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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보다 위험한 ‘묻지마 오보’

‘가짜 뉴스’보다 위험한 ‘묻지마 오보’
[민중의소리] 김동현 뉴미디어팀장 | 발행 : 2017-02-17 18:57:13 | 수정 : 2017-02-17 18:57:13


▲ 11일 ‘12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 집회 현장에서 배포된 2월 11일자 <노컷일베>. 한겨레 사진 김규남 기자
원문보기 : 촛불집회에 중국 유학생 동원?…‘가짜뉴스’ 판친 탄핵반대 집회


미국 대선 이후 미디어업계의 화두로 ‘가짜 뉴스’가 떠올랐다. 트럼프 당선의 요인 중 하나로 ‘가짜 뉴스’의 폭발력이 꼽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버즈피드가 분석한 ‘가짜 뉴스’의 폭발력은 기존 미디어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2016년 8월부터 선거 전까지 소셜미디어에서 주류 언론 기사들에 대한 반응보다 ‘가짜 뉴스’에 대한 반응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사용자들이 ‘가짜 뉴스’를 돌려봤다는 거다.

‘가짜 뉴스’의 개념은 ‘유언비어’와는 다르다. 영어로 ‘fake news’라고 불리는데, 언론사 사이트처럼 웹사이트를 꾸며놓고 문체도 언론사의 기사와 똑같다. 모양 자체로는 이것이 언론사의 기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 사실 웬만한 사람은 그냥 ‘뉴스’로 인식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가짜 뉴스’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즈피드가 분석한 글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 뉴스’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는 제목의 글이었고, 두번째는 ‘위키리크스, 힐러리가 IS에 무기를 팔았다는 사실 확인’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 마치 언론사 사이트 처럼 생긴 곳에 기사처럼 생긴 글이니 사람들은 ‘기사’라고 생각했다. 언론사는 ‘사실’을 쓰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가짜 뉴스’의 상당수는 트럼프에 유리하고 클린턴에 불리한 내용이 많았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선관위에서도 구체적으로 대책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언론사들도 ‘가짜 뉴스’에 대한 기획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14일에는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Fake news(가짜 뉴스)개념과 대응 방안’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허위정보를 전달해 수용자가 현실을 오인하게 만들면서 경제·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기만적이고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 - 황용석 건국대 교수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기사 형식으로 유포하는 것” - 박아란 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토론회에서 나온 ‘가짜 뉴스’에 대한 정의다. ‘기사 형식’을 빌었느냐 아니냐를 구분해야 한다는 쟁점이 있긴 하지만 ‘가짜 뉴스’는 어찌되었든 ‘기사’가 아니라고 전제한다. 뒤집어 말하면 ‘기사’는 ‘팩트’를 기반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과연 ‘기사’는 ‘팩트’에 기반하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토론회가 열리던 14일 한국을 강타한 뉴스는 ‘김정남 피살’ 소식이었다. ‘김정남이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확인된 사실은 없었던 시점이었다. 아니 정확히 14일 낮까지만 해도 그 남성이 김정남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사 사이트’들에는 ‘김정남이 북한공작원에 의해 독침으로 피살됐다’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용의자’를 잡은 것도 아니고 쫓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독침’의 종류부터 시작해 ‘여성공작원’은 어떻게 양성되는지 해설기사가 쫘르륵 떨어지고, ‘좌우’를 막론하고 분석기사까지 쏟아졌다.

하룻만에 독침은 스프레이로 바뀌었다. 붙잡힌 용의자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여성으로 확인되자 북한공작원은 ‘용병’으로 바뀌었다. 이때까지 확인된 사실은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시신을 부검했다는 것 외에 없었다. 부검결과가 발표된 것도 아니었다.

뉴스를 치밀하게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사람은 김정남이 북한공작원에 의해 독침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어떤 사람은 북한공작원에 의해 스프레이의 독에 피살된 것으로, 또 어떤 사람은 베트남여성에 의해 독침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또 다른 사람은 베트남여성에 의해 스프레이에 피살된 것으로 알 것이다. 잘못된 정보들을 조합한 가짓수는 훨씬 많아진다. 잘못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포된 탓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정보들은 ‘기사를 가장한 가짜 뉴스’가 아니라 ‘언론사의 기사’로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앞으로 가서, 황용석 교수가 지적한 ‘가짜 뉴스’의 개념을 대입해보자. “허위정보를 전달해 수용자가 현실을 오인하게 만들면서”가 ‘가짜 뉴스’의 전제다. 세상에나, 한국 언론 대부분이 그랬다. 박아란 연구위원의 정의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기사 형식으로 유포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의도적’은 아니었다고 언론사들이 변명한다면 ‘가짜 뉴스’라고 부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그럼 ‘진짜 뉴스’냐!

언론들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국정원이 잘못된 정보를 줘서 그런 보도가 나온 것이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그럼 보도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확인된 사실만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국정원을 언제부터 그렇게 신뢰했다고 말하는 그대로 받아쓰고, 기정사실화해서 이런 세계적 망신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가짜 뉴스’를 걱정하면서 쓴 주간조선의 기획기사 제목이 ‘가짜뉴스, 세상을 어떻게 현혹하나’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현혹하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공인된 언론사’들이 쓰는 ‘묻지마 오보’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현실이 아닐까. ‘가짜 뉴스’를 걱정하기 전에 ‘진짜 뉴스’부터 쓰자.


출처  [데스크칼럼] ‘가짜 뉴스’보다 위험한 ‘묻지마 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