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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구속' 박근혜가 불쌍? 당신이 모르는 사실

'구속' 박근혜가 불쌍? 당신이 모르는 사실
[주장] 박근혜 위한 눈물은 국민 상처를 조롱하는 일
[오마이뉴스] 글: 김종성, 편집: 김도균 | 17.03.31 10:45 | 최종 업데이트 17.03.31 10:45


3월 30일 오전 10시 9분께. 박근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삼성동 집 밖으로 나왔다. 이 장면을 많은 국민이 TV를 통해 덤덤히 지켜보는 가운데, 집 앞의 박근혜 지지자들은 그를 위해 통곡하고 오열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가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31일 오전 3시 45분께. 또다시 박근혜 지지자들이 구치소 앞에서 고함을 치며 애국가를 부르며 통곡을 했다.

사실, 박근혜를 위해 가장 크게 울어야 할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로부터 최대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다. 박정희 시절에 일반 국민의 생계 수준이 좀 나아진 사실이지만, 일반 국민보다 훨씬 더 많이 비정상적으로 분배받은 계층이 있다. 바로 재벌들이다. 이들이 받은 몫은 사실은 국민의 몫이 돼야 했었다.


박근혜를 위해 울어야 할 재벌, 하지만...

박정희와 협력해 국민을 착취하고 배를 불린 재벌들은, 지난 4년간 그의 딸에게 뇌물을 주고 불법이익을 취득했다가 엄청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지금 재벌들은 돈을 써서 박근혜를 변호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들한테 더 이상의 국민적 비난이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지금 재벌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은인의 딸인 박근혜가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가 아니다. 그들에게 다급한 것은 오는 5월 9일에 문재인이 웃을 것인가 안철수가 웃을 것인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웃을 것인가를 하루빨리 예측해내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를 위해 울어줘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만히 있다. 그들도 그렇게 박정희·박근혜 부녀와의 의리를 내팽개치고 있는데, 삼성동 집과 서울구치소 앞에서 대성통곡하는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박근혜 지지자들이 박근혜를 위해 해줄 게 있다면, 경찰이나 기자들한테 화풀이하는 게 아니라 재벌총수들 집 앞에 가서 "제발 의리 좀 지키라"고 고함치고 통곡하는 일이다. 그럴 용기는 없는 것인가?

▲ 서울 덕수궁 앞의 친박 집회. ⓒ 김종성


재벌 다음으로 박근혜를 위해 울어줘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 시절에, 재벌만은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혜택을 입은 계층이다. 그런데 이들은 촛불 혁명 과정에서 박근혜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성토하는 데까지 앞장섰다.


조중동은 왜 곤경에 처한 박근혜를 내버려뒀나

이 점은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이 촛불 혁명 초반에 박근혜·최순실을 열렬히 성토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정희 시절에 재벌 버금가는 혜택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런 혜택을 입은 계층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은 곤경에 처한 박근혜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촛불 혁명 전부터 '박근혜 불통론'을 유포하며 박근혜와 기득권층을 분열시킨 보수 언론은, 촛불 혁명 과정에서 진보 언론이나 야당보다 훨씬 더 매섭게 박근혜를 몰아붙였다. 보수 언론은 나중에는 탄핵반대 집회를 비중 있게 보도했지만, 이것은 박근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촛불집회 쪽으로 더 이상의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견제 조치에 불과했다.

박근혜 비판 여론이 예상 밖으로 확대되고 촛불집회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되자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바로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서둘러 상황을 진화하려고 탄핵반대 집회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렇게 재벌 다음으로 박정희에게 혜택을 입은 사람들도 박근혜 성토에 앞장서고 탄핵반대 집회까지 이용했다. 이런 마당에,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위해 대성통곡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촛불집회에 섞여 있는 일부 기득권층 사람들을 뺀 나머지 대다수의 보통 서민들이 친재벌 집단인 박정희·박근혜 정권을 위해 그렇게까지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정치지도자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입지 못했어도, 지지자들이 그를 위해 울 수는 있다. 지지층과 지도자가 동일한 운명에 처했다고 판단될 때에 그럴 수 있다. 1919년 3월 식민지 조선 백성들이 고종황제의 죽음을 슬퍼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전직 황제와 자신들이 동일한 운명에 처했다고 판단됐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고종황제 장례식에서 백성들이 흘렸던 눈물의 의미

