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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잖아요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잖아요
[이진순의 열림] 故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한겨레]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 녹취 심지연 | 등록 : 2017-03-03 21:35 | 수정 : 2017-03-05 11:04


▲ “삼성이 새롭게 변해가는 시발점이 되길 바라요.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삼성의 그 엄청난 비리를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삼성백혈병 피해자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것과 관련해, “강한 처벌만이 삼성을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황상기씨가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삼성 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사무친 원한은 맹독을 품고 있다. 원한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힘없는 희생자에게 무정한 세상인심,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는 비겁한 이웃들에 대해서도 품은 한이 맺힌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증오를 낳고, 많은 이들은 그 저주의 사슬에 묶여 스스로 거칠고 강퍅해진다. 누군가 그 저주의 사슬에 속박당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과 애정을 긴 세월 지켜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10년째 외롭게 싸우는 사내를 만났다. 속초 사람 황상기(62). 지난 10년간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억울하게 죽어간 딸 유미, 병들어 돌아온 손녀딸을 본 충격에 세상을 뜬 노모, 딸의 죽음 이후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택시기사인 그는 지난 10년간 온전한 밥벌이를 포기했고, 일주일의 반을 거리에서 노숙한다. 그런데 그의 유순한 얼굴엔 여전히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가 가득하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을 그는 어떻게 긴 세월 곰삭여 왔을까?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사옥 앞 농성장으로 그를 찾아갔다. 때아닌 겨울비로, 얼기설기 씌워놓은 농성장 비닐 덮개엔 군데군데 사발처럼 물이 고였다. 출입구도 따로 없어 주름진 비닐 포장을 걷어 올리고 머리를 낮게 디밀어 농성장으로 들어서는 동안, 비닐에 고여 있던 빗물이 물 폭탄처럼 쏟아졌다. 그는 <알자지라> 방송팀과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기업을 하다 보면 잘못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럼 국민한테 사과를 해야지요….”

저런 인터뷰를 수백 번도 더 했을 법한데, 그는 수줍은 모범생처럼 반듯한 자세로 곧추앉아 토씨 하나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그의 발치에 밀어놓은 짜장면 그릇이 보였다. 포장도 뜯지 않은 채였다. 농성장의 방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점심도 거르고 있었나 보다. <알자지라>팀이 떠난 뒤, 식사부터 하시라고 권하자 마지못해 짜장면 포장을 벗기던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말했다.

“커피 타 디릴게요. 혼자만 먹자니….”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서야 그는 불어터진 짜장면을 휘휘 젓기 시작했다. 고개 숙인 그의 어깨너머로, 오래전 한 대학생이 만들어 증정했다는 소녀상이 보였다. 가녀린 어깨에 환자복을 입은 그의 딸, 황유미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이었다.

▲ 딸의 10주기(3월 6일)를 앞두고 황상기씨는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딸을 화장해서 뿌린 곳에 꽃 한 송이를 사 들고 다녀왔다고 했다. 황씨는 화학약품 냄새를 맡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딸을 생각해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딸의 유골을 뿌려줬다. 강재훈 선임기자



죽어서라도 맑은 공기 속에 잠들기를

딸 유미는 아빠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2차 골수이식수술을 앞두고 피검사를 받기 위해 새벽 일찍 수원의 대학병원에 갔다가 속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횡성을 지날 무렵, 유미가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다. “아, 더워.”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차창을 조금 열고 10분쯤 갔을 때, 다시 유미가 말했다. “아, 추워.” 다시 창문을 올렸다. 잠시 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뒷좌석의 딸을 돌아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얘가 왜 이래?”

차를 갓길에 세우고 뒷문을 열어보니 딸은 이미 눈자위가 돌아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비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유미는 그렇게 떠났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 입사하기 전까지 건강하던 딸이었다. 아내가 울면서 딸아이의 눈을 감겼다. 2007년 3월 6일. 그때 유미는 스물세 살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 따님의 10주기가 다가옵니다. 해마다 앞서간 자식의 기일을 맞이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유미 엄마하고 둘이서 유미 화장해서 뿌린 곳에 꽃 한 송이 사 들고 갔다 왔어요.”

- 어디다 뿌리셨어요?

“설악산의 울산바위 앞인데 거기 가면 바다도 보이고 울산바위도 정면으로 보여요. 유미는 반도체공장에서 지독한 화학약품 냄새를 맡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잖아요. 그래서 화학약품 냄새 없는 곳에서 지내라고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뿌려줬어요.”

- 살아 있었다면 서른셋이 되었겠네요. 결혼하고 아이엄마가 되었을 수도 있는 나이예요.

