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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KEC 정리해고는 부당”…1심 뒤집고 노조파괴 인정

법원 “KEC 정리해고는 부당”…1심 뒤집고 노조파괴 인정
2012년, 파업 참여했다고 75명 해고 방침
“파업 참가자 퇴사 목표로 한 해고…불공정”
“회사가 해고 조직적 검토·계획” 지적도

[한겨레] 현소은 기자 | 등록 : 2017-01-26 14:46 | 수정 : 2017-01-26 20:42


▲ 2010년 10월 25일 케이이씨(KEC) 노조원 200여 명 가족대책위의 김은숙(왼쪽)·최성아씨가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서지 말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파업자의 회사 복귀는 원칙적으로 차단해 전원 퇴직이 원칙이다. 친기업 성향의 노동조합을 설립해 회사 경쟁력 강화 협조체제를 구축한다. 파업자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강화해 복귀사원의 조합탈퇴, 추가징계(를 도모)…”

2011년 2월, 경북 구미의 반도체부품 제조업체 케이이씨(KEC)는 문건을 하나 만들었다. 노조전임자 처우보장 등을 요구하며 반년께 파업 중인 금속노조 지회에 대한 대응전략이었다.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노조파괴 문건’이었다.

전략은 현실이 됐다. ‘친기업 성향’의 기업별 노조인 케이이씨노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조합법상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진 2011년 7월 1일, 가장 처음 생긴 복수노조 중 하나였다. 이듬해 2월, 회사는 75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었다. 그해 5월 회사가 정리해고를 철회했지만, 부당노동행위를 둔 논란은 이어졌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는 케이이씨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낸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케이이씨 정리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법원은 먼저 정리해고 목적의 부당성을 짚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파업 참가자의 회사 복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전원 퇴직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지적했다. 파업 참여자의 퇴직 방침을 강구한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 문건이 주요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문건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검토하고 계획된 자료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노조파괴 전략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법원은 케이이씨가 파업 참여자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해고대상자를 선정했다고도 판단했다. 회사는 해고대상자 선정 평가항목을 만들면서 회사 점거 주도·참여 경험이 있으면 12~15점을 감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각의 경우 0.5점이 깎이고 표창을 받으면 5점이 가산되는 데 비해 현격히 차이 나는 배점이다.

재판부는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이 형식적으로 합리적이거나 공정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사용자가 혐오하거나 주안을 둔 평가요소에 따라 해고 여부가 결정되는 결과라서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중노위가 케이이씨의 정리해고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한 지 4년 2개월 만에 나왔다.

2012년 11월, 중노위는 “케이이씨 사용자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사과문과 이 사건 판정서를 사내 게시판에 10일 이상 게시하라”고 명령했지만, 회사 쪽이 반발해 판정 취소소송을 냈다.

2014년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회사가 근로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회피하려 노력한 사정이 보인다”며 중노위 판정을 뒤집었다.

항소심 판결은 이를 다시금 뒤집은 것이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장석우 변호사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은 노동자 쪽에 있으므로 법원에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파업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해고하기 위해 회사가 체계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을 법원이 폭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출처  [단독] 법원 “KEC 정리해고는 부당”…1심 뒤집고 노조파괴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