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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재소장’ 임명 막는 야당의 진짜 속셈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 막는 야당의 진짜 속셈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반대로 국회 임명동의 불투명
반대하는 이유는 ‘분단세력 색깔론’·‘문재인 발목잡기’
기본권보장 헌법수호기관장에 소수의견 경력은 당연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 | 등록 : 2017-06-11 15:18 | 수정 : 2017-06-11 15:26


▲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동안 증인으로 출석한 광주 518 당시 시민군 버스를 운전했던 배용주씨가 이를 듣고 있다. 당시 김 후보자는 군 법무관 신분으로 배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정권은 인사입니다. 집권세력의 가치를 국정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입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최우선 목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에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열흘 뒤인 5월 19일 김이수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하며 그 이유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공권력 견제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소수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고, 또 그런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할 적임자”라는 것입니다.

김이수 후보자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대통령이 헌재소장으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6월 7일과 8일 이틀 동안 진행됐습니다. 이제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어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를 진행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민의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은근히 협박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20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 새누리당 1석, 무소속 6석으로 모두 299석입니다. 따라서 자칫하면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은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하태경 의원이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헌재결정문에서 김 후보자의 소수의견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이수 헌재소장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이수 후보자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 소수의견을 냈다는 것입니다.

7일과 8일 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김이수 후보자와 이 문제로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였습니다. 김이수 후보자는 의원들의 추궁에 대해 “헌재의 법정 의견도 통합진보당의 강령만으로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소수의견은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 전체는 다르다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이수 후보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은 뭘까요? 자유한국당 김명연 수석대변인이 7일 이런 공식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반대 의견을 낸 것에 대해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정신이 무엇인가, 우리 헌법 정신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통진당 해산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통진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임이 드러났다. 헌재의 해산 명령은 민주주의 질서와 헌법 수호를 위한 당연한 조치였으며, 다수의 국민들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또다시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통진당과 유사한 정강 정책을 내세운 정당을 조직해 활동을 한다 해도 이 역시 합헌으로 판단하겠다는 말인가? 김 후보자의 헌법 수호 의지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사가 보편적 기준과 상식에 입각해 헌법 질서를 수호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장은 그 역할과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김 후보자의 소신은 헌법재판소장 직분을 수행하는 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이제라도 자진사퇴해야 한다.”

바른정당은 어떨까요? 주호영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중립적이지 않은 분이 헌재소장이 되는 게 가장 나쁜 상황이다. 헌재소장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김이수 후보자는 (헌재재판관에 임명될 때) 민주당이 추천했던 분으로 특정 정당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분이 소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중립, 독립성에 의심을 가지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그게 다일까요? 아닐 겁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이수 후보자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봐야 합니다.

첫째, 사상전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김이수 후보자가 어쨌든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했으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진짜 보수’를 경쟁적으로 표방하는 두 정당이 헌법재판소장 임명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색깔론입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 발목잡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요한 인사를 좌절시킴으로써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의도입니다. 자유한국당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문재인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인선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셋째, 김이수 후보자가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메인 스트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장은 대체로 영남이나 서울 출신으로 서울법대를 나온 남자 법조인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전남 순천 출신의 여성 전효숙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려 했으나 절차를 트집 잡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습니다.

사죄하는 김이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오른쪽)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5.18 광주항쟁 당시 사형판결을 내린 버스 기사 배 모씨의 두 손을 잡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장 인사에 대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이런 태도와 계산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요? 헌법재판소가 무엇인지, 헌법재판이 무엇인지, 헌법이 무엇인지 헌법학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총장 성낙인 교수가 쓴 <헌법학>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헌법은 단순히 한 국가의 최고규범일 뿐만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기본권보장 규범으로서의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이념적 지표는 국민주권주의와 기본권보장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헌법은 단순한 자유의 기술로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권력의 민주화를 위한 기술로서의 사명을 다하여야만 한다.”

“헌법재판은 근대입헌주의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권력분립 원리를 현실적·사후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보장된 권한을 통하여 헌법 보장기관, 헌법수호기관, 기본권보장 기관, 권력통제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헌법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규범이고 헌법재판소가 기본권보장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밝힌 이유-“그동안 공권력 견제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소수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고, 또 그런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할 적임자”-는 매우 타당한 것이 됩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소의 ‘사무’를 통리(統理)하며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사람입니다. 헌법재판에서는 다른 8명의 헌법재판관과 동등한 자격을 갖습니다.

그런데도 김이수 후보자가 헌재소장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주장은 억지입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단체에서 6월 6일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런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훼손할 자유까지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형식적인 진보당 강령만을 내세우거나 피상적인 당원 숫자만을 대비하여 통진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건전한 상식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안보 상황에 대한 고려도 전혀 없는 가벼운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은 헌법상 기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주요 쟁점으로 하는 고도로 복잡한 논쟁입니다. 그런데도 북한과 적대적 공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단세력’, ‘냉전 수구세력’은 이 논쟁을 단순한 색깔론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소수의견을 많이 낸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주제로 <중앙일보> 고대훈 논설위원이 6월 10일 치 신문에 ‘소수의견은 죄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소수의견의 전통은 미국이 원조다. 올리버 웬들 홈스(1841~1935)·윌리엄 더글러스(1898~1980) 연방대법관은 수백 건의 소수의견을 낸 인물로 유명하다. 홈스는 1919년 간첩법 사건에서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이 궁극의 선(善)에 도달하게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유죄에 반대했다. 더글러스는 “반대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이라고 했다. 당시 소수이던 그들의 견해는 오늘날 미국 헌법 해석에 있어 주류가 됐고,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라고도 불린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도덕적 결함이 있다면 헌재소장 임명을 재고함이 옳다. 그러나 생각의 다름을 문제 삼아 적격성 시비를 거는 데는 반대한다.”

저는 고대훈 논설위원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임지봉 서강대학교 교수)는 9일 국회에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차질없이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김이수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해오면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을 보듬고, 국가권력보다 주권자 국민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소신을 담은 의견으로 헌법학계와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의견,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입법 필요성 촉구, 정치인을 비판하는 시민의 입을 가로막는 도구로 쓰였던 모욕죄 위헌의견, 백남기 농민을 숨지게 했던 살수차 사용 반대 의견, 집회시위의 권리를 침해했던 서울광장 경찰차벽 봉쇄 위헌의견 등을 내온 김이수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내내 상처 입고 후퇴해온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 노력한 대표적 재판관이었다.

따라서 김이수 후보자가 헌법 정신과 인권을 수호하는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소장에 가장 적격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파탄과 탄핵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딛고 세워진 정권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퇴시킨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책무를 안고 출범한 정권입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은 민주주의 회복과 문재인 정부 출범의 상징이자 첫 단추인 것입니다. 이 정도의 상식적인 인사를 좌절시키려는 시도는 “이게 나라냐”며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촛불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이수 헌재소장도 임명하지 못할 거라면 정권교체는 뭐하러 했나.”

이 질문에 누군가 대답해주면 좋겠습니다.


출처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 막는 야당의 진짜 속셈