▲ 황상기씨는 앞서 이야기를 나누던 <알자리자> 방송팀이 떠나자 마지못해 짜장면 포장을 벗기고 뒤늦은 점심 끼니를 때웠다. 강재훈 선임기자


“유미 친구들이 가끔 찾아오는데, 걔네들 결혼해서 애들 하나둘씩 데리고 오는 거 보면 유미 생각이 저절로 나요.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벌써 10년째 추모제를 하고 있어요.”

- 이번 기일을 앞두고 수원에서 79명의 방진복 행진을 한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삼성 반도체와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 백혈병이나 암으로 79명이 죽었거든요. 수원에 유미가 다니던 기흥반도체도 있고 화성반도체, 삼성 사업장이 있어요. 거기 반도체공장에서 쓰는 각종 화학약품 때문에 노동자들이 암에 걸리고 죽는다는 걸 알려서 삼성 직원들이 위험성을 인지하고 사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하게 하자는 뜻이에요. 거기서 쓰는 화학물질이 수천종인데 어떤 유해물질을 쓰는지 삼성이 ‘영업비밀’이라고 여태껏 안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상고 졸업반 때 삼성 취업한 자랑스런 딸
속초터미널 떠날 때 웃으며 배웅했는데
2년도 채 안돼 딸에게 걸려온 전화
“하늘 무너지는 것같이” 아득했다
부모는 새집 지으려 모아둔 돈 헐어

2차 골수이식수술 앞두고 검사 위해
수원 병원 갔다가 속초 집 돌아오던 길
아빠가 몰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 거둬
화학약품 냄새 맡다 세상 떠난 딸 위해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설악산에 뿌렸다


-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병들었는데, 아직도 생산라인이나 공정이 바뀌지 않았단 말씀인가요?

“그 안에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요.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삼성만 알고요.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한테 거기서 쓰는 화학약품이 뭔지 정확히 안 알려주니까, 현장에서도 자세한 건 모르고 일하는 거죠.”

-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는데 국회의원들이 현장점검도 안 했다고요?

“국회의원들이 들어가 점검한 적 없고요. 국회의원들이 들어가도 알 수가 없을 거예요. 화학약품 성분은 삼성하고 노동부만 가지고 있는데, 노동부에서 ‘삼성의 영업기밀’이라 말할 수 없대요.”

- 2014년 2월에 황유미씨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고, 삼성반도체 공장 산재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그해 5월에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가 “삼성전자 반도체와 엘시디의 산업재해 의심 피해자들에 대해 소홀했던 점을 사과한다”고 발표하고 책임 있는 보상을 약속했고요. 그렇게 문제가 일단락된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 故 황유미씨의 삼성전자 입사 전인 고등학교 시절 모습. 반올림 제공


“전 그게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라고 생각해요. 두루뭉술하게 ‘삼성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발병한 사람들을 여태까지 방치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거든요.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서 발병했는지’ 책임지는 말은 일절 안 했다고요. 이걸 가지고 보수적인 방송, 신문, 경제지에서 몇 달을 우려먹었어요. ‘이건희 체제가 물러나고 이재용 체제가 들어서서 삼성이 뭔가 달라졌다’, ‘사회적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재용이가 아주 잘했다’, 이렇게 칭찬을 몇 달 동안 해대고…. 그렇게 언론플레이만 해놓고 대화를 싹 닫아버렸는데, 대화를 닫은 시기가 2015년 이재용이 최순실, 정유라한테 말 사주고 박근혜하고 집중적으로 대화하고 돈 줬던 시기하고 딱 겹치죠.”


삼성은 알지 못할 스머프의 힘

오후 내내 빗줄기는 굵어졌다가 가늘어지기를 간헐적으로 반복하고, 농성장 비닐 덮개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아득한 꿈결처럼 현실감을 잃게 했다. 비닐 덮개 바깥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 한복판이다. 44층짜리 휘황한 삼성 사옥의 유리 벽 안에선 이 농성장이 어떻게 보일까?

변변한 천막도 아니고, 파라솔 우산을 가운데 세우고 얼기설기 프레임을 엮어 비닐과 은박커버로 덮은 두어 평 공간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농성을 벌여온 지도 500여 일째. 2015년 10월 15일 삼성전자가 피해자와의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를 사실상 무산시킨 것에 항의하면서 대화 재개를 요구하고 시작한 농성이다.

- 농성장에는 얼마나 자주 오세요?

“일주일에 2, 3일 정도?”

- 속초에서 개인택시 영업하시죠? 일주일에 2, 3일을 서울에 계시면 영업은 언제 하세요?