1592년 임진왜란 때만 해도 일본군을 막겠다며 의병 활동을 자원했던 조선 백성들이 1905년 을사늑약(이른바 을사보호조약) 때와 1910년 경술국치 때는 담담하게 침묵을 지켰다. 물론 1905년 이후에도 의병 활동은 있었지만, 임진왜란 때에 비하면 현저히 약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민심이 차갑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1894년과 1895년에 조선왕조의 무능과 경제 파탄을 규탄할 목적으로 수십만의 조선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 이를 자체적으로 진압할 수 없었던 조선 정부는 처음에는 청나라 군대의 도움을 빌리려다가 여의치 않자, 나중에는 일본 군대의 힘을 빌려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을사늑약으로 조선왕조가 외교권을 빼앗겨도 일반 대중이 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그때의 경험 때문이다. 조선 왕조가 일반 백성 편이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왕조에 대해 일부 양반들이 자결로써 충성심을 표시할 때에 대다수 평민들이 차갑고 냉랭한 반응을 보인 것은 왕조에 대해 이미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전쟁으로 망한 나라가 아니다.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국력이 소진됐고, 그래서 외세의 농간에 쉽게 넘어갔던 것이다. 백성들이 버린 나라이기 때문에 외세에 쉽게 짓밟혔던 것이다.

그랬던 조선 백성들이 1919년 3월 고종황제 장례식에 모여들어 대성통곡을 했다. 1910년만 해도 고종황제에게 냉담했던 백성들이 불과 9년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조선왕조가 망했으니 굳이 그렇게 서럽게 울 이유가 없는데도 고종을 위해 대성통곡을 했다.

백성들이 고종을 위해 운 것은 그가 불쌍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과 고종이 같은 운명에 처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조선 백성들은 고종이 일본에 의해 독살된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들과 고종이 같은 불행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동병상련을 느낀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조선 백성들을 3월의 장례식으로 이끌고 또 만세운동으로 이끌었다. 일본 때문에 불행한 운명에 처한 고종과 자신들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 촛불집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그런데 박근혜와 지지자들 사이에는 그런 공감대가 존재할 여지가 별로 없다. 탄핵반대 집회에 기득권층 사람들도 참여하지만, 아무래도 일반 서민들이 훨씬 더 많이 참여한다. 거기에 참석한 일반 서민들은 자신들과 박근혜가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박근혜의 파면 및 구속은, 유신체제를 포함한 구체제가 최종적 몰락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상징한다. 국민의 생명을 무시하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남북 냉전을 조장하고 빈부 격차를 조장하며 국민의 복지를 등한시하는 부조리한 체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상징한다.


박근혜 구속은 희망의 신호탄, 눈물 흘릴 이유 없다

따라서 이것은 생명을 보호받고 싶어 하고 자유를 희망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부의 균형 분배를 갈구하며 복지를 바라는 일반 서민층한테는 참으로 천만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은 대한민국 서민층한테는 분명히 새로운 희망의 신호탄이다.

이것은 박근혜의 운명이 국민대중의 운명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친박 집회에 참여한 서민층 사람들도 박근혜의 몰락을 보고 기뻐하며 춤춰야 한다. 그렇게 소리 내어 오열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박정희 시절에 특별한 혜택도 입지 않았으며 박근혜와 동일한 운명에 처해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삼성동 집과 서울구치소 앞에서 통곡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의 상당수는 고생스럽게 살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박근혜가 자신과 비슷한 세대이고 그런 박근혜가 어머니·아버지의 비극적 최후를 목격했다는 점을 생각하며 박근혜를 더욱더 동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실은 박근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자신과 세대가 비슷한 박근혜의 비극을 보면서, 사실은 지난날의 고생스러웠던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이들이 박근혜를 보며 흘리는 눈물은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적인 눈물을, TV 카메라가 지켜보고 국민이 지켜보는 장소에서 굳이 흘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박근혜를 부당하게 대한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국민 앞에서 사적인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눈물은 국민 대다수를 조롱하는 눈물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박근혜 파면과 구속을 보면서 통곡 이상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흘리는 몇 방울의 눈물로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통곡 이상의 분노가 대다수 국민의 가슴을 쿵쿵 쳐대고 있다.

박정희 시절에 별다른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박근혜와 같은 운명에 처한 것도 아니면서, 국민 앞에서 사적인 눈물을 흘리며 국민의 아픔과 상처를 조롱하는 것은 박근혜 버금가는 죄악을 범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루빨리 사적인 눈물을 지우고 국민과 함께 정의로운 분노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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