·월급 209만 원(소정노동시간 209시간)을, 경영계는 시급 6,030원(전년 대비 동결)을 각각 최초 요구안으로 내놓은 상태다. 이날 양쪽은 최초 요구안을 제안한 배경을 설명하고 토론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최저임금위는 5일과 6일에도 9~10차 전원회의를 연이어 연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이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고용부 장관 고시일(8월 5일)의 20일 전(7월 16일)까지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2007년 12.3%였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2.8%)까지 지속해서 하락했지만, 이후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부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시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인상률은 8.1%, 2001~2015년 연평균 인상률은 8.7%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크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최저임금이 가계 및 기업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서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노동시장이 이중화되면서 주요 선진국 중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며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구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2014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가운데 18위로 낮은 편이지만, 최저임금 영향률(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 비중)은 18.2%로, 프랑스(11.1%)나 미국(3.9%), 일본(7.3%)보다 훨씬 높다. 특히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10명 중 8명(77.9%)은 가구의 핵심 소득원(가구주 또는 가구주의 배우자)이었다. 오상봉 실장은 “최저임금은 개인을 넘어 이제 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전원회의에 앞서 노동자 위원들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 1만 원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익위원들이 노동자 위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보다 수정안 제출 압력을 가하거나 무리하게 낮은 수준에서 조정을 시도한다면 중대 결심을 하고 특단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위는 노동자 위원 9명, 사용자 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이뤄져 있다.

야당도 한목소리로 “최저임금을 10% 이상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강병원·송옥주 의원은 이날 전원회의를 앞두고 최저임금위를 방문해 공익·사용자 위원들과 한 간담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7,000원대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민주는 지난 4월 총선 당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도 지난달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재 우리 사회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당면한 첫 번째 과제는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최저임금 1만 원을 곧바로 달성하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여당인 새누리당만 “지난해처럼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무리”라고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 10명 중 7명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이상 인상에 찬성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23~27일 경제·경영·노동법 전문가 105명을 상대로 2017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몇 %가 적절하냐고 묻자 “13% 이상(2020년까지 1만 원)”이라는 응답이 48.5%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시급 1만 원(인상률 60%)”을 24.2%가 선택했고 “5~8%”(18.9%), “1~4%”(4.2%)가 뒤를 이었다. 양혁승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서민경제를 살려야 국가 경제도 선순환으로 살릴 수 있다”며 “임금의 양극화, 부의 양극화가 심해 한국 경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데 최저임금 인상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이시디도 지난 5월 펴낸 ‘2016년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임금 격차에 따른 소득 불평등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한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 바람은 세계적으로도 거세다. 대선을 앞둔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겠다고 밝혔고, 영국은 지난 4월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생활임금 제도로 대체해 25살 이상 노동자 기준으로 2020년까지 생활임금을 시간당 9파운드(약 1만4000원)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일본은 지난해 최저임금을 시간당 798엔(약 9,000원)으로 정한 뒤 올해부터 매년 3%씩 끌어올려 이른 시일 안에 1,000엔(약 1만1000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출처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342만명 삶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