“(웃음) 요새만 그런 게 아니고 유미가 처음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12~13년이 된 것 같은데, 그때부터 택시 영업은 조금밖에 못하고 있어요.”

- 날 추운데 여기서 먹고 자고 하시는 분들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어요.

“그나마 겨울엔 좀 견딜 만해요. 여름엔 더 힘들죠. 바람도 안 통하고 푹푹 찌고. 지금이니까 이 정도지, 처음엔 바닥에 스티로폼도 깔지 못하게 해서 경찰, 구청 직원, 삼성 경비들하고 한나절을 싸웠어요. 마침 길 가던 어떤 분이 ‘여보쇼, 이 사람들이 농성하려면 앉기도 하고 잠도 자야지, 이것까지 못 깔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막 따지니까, 경찰이랑 삼성 경비가 슬그머니 물러나더라고요.”

- 그렇게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한마디 거들면 도움이 되는군요.

“그럼요. 여길 누구 혼자 지킬 수가 없어요. 구청이랑 삼성에서 설치한 카메라 7~8대가 이 농성장 주변을 뺑 돌아가며 비추고 있거든요. 혼자 있다가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여길 비웠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농성장 찾아와 지켜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후원금 보내주시는 분도 계시고, 지나다가 빵 하나, 과일 하나 사와서 두고 가는 분도 계시고. 같이 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날도 농성장엔 세 명의 ‘도우미’가 와 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젊은이들로 각자 자원해서 농성장 지킴이로 찾아온 거라고 했다. 행여 인터뷰를 방해할세라 좁은 구석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우미들을 소개하며 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그러면 그렇지, 삼성이 호락호락 자기들 대문 앞에 이런 농성장이 들어서는 걸 허용했을 리가 없지요.

“그러믄요. 아침 여섯시만 되면 경비들이 와서 일어나라고 깨우지, 밤새 진공 청소하는 차가 보란 듯이 주위를 돌면서 윙윙 소음을 내지, 요 앞에 피켓을 전시해 놓으니까 불법부착물이라고 구청이랑 경찰서에서 사람 나오지…. 우릴 쫓아내려고 얼마나 안달을 했게요.”

저 높은 유리성 안의 삼성 임원들은 알까? 버섯처럼 둥근 비닐 덮개 아래, 옹색하게 쭈그려 앉은 이들이 마냥 처량하거나 악에 받쳐 있지만은 않다는 걸. 버섯 마을 스머프들처럼 온정과 위로와 평화를 나누는 곳. 농성장 비좁은 공간은 이들이 내뿜는 온기 덕인지, 생각보다 훈훈했다.

▲ 故 황유미씨가 투병 중이던 2006년 5월 속초 어느 절에서 황상기씨와 찍은 사진. 반올림 제공



딸의 목숨값 500만원?

유미는 3남매 중 둘째 딸이었다. 속초상고(현 속초 설악고) 졸업반일 때 삼성에서 학교로 채용문의가 왔다. 성적 상위권 30% 이내의 학생만 지원할 수 있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합격한 딸이 아버지는 마냥 대견했다. 2003년 10월 유미가 십여 명의 동기생들과 속초터미널을 떠날 때, 아버지는 웃으면서 딸을 배웅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5년 5월, 딸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 몸이 아프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건가요?

“밥을 먹었는데 체해서 자꾸 토하고 열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약국 가서 약을 사 먹으라고 했어요. 며칠 뒤에 약 먹어도 계속 아프다길래 병원 가서 주사 한방 맞으랬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애를 입원시켰으니 내려오라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유미는 감기도 잘 안 걸릴 만큼 건강하던 아인데, 무슨 일로 가족을 부를까.”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이” 아득했다. 다행히 맞는 골수를 찾아서 6개월 만에 골수이식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없는 살림에 병원비와 수술비를 장만하는 건 힘겨웠다. 새집을 지으려고 오랫동안 부부가 맞벌이로 모아온 돈과 자식들이 한푼 두푼 보내준 돈을 모두 헐어 유미의 수술비와 치료비로 썼다.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아까울 게 없었다.

- 가족 중에 백혈병이나 암에 걸리신 분 없나요? 가족력이라고 하죠?

“우리 아버지는 89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유미가 항암치료 받고 뼈만 앙상해져서 집에 돌아온 걸 보시곤 화병이 나셨어요. 며칠 동안 밥을 안 잡숫더니 설사를 내리 하곤 갑자기 돌아가셨죠. 76세에. 우리 집에 암 걸린 사람은 없어요.”

- 그래서 산재를 의심하셨나요?

“첨엔 어떻게 치료해야 나을까만 생각하느라고 왜 병에 걸렸는지는 생각할 경황도 없었죠. 근데 유미한테 공장에서 어떤 일을 했냐고 하니까,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갔다 빼는 일을 했다는 거예요. 공장의 과장이 병원에 왔길래 물어보니깐 ‘반도체공장에선 화학약품은 쓰지도 않고 취급도 안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더라고요.”

이듬해인 2006년 7월, 딸과 같은 라인 같은 조에서 일하던 이숙영 씨도 백혈병에 걸려 숨졌다. 10만 명에 두세 명 걸린다는 백혈병이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두 명에게 동시에 닥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산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증거도, 증인도 찾기 어려웠다.

- 삼성에 입사할 땐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을 텐데요.

“사실 나는 유미한테 전문대를 가라고 했거든요. 근데 유미가 자긴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 못하니까 공장에 취업해서 지 밑에 남동생 학비 대주고, 자기 번 돈으로 시집갈 준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때 더 세게 말릴걸, 두고두고 후회가 돼요.”

골수이식수술 후 유미의 부모는 정성을 다해 딸을 병간호했다. 낡은 집에서 목욕탕이 변변치 않아 방 안에 통을 들여놓고 더운물을 퍼 날라서 목욕을 시키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 딸이 애처로워 아버지의 택시 뒷좌석을 침대처럼 만들어 태우고는 꽃구경을 시켰다. 수술하고 기력이 조금씩 회복될 무렵, 삼성에서 과장이 찾아왔다. 사표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사표를 내더라도 산재 처리를 해달라 하니, 과장은 ‘산재는 무슨? 아버님이 이 큰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냐?’며 펄펄 뛰었다.

- 그래서 뭐라셨어요?

“‘못 이긴다’고 했죠. 그러니까 다른 걸 요구하래. 그래서 유미 병원비로 8천만원이 들어갔는데 5천만원만 해달라고 했어요. 해줄 테니 당장 사표를 쓰라고 하면서 백지에 유미 서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받아 갔어요.”

삼성 측에 그가 보상금을 요구한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극진한 간호에도 유미의 병은 재발했다. 사경을 헤매는 딸을 입원시키고 노심초사할 때 과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 병실로 찾아왔나요?

“아니, 병원 로비로 날 내려오라데요. ‘유미는 좀 어쩌냐?’는 얘긴 한마디도 안 물어봐. 100만원짜리 다섯 장을 들이밀면서 삼성에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걸로 해결하자는 거야. 기가 막히고 분해서 한 대 패버리고 싶은데, 그거라도 안 받으면 치료비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았어요. 이 사람들한테 속아서 유미 사표를 쓰게 했구나 후회했죠. 그때부터 삼성하고 싸우기 시작했어요.”

- 왜 그때 달랑 500만 원을 들고 나타난 걸까요? 그때 성심껏 성의 표시라도 했다면 선생님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게요. 삼성은 지금도 조금치도 안 변하고 똑같아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무시하죠. 이렇게 10년이 넘도록 싸워도 아직까지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대화 한마디를 하려 하지 않아요.”

그는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았다. 10억 원을 주겠으니 언론이나 사회단체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무마하자는 회유에도,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 입 다물라는 설득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딸 치료비로 써버려 수리하지 못한 헌 집에는 지금도 여기저기 비가 샌다. 그러나 황유미의 아버지는 더는 삼성이 두렵지 않다.





▲ 유미씨는 회사에서 준 다이어리에 일기나 업무 관련 기록을 빼곡히 남겼다. 작업 실수 개선 다짐서, 청정수칙 10대 항목 같은 것들이다(아래). 대학에 진학하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회사에 왔다며 “엄마한테 미안해서 퇴사를 못하겠다. 나도 친구들처럼 대학 가고 싶다”고 쓴 대목이 눈에 띈다(아래 둘째). 반올림 제공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2014년 8월, 유미가 죽고 7년여에 걸친 힘겨운 소송 끝에 황유미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반올림’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접수된 300여 건의 피해 사례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판정을 받은 것은 황유미 씨를 포함해 고작 6명뿐이다.

- 그런데 왜 산재 소송에서 상대가 삼성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죠?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성보험이라 삼성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서 해요. 일하다가 병들거나 다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죠. 근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삼성 백혈병은 산재로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건 거고요. 그랬더니 근로복지공단에서 큰일 났다 싶었는지 삼성 측에 ‘보조참가인’으로 적극 참가하라는 공문을 보냈대요. 곧바로 삼성에서 선임한 대형로펌 변호사 여섯 명이 이 사건에 달려들었죠.”

- 보조참가인이 뭐예요?

“모르겠어요. 그런 사례가 없었다던데…. 산재 신청을 수리하는 근로복지공단도 삼성 편을 들고, 반도체 사업장 내부의 역학 조사를 한 산업안전관리보건공단도 삼성 편을 들었어요. 나중에 그 공단 이사장이 삼성 계열사 사외이사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유미 실화 소재 영화 개봉돼 관심 끌자
삼성, ‘사과와 책임있는 보상’ 약속
“그건 사과 아니라 ‘변명’이라 생각해요”
보수언론 앞세워 언론플레이 하더니
이재용-박근혜 커넥션 시기와 딱 겹쳐

삼성, “백혈병 3대 쟁점 모두 해결” 선언
“거짓말이죠. 보상기준과 금액 들쑥날쑥”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의 미래?
“삼성이 변해가는 시발점 되기 바라,
잘못 고치라고 끊임없이 압박할 수밖에 ”


- 지난해 1월엔 삼성이 “백혈병 이슈가 9년 만에 해결되고 3대 쟁점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어요. 사실인가요?

“아녜요. 삼성이 먼저, 제3자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의 중재를 받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막상 조정위가 내놓은 조정권고안이 마음에 안 드니까 삼성이 발을 뺀 거예요. 조정위의 권고안은 ‘삼성이 1천억을 내서 그중 700억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보상과 치료에 쓰고 300억은 재발방지를 위해서 사내 옴부즈맨제도를 운용하는 데 쓰라’는 거였거든요. 삼성은 그럼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피해자들과 직접 협의해 보상하는 데 1천억을 쓰겠다고 하면서 자체 대책위원회를 만들었죠.”

- 실제로 1천억원을 보상과 치료에 쓰고 있어요?

“거짓말이죠. 보상기준과 보상금액이 들쑥날쑥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은 2억쯤 주고 어떤 사람은 2천~3천 안겨주고. 개별 합의서를 쓸 때도 합의서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면 줬던 금액을 도로 회수해간다는 조건을 달아서 합의서도 주지 않고 도장만 받아간대요.”

- 여기 신청해서 돈을 받아간 사람들은 그 합의서 내용에 발목 잡혀서 다시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곤란하겠군요.

“어렵겠죠.”

- 반올림에서 함께 싸우던 피해자나 가족들도 그 제안에 응했지요? 10년을 끌어온 싸움인데, 피해를 증언할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네요.

“네, 삼성의 농락으로 그렇게 된 거죠.”


“저는 등 돌린 분들 이해해요”

- 10년 동안 고생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중간에 무임승차한 몇몇 분들이 돈 몇 푼에 넘어간 것 같아서 부아가 나지 않으세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려는 게 아니었잖아요.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거지. 그 사람들이 무임승차하면서 우리 싸우는 데 나와 보지도 않고 삼성에서 보상해준다고 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대로 받아가는 거, 전 사실 이해가 되기도 해요. 그 사람들도 가족을 잃거나 병에 걸려서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 살 텐데 그동안 얼마나 속앓이를 했겠어요? 내가 열심히 싸우는 건, 그런 사람들 바꿔보자고 하는 게 아니고, 잘못된 삼성을 고쳐서 다음부턴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하자는 거잖아요. 서운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 건 다 괜찮아요.”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었어요. 그간 삼성이 저지른 수많은 위법과 비리의 빙산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까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제가 알 순 없지만, 삼성이 새롭게 변해가는 시발점이 되길 바라요.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삼성의 그 엄청난 비리를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강한 처벌만이 삼성을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 2007년 노무현 정부 말기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어서 10년이 지났는데 특별히 달라진 게 없어요. 다음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삼성에 대해서 법에 따라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긴 한데요.(웃음) 여태까지 우리 세상을 보면 정치인, 자본가, 권력가에 의해서 세상이 변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세상이 진화하고 변화한 건, 모두 다 노동자, 국민들의 항쟁과 시위에 의해서였잖아요.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그 정부한테 잘못된 걸 고치라고 끈질기게 압박하는 수밖에 없지. 우리 마음을 다 알아서 해줄 정부는 아무 데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재용은 “정유라에게 300억을 내밀면서 삼성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 씨에게 고작 500만 원을 내민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윤소하 의원의 질의에 “아이 둘 가진 사람으로 가슴 아프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재용은 황유미의 영전에 조의를 표한 적도, 자기 사무실 앞에 500일째 농성하는 황상기를 찾아온 적도 없다. 황상기는 여전히 삼성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출처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